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저작권 보호 왜 중요한가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다. 돈 몇 푼의 문제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정보기술(IT)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규모와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IDC·가트너·디스플레이서치 등 여러 세계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1조54억 달러다. 반도체(2501억 달러), 휴대전화(1869억 달러), 항공기(1112억 달러), 액정표시장치(LCD) TV(806억 달러)보다 훨씬 크다. 반도체 시장의 4배, 휴대전화 시장의 5.4배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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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의 성장률도 가파르다. IDC에 따르면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성장률은 2009년 1.2%에서 2010년 4.4%, 2013년 6.9%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국내 소프트웨어의 비중은 왜소하다.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반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시장 규모는 3000억 달러 규모(IDC 자료)다.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세계시장 규모인 2400억 달러를 넘어선다. 하지만 국내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약 30억 달러로 세계시장의 1%에 불과하다.

불법 복제 실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IT 코리아’를 외치며 우쭐했던 한국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 까닭은 뭘까. 전문가들은 몸살을 앓고 있는 불법 복제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AFP통신은 지난 5월 작년 한 해 동안 불법 복제로 전 세계가 입은 손실액이 514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중 해적판의 비율은 2008년보다 2% 늘어난 43%였다. 이 가운데 아시아 지역이 156억 달러의 피해를 봤다고 보도했다.

IDC의 조사 결과 아시아에서 설치된 소프트웨어 9억 개 중 59%가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해적판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는 방글라데시·스리랑카·인도네시아·베트남·중국 등에서 해적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고 IDC는 밝혔다.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불법 복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불법 SW 없는 세상을 응원합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 회장 김영만)는 29일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불법 소프트웨어 없는 세상 만들기’ 서약식을 진행했다. 행사장에서는 좀비PC 캐릭터가 ‘최근 디도스(DDoS) 대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퍼포먼스가 선보였다.
“불법 SW 없는 세상을 응원합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 회장 김영만)는 29일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불법 소프트웨어 없는 세상 만들기’ 서약식을 진행했다. 행사장에서는 좀비PC 캐릭터가 ‘최근 디도스(DDoS) 대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퍼포먼스가 선보였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최근 111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9년 세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전년 대비 2% 감소한 41%를 기록했다.

국내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율이 처음으로 세계 평균치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작년 미국이 지정하는 ‘저작권 분야 감시 대상국’에서 벗어나 ‘저작권 보호 국가’로 위상이 올라가는 성과를 거뒀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소프트웨어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불법복제율이 감소 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7%보다 무려 14%나 높은데다, 주요 지식 산업 국가인 미국(20%)·일본(21%)·룩셈부르크(21%)·뉴질랜드(22%)·호주(25%) 등과 비교하면 거의 2배 수준이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에 따르면 2009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침해 적발 건수는 1448건으로 침해 금액만 약 34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데이터로 산출한 통계에 불과하다. 실제 피해액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불법 복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 PC에 설치된 불법 소프트웨어는 전체의 41%였다. 이는 5억7500만 달러의 상업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 5월 펴낸 ‘2010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불법 복제물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인당 월평균 5.15개, 연평균 61.8개의 불법 복제물을 이용했다. 1인당 연간 2만2632원을 지출한 것이다.

최근에도 불법 복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단적으로 불법 복제를 단속할 경찰도 버젓이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월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2945개의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별로는 아래아한글 2016개, MS오피스 530개, 알집 262개, 알씨 52개, 포토샵 13개 순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토종 프로그램인 ‘한글’이 전체 불법 소프트웨어의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다.

불법 복제의 유형도 변하고 있다. 기존의 불법 다운로드가 웹하드, P2P 공유 사이트를 이용해 이뤄져 왔다면 최근 들어 각 포털 사이트들이 고객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대용량 첨부 메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불법 복제물이 담긴 대용량 메일을 자신에게 보낸 뒤 주소를 복사해 게시판에 올려놓고 유저들이 다운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파급효과

불법 복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지난 2월 서강시장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산업에서 불법 복제 감소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2013년까지 불법복제율이 10% 감소하면 전체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7313억~1조6999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7년과 비교하면 약 17~39%까지 증가하는 셈이다. 불법복제율은 ‘특정한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기준으로 할 때 설치된 소프트웨어 수 대비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의 비율’이다.

고용 창출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복제율이 10% 줄어들면 고용 인원이 5만6000~8만8000명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부가가치 창출액도 2조5000억~4조 원이 더 늘어난다. 이는 국민 총부가가치가 1.5%가량 증가한다는 뜻이다. 세수도 1조500억~1조2600억 원이 더 걷힌다.

이처럼 불법 복제는 소프트웨어·콘텐츠 산업의 일자리 창출 여력을 감소시키는 주범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 등 사업 관련 전문 서비스 산업의 총 취업자 수는 57만7000명으로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7%로 9번째로 높다. 하지만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의 고용 창출력은 2005년 16.5명에서 2007년 15.2명으로 역주행했다.

이뿐만 아니다. 불법 복제는 국내 IT 부문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세계가 인정해 온 ‘IT 강국 코리아’가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 분석 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 따르면 국내 IT 경쟁력지수는 2007년 3위(64개국 중)에서 2009년 16위(66개국 중)로 하락했다. 이는 지식재산권 보호·지원 정책과 제도적 환경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지고 있는 까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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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소프트웨어·콘텐츠 산업은 청년층의 취업 비율이 높아 청년 일자리 창출력 제고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상무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의 취업자 중 15∼29세 청년층 비율은 32.5%로 전 산업이나 제조업 취업자 비율인 16.2%, 17%보다 월등히 높다”고 설명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기업들의 연구·개발 의욕을 떨어뜨리고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의 침체는 물론 연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좋은 사례다. 스마트폰의 경쟁력은 다양한 모바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서 나온다. 이는 창의력과 저작권 보호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만들자마자 불법 복제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밤잠을 새우며 개발에 열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올해 열풍을 일으킨 아이폰의 성공도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용어 설명

패키지 소프트웨어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등 정보 기기의 하드웨어 작동을 제어, 운용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일반 사무와 기업 관리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응용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제작 등을 위한 개발 소프트웨어를 통칭한다.


돋보기 불법 복제의 유형

정품 아닌 복제품 사용 ‘비일비재’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 유형은 5가지로 나뉜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자료를 요약했다. 우선 일반 사용자의 불법 복제가 있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불법 복제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한 카피를 구입한 다음 여러 대의 기계에 복제하거나 돌려가며 사용하는 것이다.
[IT 강국 코리아 걸림돌 '불법 복제'] 불법복제율 감소는 ‘IT 강국’ 디딤돌
둘째, 기업이나 기관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모두 구입하지 않고 1~2개의 정품을 구입한 다음 이를 복제해 여러 대의 컴퓨터에서 사용한다.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사무용 소프트웨어에서부터 고가의 개발 소프트웨어와 그래픽 제작 도구 등의 불법 사례가 광범위하다.

셋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컴퓨터 학원이나 일반 대학 부설의 전산센터 등에서 불법 복제된 제품을 사용한다. 넷째, PC 판매상이 불법 복제된 소프트웨어 복사본이 내장된 컴퓨터를 판매하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특정 게시판이나 웹하드 등에 오른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운로드돼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이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