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일정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과 11월 23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현대그룹이 조달하기로 한 인수 대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MOU 일정 자체가 미뤄지고 있다.

현대건설 채권은행은 외환은행·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 등이다. 이들은 지난 11월 16일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며칠 뒤 자금 출처 논란이 일 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후 일부 언론이 제기한 현대그룹 인수 자금 의혹에 금융 당국과 국회까지 가세하자 채권단은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와 관련해 공기업인 정책금융공사와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이 금융 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는 얘기가 금융권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인수 자금 내역 논란 확산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 공고를 예고한 가운데 24일 추석 연휴를 이어가고 있는 계동 현대건설은 당직자들만 출근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만 수면 위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924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 공고를 예고한 가운데 24일 추석 연휴를 이어가고 있는 계동 현대건설은 당직자들만 출근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만 수면 위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924
주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절차대로 진행된 심사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 없이 MOU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채권단 명의로 현대그룹 측에 추가 증빙 자료를 요구했다.

현대그룹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조달한 1조2000억 원이 신용으로만 빌렸다고 주장했는데 채권단이 이에 대한 대출 계약서를 요구했지만 현대그룹 측은 이를 보내주지 않았다. 대신 자금 조달 내역을 설명하는 증빙서류를 제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1월 24일 전체 회의에서 현대건설 최대 주주인 정책금융공사 유재한 사장에게 현대그룹 인수 자금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유 사장은 이날 “소명과 다른 결정적 증거가 나온다면 우리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조치를) 할 수 있다”며 법적 검토를 통해 현대그룹에 요구할 수 있는 선까지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의원들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대우건설 매각 사례를 들며 공적자금이 들어간 현대건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수 기업의 자금 출처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애초에 채권단이 현금 동원력이 있느냐 여부만 중요시하고 건전성(재무제표) 검증엔 미흡해 화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와 관련, “채권단은 매각 MOU를 체결하기 이전에 현대상선의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대출 계약 및 동양종합금융증권 풋백옵션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청구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도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 명의의 나티시스은행 예금 1조2000억 원에 대한 증빙 자료를 11월 28일까지 보완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주협의회는 “11월 23일 현대그룹이 낸 소명자료가 미흡해 보완을 요청했다”며 “현대그룹이 제출하는 추가 증빙 자료를 받아본 후 주주 협의를 거쳐 앞으로의 일정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협의회는 현대그룹이 보완 자료를 내지 않았을 때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

한편 현대건설 노동조합도 우선협상대상자 평가 결과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더욱이 채권단이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하면 강력한 매각 무효 투쟁을 전개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현대건설 노조는 정책금융공사에 11월 29일까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과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권과 정보공개청구권을 제기할 계획이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11월 25일 밝혔다.

임동진 노조위원장은 “국민의 기업인 현대건설을 매각함에 있어 한 점의 의혹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은 자료 공개를 거부한 채 의혹만 부풀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