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혁명이 도미노처럼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세를 줄달음하고 있다. 국내 휘발유 값도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농·수·축산물, 전·월세 가격 등 생활 물가가 무차별적으로 치솟고 있는 상황인 만큼 유류세 인하를 통해 휘발유 값이라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제 유가의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다. 우리나라가 많이 들여오는 두바이유는 2월 24일 현재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100달러에 육박한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110달러 선도 돌파했다. 이런 기세라면 지난 2008년에 기록했던 배럴당 140달러 선도 넘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할증’ 탄력세율 조절하면 법 개정 없이 가능

[이봉구의 뉴스 & 뷰] 유류세, 이제 내릴 때도 됐다
국내 휘발유 값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월 24일 현재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60원으로 사상 최고치였던 2008년 7월의 1922원과 62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 지역은 리터당 1919원까지 치솟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국내 유가 상승 폭이 큰 것은 환율과 세금 때문이다. 2008년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을 약간 웃도는 선이었지만 지금은 1100원대로 당시보다 10%가량 높다.

세금이 휘발유 가격의 절반에 이르는 탓도 크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리터당 900원을 웃돌아 2008년 7월에 비해 80원 정도 더 많다. 원유 수입관세도 2008년엔 1%였지만 지금은 3%를 부과한다.

유류세는 다양한 명목으로 부과된다. 휘발유 1리터에 교통세 529원이 붙고 교통세의 26%인 137.54원을 교육세, 교통세의 15%인 79.35원은 주행세로 내야 한다. 여기에다 또 부가가치세가 더해진다. 유류세 인하 주장은 이 중 리터당 475원 ±30% 범위에서 부과되는 교통세의 탄력세율을 낮추자는 것이다. 현재는 11.37%의 할증 탄력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탄력세율은 국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해 세율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기본 취지다. 따라서 국제 유가가 이상 급등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를 낮춰 국내 유가를 조금이라도 안정시키자는 것이다.

할증세율을 없애기만 해도 상당한 가격 인하 효과가 있고 할인 탄력세율을 적용하면 폭이 더 커진다. 교통세를 내리면 교육세·주행세·부가세 등도 그에 비례해 낮아지게 된다.

주유소 유통 마진을 억지로 끌어내려도 가격 인하 폭이 리터당 20원 안팎에 그친다는 얘기이고 보면 효과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닌 셈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은 물론 식품류를 비롯한 국내 물가까지 전방위적으로 치솟으며 국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형편이어서 유류세 인하 요구는 호소력이 더욱 크다. 한시적이긴 해도 이미 2008년에 유류세 10% 인하를 단행했던 전례도 있다.

정부는 아직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이다. 세수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유류세로 걷히는 세금이 20조 원 정도에 달하는 만큼 유류세를 10% 깎으면 2조 원의 세수가 날아가게 된다. 또 정부는 유류세를 인하한 후에도 유가가 폭등세를 이어간다면 그때는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도 걱정한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폭등하는 물가를 국민들이 모두 감당하라는 정부의 자세는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지난해 남긴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초과 징수된 세입과 쓰지 않은 지출액을 합한 금액)이 7조8000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유류세 인하로 줄어들 2조 원 정도는 채우고도 남는 까닭이다. 정부는 국민들과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유류세 인하를 적극 추진해 주기 바란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