주가가 강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8년 9월 일어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의 영향으로 한때 1000선마저 밑돌았던 코스피지수가 상승세를 줄달음하며 1900 고지를 점령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웃돌며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했던 2007년 말 상황이 재현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주가 급등은 한마디로 돈이 넘쳐나는 유동성 장세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규모로 밀려드는 외국인 자금이 주된 동력원이다. 최근 들어 국내 금융시장으로의 외국인 자금 유입 규모는 매달 5조~10조 원씩에 이른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누계로는 채권 순매수 규모가 56조8162억 원, 주식 순매수 규모가 12조1754억 원에 달한다.
종합주가지수가 1900포인트를 넘어선 6일 오후 여의도 대우증권 트레이딩센터에서 직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1006
종합주가지수가 1900포인트를 넘어선 6일 오후 여의도 대우증권 트레이딩센터에서 직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1006
10월 들어서도 외국인들의 강력한 국내 주식·채권 매수세는 멈출 기미가 없다. 주요 아시아 국가들과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신흥국 증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최근 3개월 동안 10~20%씩 주가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주가와 채권 가격은 앞으로도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외국인 자금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미국과 일본 등이 양적 완화 정책을 취하면서 풍성해진 유동성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들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정부 등은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수출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수출 증대를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통화가치 절하를 유도하고 있고 이를 위해 통화공급량을 늘리는 한편 초저금리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최근 그렇지 않아도 사상 최저 수준인 0.1%에 불과하던 기준금리를 다시 0~0.1%로 끌어내리고 금융자산 매입에 5조 엔을 더 풀겠다고 발표했다. 엔고를 저지하는 한편 이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과시한 셈이다.

이미 제로 금리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도 오는 11월 초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당분간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뜻이다.

내수침체·고용부진 등 체감경기는 냉랭

증권시장만 놓고 보면 상당 기간은 주변 여건이 양호한 상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금리 수준이 미일보다 높고, 원화 가치의 상승 가능성이 크다는 점 또한 외국인 자금의 유입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부동자금이 한국으로 몰리며 주가를 밀어 올리는 양상이 계속된다면 코스피 2000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헛된 희망만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과연 우리 경제가 이런 강한 주가 상승세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태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다른 나라를 크게 웃도는 등 상대적으로 나은 상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가 정상화됐다고 볼 만한 단계는 결코 아니다. 지표상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수 침체와 고용 부진이 이어지는 등 체감경기는 아직도 냉랭하기 짝이 없다. 경제 회복세도 하반기부터 서서히 둔화돼 내년 성장률은 4%대 중반에서 5% 정도 사이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글로벌 경제에도 변수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재정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국들의 형편이 악화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제가 더블 딥(이중 침체)에 빠져들 가능성도 여전하다.

그럴 경우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몰려나가며 분위기가 급반전될 수도 있다. 리먼 파산 사태 때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 우리나라가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리스크 관리를 등한히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