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 출신의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지난해 7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어윤대 회장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대학 혹은 총장이란 말이 붙는 건 학자나 이론가로서의 명성은 인정하되, 실제 기업 경영에선 은연중 물음표가 남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 1년도 안 돼 어 회장이 이끄는 KB금융그룹은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섰고, 그 과정과 결과 역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카드 부문 분사를 비롯해 3200여 명에 이르는 희망퇴직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다.

전국을 돌며 1200여 명의 지점장들과 직접 소통했고, 중소기업 CEO, 말단 직원, 150여 명에 이르는 외국 기관투자가까지 얼굴을 맞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 덕분에 ‘공룡’으로 불리며 변화와 거리가 멀었던 KB금융은 지금 그 어느 조직보다 젊고 활기찬 금융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사옥에서 취임 열 달을 맞은 어 회장을 만났다.
[스페셜 인터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키워드는 젊은 조직…카드·증권 등 강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지 10개월이 지났습니다. 차별화와 장점은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민이 많죠. 밸류에이션(고부가가치)을 창출해야 하는데, 1200개가 넘는 지점 등 조직이 거대하다 보니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장점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그 어느 구성원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응집력이 강하고 행동·집행도 빠릅니다. 또 대부분의 직원이 순박하고 착해요. 그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요.

KB금융그룹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서 부족한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비은행 부문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2013년까지 현재 5% 미만인 비은행 부문의 수익 비중을 30% 수준으로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KB국민카드는 고객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강화해 카드업 본질에 맞는 운영 역량을 최적화할 계획입니다.

KB투자증권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리테일 고객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채널 경쟁력을 확보하고, 은행과 연계한 복합 점포 등을 통해 점포망을 늘릴 예정입니다. KB생명도 대면 채널 확대 등 채널 다변화와 판매 상품 다양화를 통해 종합 생명보험회사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최근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KB자산운용 역시 주식형 펀드 등 상품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고객의 투자 수요를 충족시킬 만한 상품을 개발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비은행 부문의 인수·합병도 고려하고 있습니까.

2011년에 KB금융그룹 전체의 경영 정상화가 가시화되면 재무구조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시장 환경을 고려하며 비은행 부문의 인수·합병(M&A)도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인수전 참여 여부가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참여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농협 사태로 금융권의 보안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KB금융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사실 외부에서 한 곳을 목표로 수십 명이, 그것도 몇 달 동안 작업한다면 뚫릴 가능성이 큽니다. 빗물 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죠. KB금융은 농협 사태 전부터 보안 문제에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전산 관련 부문에 쏟아 부은 자금만 5000억 원에 이릅니다. 3개월 전 북한에서 자행한 디도스 공격의 목표물도 청와대와 국민은행이었습니다. 이를 이겨낸 것이죠. 국내 최고 은행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막아냈지만, 앞으로도 문제가 전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해킹 전문가를 직접 데려와 공격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 야구 경기 시구가 화제였습니다. KB금융도 회장님 취임 이후 젊은 조직으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국민은행은 총 계좌(고객) 수가 2600만 개이고, 이 가운데 활동 고객만 13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입니다. 명실상부한 한국의 리딩 뱅크죠. 그런데 최근 3~4년 동안 젊은 고객이 늘지 않았어요.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가 좋아하는 가깝고 친근한 은행 이미지도 좋지만, 젊고 다이내믹한 이미지가 부족했습니다.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죠. 그중 하나가 대학 캠퍼스 바로 앞에 개설한 ‘락스타’입니다. 132~165㎡(구 40~50평) 규모에 직원도 5명 정도의 소규모 지점이죠. 청바지를 입고 일하는 지점장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단순히 대학가 지점을 개설한다고 젊은 조직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기업의 경영 발전 과정을 보면 경영 문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은행을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죠. 락스타 지점은 슬림형 TV로 즐기는 게임, 스마트 뱅킹, 직원들과 고객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정보 교환 등 대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서비스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내 시설 부족 문제를 돕기 위해 동아리방을 만든다거나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죠. 고객뿐만 아니라 기업도 젊어져야 합니다. 락스타의 은행장은 부장급이고, 지점장은 과장급입니다. 가능한 한 인근 학교 졸업생을 배치했죠. 어떤 지점은 5명 모두가 해당 학교 출신인 경우도 있어요.

젊은 감각과 문화를 혁신의 중심에 두는 건 대학에 오래 몸담아서인 것 같습니다.

저도 총장을 했지만 은행 지점 오픈 때 가지 않았어요. 그땐 지금보다 권위적이었나 봅니다(웃음). 이번 락스타 연대점 개점 때는 총장님께서 직접 방문해 주셨어요. KB금융은 황금색 로고가 고유 컬러인데, 연대점은 모든 실내 디자인을 블루 계열로 바꿨습니다.

고객 위주의 발상이죠. 이화여대점은 그린 계열에 지점명도 배꽃 지점입니다. 물론 연대는 독수리지점이고, 숙명여대는 눈꽃지점이에요. 미래를 지향하고 은행과 문화의 만남을 위해 홍대 앞에서는 인디밴드와 음악회도 열었습니다. 모두 젊은 KB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스페셜 인터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키워드는 젊은 조직…카드·증권 등 강화”
얼마 전 대학생 매거진 ‘캠퍼스 잡&조이’가 조사한 ‘대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CEO’에서도 1위를 차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CEO로 뽑혔다는 자체가 젊은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은행의 노력이 반영된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대학 총장을 했으니, 대학생들이 동료 의식을 발휘해 당연히 1등으로 뽑아줄 것이라고 예상했어요(웃음).

스포츠 마케팅에도 투자가 활발한데요. 지난번 시구도 그 일환이었습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어린이 단체에 1억 원을 기부했어요. 그곳 회장님의 주선으로 야구장을 찾은 거였죠.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보니 미국은 아이스하키·농구·미식축구 등이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리그가 열리는데, 10만5000명 규모의 관중석이 10년 동안 한 번도 빈 것을 못 봤어요. 말 그대로 동네잔치일 정도로 대학 스포츠가 인기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학 농구 경기장을 찾으면 관중석이 텅 비어 있습니다.

고려대에 있을 때 체육관부터 만들었습니다. 장충체육관 3배 규모로요. 고대총장배 고교 농구대회도 만들었습니다. 대학도 리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추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대학 농구리그 메인 스폰서가 돼 ‘KB국민은행리그’를 만들고 바둑도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모교에 대한 애정도 높이고 지역 경기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 문화 전파에도 더없이 좋은 방법이죠.

학계에 있다가 금융그룹 CEO로 진출하셨습니다. 학문적 소양이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인데, 영향력 면에선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얼마 전 일본을 보니 대진과 쓰나미 문제 해결을 위해 NHK가 가장 먼저 한 것이 전문가, 즉 도쿄대의 교수들을 모신 일이었습니다. 기업 경영, 특히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지난 40년 동안 국제금융 관련 일을 해 왔습니다. 앞서 예로 든 도쿄도 그렇지만, 서울은 정치·문화·경제가 몰려 있는 곳이죠. 대학도 서울에 많아요. 그만큼 교수들의 사회 참여 기회도 많습니다.

20년 전에 이미 금융통화위원을 경험했고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공적자금관리위원으로도 일했습니다. 이 밖에 한국상업은행과 하나은행 사외이사, 한국금융학회 회장, 국제금융센터 초대 회장도 맡았습니다.

저만큼 금융정책 결정 과정을 함께하고, 여러 금융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도 없다고 자부합니다. 고대 총장 이미지가 커 대학 행정만 했다는 오해를 사는 거죠. 국제금융, 자문·회장이라는 경험 덕분에 KB에 와서도 적응이 빠른 것 같습니다.

학문적 연구나 정책 결정이 아닌 기업 경영을 직접 해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경영을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말이 한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경영학에서는 ‘시스템은 똑같다’고 이야기하죠. 예를 들어 군대에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아이젠하워가 장군에서 총장, 대통령으로 변신한 게 좋은 예죠. 어느 조직에서나 기본적인 리더십은 같습니다. 국민은행 지분의 5%를 차지하고 있는 ING생명은 CEO가 필립스 사장 출신입니다. 전자 부문 CEO가 금융업에 도전해 성공한 케이스죠. 한 분야에서 성공한 경영인은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금융 실무 경험까지 많은 전 행운아죠.

총장과 CEO 등 대한민국 리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CEO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입니까.

물론 해당 업계의 전문 지식과 리더십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의 덕목은 ‘내 개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자세입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죠. 고대에 있을 때 역대 총장 중 가장 많은 수의 교수를 임용했습니다.

그때 뽑은 329명의 교수 가운데 단 한 명도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과에서 6촌 조카사위가 면접을 봤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뽑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스탠퍼드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네이처에 논문을 싣고, 미국 대학에서 강의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작 채용된 교수는 일본에서 공부한 분이었어요.

하지만 과의 선정 기준을 존중해 그대로 따랐습니다. 학과장에게 철저히 위임했죠. 변화와 혁신을 요구할 때 이런 자세가 더욱 필요합니다. 리더에 대한 존경심을 이끌어낼 수 있고 반발도 사라지게 되죠. 리더의 능력은 일부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공명정대한 자세죠.

최근 조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사 제도는 과거와 비교해 어떤가요.

아직 전통적인 인사 제도가 남아 있습니다. 연공서열이죠. KB는 은행 직원만 2만6000명에 이릅니다. 해병대 숫자와 같아요. 능력도 중요하지만 대위가 갑자기 중령이 되고 별을 단다면 오히려 조직 분위기를 해치기도 합니다.

조직이 커지면 어느 정도 관료적인 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걸 타파해야 합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빨리 리더가 되도록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죠. KB는 국내 금융그룹 중 가장 큰 조직입니다. 이와 같은 선도 금융그룹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경영 목표는 무엇입니까.

KB금융그룹이 경쟁 우위를 확보한 소매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젊은 층부터 은퇴 계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개인 고객에게 특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기업금융 부문에서 중소기업과 상생하고 우량 대기업과 기관 고객 기반을 넓히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특히 동반 성장 기조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량 중견·중소기업은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 경제 발전과 수출 증가에도 기여하는 ‘히든스타 500’ 같은 제도는 기업금융 부문에서도 진정한 ‘국민 금융회사’의 위상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기관 고객 영업도 강화해야죠. 기업금융 경쟁력과 수익성 강화를 위한 전담 조직 신설이 좋은 예입니다. 기업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해 우량 대기업을 주거래 고객으로 삼을 겁니다.

또 전통적인 여·수신 서비스 외에 외환, IB 금융 지원, 글로벌 자금 관리(Cash Management), 해외 은행과의 업무 제휴 등을 통해 대기업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한 채널과 인적 역량 제고 방안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대담 김상헌 편집장┃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