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의 1등 기업 CEO를 만나다②-유통 박건현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

지난해 문을 연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은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메이시 백화점보다 매장 면적이 1.5배 넓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명품 재벌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도 “이제까지 가 본 백화점 중 최고”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초대 점장으로 개장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박건현(54)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는 “센텀시티의 목표는 동북아의 쇼핑 메카”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해외 진출이 아니라 외국인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세계화 모델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이다.

박 대표는 신세계의 등기이사로 정용진 부회장(전사총괄), 최병렬 사장(이마트 담당)과 함께 ‘뉴 신세계’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충무로 본사 집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Special Interview] “대형화·복합화로 새로운 가치 창출”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 쇼핑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화점 쪽에도 영향이 있습니까.

3년 전부터 중국 최대 신용카드인 은련카드를 받고 있는데, 그걸 보면 올해 매출액이 2배가량 늘었어요. 과거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거 해외 쇼핑을 나가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요.

편차가 심하지만 개중에는 명품 매장에서 한두 개 사는 게 아니라 ‘저기부터 여기까지’라고 쭉 훑어가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에요. 좀더 많이 와서, 좀더 많이 쓰고 가야죠.

과거와 달리 다양한 유통 채널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대형 마트는 상품 구성 자체가 가격과 실생활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은 혼자서 사고 즐기는 게 전부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없어요.

요즘 백화점은 쇼핑만이 아니라 그 안에 문화 기능까지 함께 넣어 고객들이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부산 센텀시티는 여기에 더해 엔터테인먼트 기능까지 넣었어요. 아침에 와서 저녁까지 온가족이 풀 라인업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직까지 백화점이 유일하죠.

말씀하신 대로 오래전부터 위기론이 나왔지만 백화점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백화점들이 제때 변화를 잘했기 때문이지요. 미국과 일본의 백화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요. 제품 구색이나 브랜드는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백화점의 기능 자체는 그대로인 거죠.

일본에서는 백화점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성장 중이죠.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일본 백화점 업계는 10년째 마이너스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품 판매라는 기존 틀에 안주해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한국 백화점들은 대형화·복합화하고 각종 문화시설을 배치하는 등 10년 단위로 백화점의 모습을 계속 바꿔 왔어요.

물론 국민성의 차이도 있어요. 일본 주부들은 백화점에 와서 쇼핑할 것만 하고 바로 갑니다. 하지만 한국 주부들은 친구들과 함께 와서 즐기고 놀 공간을 원해요. 며칠 전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곳 백화점들도 5~10년 전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더군요.

변화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선두 3사(신세계·롯데·현대)를 중심으로 업계 전체가 치열하게 경쟁해 왔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그런 경쟁 속에서 나름대로 발전을 모색해 왔어요. 몇 년 전까지는 백화점 매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어요.

경쟁이 심해지면서 백화점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백화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해답은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백화점의 규모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본점을 재개발하고, 센텀시티를 짓는 노력을 하게 된 겁니다.

유통 채널 간 경쟁도 치열한데, 백화점이 가야 할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백화점은 물품 판매 이외의 가치를 얼마나 고객에게 줄 수 있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백화점에 와서 100원어치의 물건을 산다고 하면 고객이 그걸 사서 나갈 때 100원 이상의 만족감을 느끼고 가게 해야 합니다. 고객이 와서 편히 쉬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필수적이에요. 센텀시티는 그런 고객 시설이 전체 면적의 30%가 넘어요.

그런 투자들이 매출에 실제 도움이 됩니까.

그 기능 자체로 보면 수익이 별로 남지 않아요. 문화센터는 한 달 운영에 수억 원이 들어가죠. 문화센터의 가치는 다른 데 있어요. 일선 점장을 할 때 문화센터에 자주 가서 고객들 사이에 똑같이 앉아 지켜보곤 했어요.

문화 행사를 즐기고 나가는 고객 표정에서 만족감이 묻어날 때가 가장 기쁘죠. 문화센터 공연은 공연자들과 관객이 불과 3m 거리밖에 안돼요. 일반 공연장은 10m 이상 떨어져서 봐야 해요.

바로 눈앞에서 공연을 지켜보기 때문에 공연자들도 문화센터 공연이 참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공연을 볼 수 있는 자격이 되고, 또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정말 기뻐하는 고객들이 많아요.

[Special Interview] “대형화·복합화로 새로운 가치 창출”
최근 백화점들의 신규 출점 경쟁이 치열합니다. 신세계의 출점 전략은 무엇입니까.


업체마다 출점 전략이 조금씩 달라요. 다점포화로 가는 곳도 있고, 신세계처럼 ‘1번점 전략’으로 가는 곳도 있지요. 물론 그 중간 형태도 있고요.

1번점 전략은 뭡니까.

해당 지역에서 최고의 백화점이 되겠다는 겁니다. 무조건 숫자만 늘리지 않겠다는 거죠. 현재 신세계 본점은 국내 유통업의 발상지로서 충분히 1번점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봐요.

강남점은 명실상부한 그 지역 1위고, 경기점과 인천점도 1위죠. 부산에서는 센텀시티가 1번점을 목표로 문을 열었고요. 앞으로도 이 전략을 유지할 겁니다.

경쟁이 심해지면 마케팅 비용도 늘어나지 않나요.

새로 점포를 열면 3년 정도는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가죠. 다른 백화점을 이용하던 고객을 데려온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고객이 찾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다양한 프로모션도 해야죠.

우리 백화점들이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다른 유통 업태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큰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처럼 다양한 프로모션을 하지 않거든요. 일본만 해도 연말에 이벤트 한두 번 하는 게 전부예요. 하지만 우리는 물건도 더 주면서 온갖 방법을 찾죠.

해외 출점 계획은 없습니까.

당장은 없습니다. 우선은 국내에서 확실하게 1번점 전략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목표예요. 해외 진출은 그 다음 문제죠.

작년에 문을 연 센텀시티점의 초대 점장을 맡으셨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센텀시티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콘셉트를 잘 잡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애초 신세계가 생각한 것은 백화점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어요. 고객에 반 발 앞서가면서 고객의 기대치를 최대한 만족시켜 주는 그런 백화점을 그린 거죠.

또 처음부터 부산이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후발 주자인 부산에서 부산 고객만을 대상으로 시작했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계획대로 전국에서 쇼핑객이 옵니까.

주말에는 부산 이외 지역 고객이 30~40%를 차지합니다. 대구·울산·경주에서는 주부들이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3~4명이 모여 차 한 대로 센텀시티까지 놀러 옵니다. 대구만 해도 차로 1시간 거리로 가까워요.

그러면 해운대 바닷가를 보고, 센텀시티에 와서 온천을 즐기고 쇼핑을 한 다음 돌아가는거죠. 그동안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릴 때 해운대나 자갈치시장 같은 한두 가지가 전부였어요.

센텀시티는 스파가 있고, 한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아이스링크가 있어요. 대형 영화관과 옥상 정원, 골프 레인지도 있지요. 이런 것들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요. 중국·일본·러시아·동남아시아를 타깃으로 센텀시티 투어 패키지 상품도 적극 개발하고 있습니다. 센텀시티를 동북아 쇼핑 메카로 만들 계획입니다.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가 양대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이마트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가져갈 생각이십니까.
[Special Interview] “대형화·복합화로 새로운 가치 창출”
백화점과 마트는 목표 고객이 달라요. 마트는 가격과 실생활이 중심이지만 백화점은 플러스알파의 가치가 중요해요. 입지 전략도 차이가 나죠. 백화점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출점하지만 마트는 종소도시를 중심으로 포석이 깔려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보면 경쟁보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상호 보완 관계예요. 과거 외환위기 후 그룹의 투자가 마트에 집중됐어요.

단기간에 투자를 회수해 재투자해야 하기 때문이었죠. 자금 회수에 3~5년 이상 걸리는 백화점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 후 마트가 안정화되고 경제도 호전되면서 점차 백화점 투자에 힘을 쏟고 있지요.

윤리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윤리 경영은 신세계의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경쟁력이에요. 업계에서 가장 먼저 윤리 경영을 경영 철학으로 선포하고 11년째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해도 많았고 남모를 어려움도 있었지요.

하지만 1500개가 넘는 협력사들이 있는데, 실무자들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줄 수 없어요. 안으로 팔이 굽게 되기 때문이에요. 윤리 경영을 도입함으로써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협력사와의 상생도 가능해졌지요.

오랫동안 백화점 업계에 있었는데, 소매 유통업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1982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줄곧 백화점 분야에서만 일해 왔어요. 처음 배치를 받았을 때 신세계백화점은 삼성그룹 30여 개 계열사 가운데 가장 밑이었어요. 점포도 본점 하나뿐이었지요.

고객 대응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백화점 일은 남다른 재미가 있어요. 항상 계절을 반 박자 앞서가는 기획을 해야 해요. 지금 벌써 크리스마스 연말 행사를 준비해야죠. 또 백화점은 똑같은 것 같지만 매일매일 상황이 바뀝니다.

끝으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항상 ‘쓰리 께’를 강조합니다. 유통업은 다른 분야와 달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아무리 똑똑해도 매장에서 저 혼자 고함을 질러서는 아무 일도 안돼요. 매장 직원이나 매니저, 협력업체와 공감대를 만들고, 자기편으로 만들어야죠.

그래서 ‘다함께’가 중요합니다. 또 유통업은 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매장에 인상 쓰고 나가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직원들과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매장의 리더는 엄할 때는 엄하지만 필요하면 코미디언도 되고 희극배우도 돼야 합니다. 한마디로 ‘신나게’ 일해야죠. 마지막은 항상 주어진 과제는 ‘멋지게’ 해 낼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약력 : 1956년 경북 경산 출생. 1982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82년 신세계 기획관리부 관리과 입사.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운영부장. 1997년 신세계 백화점사업본부 영등포 점장. 1998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마케팅실장. 2000년 광주신세계 점장. 2005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죽전 점장. 2007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본점장. 2008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센텀시티 점장. 2009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현).

대담=김상헌 편집장 정리=장승규 기자 skjang@hn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