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두려운 ‘대기 아동’
어린 자녀를 둔 일본 가정의 고민은 지금이 클라이맥스다. 대기 아동(待機兒童)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사회문제 때문이다. 신학기인 4월에 자녀를 보육원에 맡기지 못하는 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 아동은 자격을 갖춰 보육원 입소를 신청했지만 탈락한 아동을 뜻한다.정원 외로 떨어졌으니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인근의 고가·사립 보육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안 되면 값비싼 베이비시터나 보모를 둘 수밖에 없다. 최근 NHK는 월 25만 엔을 버는 자영업자가 20만 엔을 보모 월급으로 지출하는 충격적인 사례도 보도했다. 대기 아동 매년 증가세
게다가 대기 아동은 매년 증가세다. 2008년(1만9550명)에 이어 2009년(2만5384명)에도 늘더니 2010년 4월엔 2만6275명으로 불어났다. 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증가 추세다.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게 특징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금융 위기 이후 아르바이트 등 주부의 맞벌이 수요가 증가하면서 위탁 수요가 동반해 늘었기 때문이다. 금전 압박에 시달리는 부모라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입소시켜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저연령 아동(0~2세)의 대기 규모는 전체의 82%다. 반면 3세 미만 아동 중 공적인 보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4명 중 1명(23%)에 불과하다.
대기 아동의 심각성을 알기 위해선 보육 시설의 종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을 맡기는 시설은 크게 3가지다. 유치원·보육원·기타 등이다. 유치원은 위탁 시간이 짧고 모친이 전업 주부인 경우가 대상이다.
3세 미만 아동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3세부터다. 보육원은 0세부터 맡으며 위탁 시간도 길다. 결국 맞벌이 부부는 유치원보다 보육원과 기타 시설에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다.
보육원은 다시 인가와 인가 이외로 나뉜다. 인가 보육원은 설비·넓이 등 일정 조건을 갖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가를 받은 곳이다. 공립과 사립(사회복지법인 등 운영)이 있다. 인가 이외 보육원은 각종 법인이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 인가 이외 보육원은 도쿄도 등 지자체가 독자 기준으로 설치·운영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인정보육원).
인가를 둘러싼 최대 차이가 보조금 지급 여부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인가 이외 보육원은 원칙적으로 보조금이 없다. 인가 보육원의 대기 아동이 급증하는 이유는 비용 대비 보육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일단 비용이 저렴하다.
월 2만~4만 엔대로 인정 보육원(5만~8만 엔)이나 인가 이외 보육원(10만~20만 엔)보다 월등히 싸다. 그러니 대기 수요가 많다. 도쿄 0세 아동의 보육 운영비는 월 50만 엔이지만 자비 부담은 최대 10% 미만이다. 90% 이상이 보조금(세금)으로 충당된다.
반면 원조가 없는 인가 이외 보육원은 그만큼 비쌀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부모들의 불만도 많다. 세금을 재원으로 공적 보조를 받는 인가 보육원에 맡기는 것과 그 수혜에서 제외된 인가 이외에 맡기는 게 비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가 보육원 자격 조건은 정규직 부부가 우선이다. 구직 중이거나 비정규직이면 우선권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기 아동의 실제 규모는 훨씬 크다는 게 중론이다. 통계 착오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인가 보육원의 정원은 215만 명 정도다. 이 중 208만 명이 이용 중이니 정원 충족률은 96.4%다. 수치상으로는 자리가 남는다는 얘기다. 1798개 지자체 중 대기 아동이 있는 곳은 377개 지역뿐이다. 도쿄·가나카와·오사카 등 인구 유입이 지속적인 대도시에 한정된다.
더 큰 통계 착오는 부모 직업 등 엄격한 신청 조건에 따른 누락분이다. 애초부터 자격 대상을 엄격히 줄여 놓은 결과다. 우선 인가 보육원 입소 포기 후 인가 이외 보육원에 들어간 수십만 아동이 통계에선 빠진다. 보육료를 비싸게 내면서 보조금 지원이 없어 보육사·시설 설비 등이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취업 대기 중인 부모도 신청 조건에 들지 못한다.
주간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잠재적 대기 아동 규모는 총 85만 명에 달한다. 애초부터 신청 대상이 아니거나 인근에 보육원이 없을 때를 가정해 넣은 규모다. 인가 보육원 정원(215만 명)의 40%에 가까운 수치다.
적은 예산과 경직된 제도 운영 및 기존 보육원의 반발 등으로 신규 진입도 봉쇄된 상태다. 과수요의 해결은 공급 증대가 필연이다. 다만 장벽이 높다. 잠재 수요까지 잠재울 공급 증대엔 재원 부담이 엄청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뾰족한 해법 없는 게 더 큰 문제
게다가 사실상 정부 보조금인 인가 보육원 운영비는 대단히 높고 비효율적이다. 복지 차원에서 절대 금액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니 경비 절감을 위한 경쟁 압박도 없다. 더욱이 대도시 인가 보육원은 전형적인 고비용 체질이다.
인건비 때문이다. 가령 인가 보육원(공립) 보육사는 지방공무원 봉급 기준을 따르는데 도쿄의 정규(상근) 보육사 평균 연봉이 800만 엔대에 달한다. 원장이면 1200만 엔에 달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공무원 국장 월급이다.
여기엔 ‘독립 왕국’이란 표현처럼 자체적인 단기 승진 관행도 한몫했다. 통상의 엄격한 인사고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직급을 올려주는 사례다. 반면 최근 늘어난 비정규직 보육사의 임금 수준은 턱없이 낮다. 격차 문제의 심화다.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기 아동의 해소 문제는 2009년 이후 민주당의 주요 공약 리스트에도 늘 포함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양육·교육비 해소 요구도 높다.
급조한 티가 없지 않지만 민주당도 최근 ‘대기 아동 제로특명팀’을 재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1년엔 200억 엔의 예산으로 대기 아동을 전원 흡수할 방침이다. 대기 아동이 300명 이상인 지자체를 대상으로 인가 이외라도 최저 기준을 충족하면 지원 리스트에 포함하겠다는 게 요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일단 예산 규모가 적을뿐더러 실천 방안도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많다.
아쉽게도 대기 아동의 앞날은 어둡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 대응이 늦은데다 정책 효율마저 의심스러운 와중에 대기 아동 수요가 증가할 상황이 한층 무르익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맡겨서라도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돈벌이 압박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적극적인 구직 활동에 나선다면 그간 물밑에 가라앉았던 잠재적 대기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인구 변화와 관련된 장기 추세를 보면 상황은 더더욱 우려된다. 민주당 정권의 자녀 수당은 불만에 찬 대기 아동과도 맥이 닿는다.
자녀 수당을 둘러싼 싸늘한 여론의 진원지가 이들 대기 아동의 부모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기 아동을 경험해 봤다면 대부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행정 편의에 사로잡혀 정책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곳에 선심성으로 돈을 뿌리기보다 정작 일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지출하는 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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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일본 정부의 대안 모색
기득권 세력에 ‘우왕좌왕’…예산도 ‘바닥’
대기 아동 문제를 해결할 예산도 없다. 이런 고비용 구조를 감안할 때 인가 시설 확충에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다. 현재 전국적인 인가 보육원은 2만3000개다. 연간 운영비는 2조3000억 엔으로, 이 중 보조금이 1조8000억 엔에 달한다.
이론대로 85만 명의 잠재 수요까지 수용하면 연 1조1000억 엔의 재정 투입이 필수다. 건설비와 초기 보조금까지 더하면 2조 엔대로 불어난다. 정부가 하지 못하면 민간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실질적으로 지자체·사회복지법인 등에 한정된 신규 진입 제한을 완화해 주식회사 등도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자는 의견이다. 경쟁 논리 도입으로 저비용·고효율 시설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은 이것조차 어렵다. 기존의 보육 업계의 반발 때문이다. 사립 인가 보육원의 경영 주체는 90% 이상이 복지법인이다.
이들이 정치 세력에 입김을 발휘해 신규 진입을 강력히 저지하고 있다. 업체가 난립하면 보육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많다. 시대 변화를 거부한 기득권 세력이 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도 2000년 주식회사·NPO의 보육원 시장 진출을 풀었지만 여전히 비율은 2% 밑이다. 유보일원화(幼保一元化), 즉 유치원과 보육원을 합해 수요를 맞추자는 방안도 거론 중이지만 역시 유치원 쪽 반발이 거세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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