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문 연구소

[Special ReportⅡ] 타인의 시선으로 한국과 북한의 현실을 보다
‘자신’에 대해 오히려 자신이 잘 모를 때가 많다. 타인의 자리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객관적인 ‘자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해 오히려 한국인이 잘 모를 때가 많다.

더구나 한국인에게 북한은 ‘동포’이자 ‘원수’다. 이 같은 감정을 배제하고 볼 수 있으려면 역시 타인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문 연구소들은 때로 한국에 냉철한 분석과 충고를 하기도 한다. 한국을 보는 법을 미국에서 찾아봤다.

아태연구소
[Special ReportⅡ] 타인의 시선으로 한국과 북한의 현실을 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팰러앨토(Palo Alto)의 스탠퍼드대 안에 아태연구소(APAR IC:Wlater H. Shorenstein As ia-Pacific Research Center)가 보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스탠퍼드대의 규모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로, 서부에서는 최고의 명문대다. 면적만 3만3000㎢로, 캠퍼스 규모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태연구소는 최근 준공한 경영대학 신관 건물 옆에 들어서 있다. 방문 전날 졸업식이 있어 그날까지도 학사모를 쓰고 기념 촬영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널찍한 부지에 잔디와 나무들이 우거진 스탠퍼드 캠퍼스의 모습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역시나 이는 스탠퍼드대의 풍부한 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탠퍼드대는 미국에서도 기부금이 가장 많은 대학교로 알려진다. 학부 등록금도 연간 5만3000달러(약 5800만 원)에 달한다.

소장·부소장(2명) 모두 한국‘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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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연구소의 소장은 한국인이었다. 1983년 도미(渡美)한 신기욱 소장은 10년 전 스탠퍼드대로 부임했으며 연구소 내 한국학연구소를 만들기도 했고 아태연구소 소장을 7년째 맡고 있다.

한국말로 인터뷰가 가능해지자 미국인을 만날 때의 긴장감과 영어 스트레스가 단번에 사라지면서 편안한 느낌을 줬다. 아태연구소는 1983년에 설립됐다.

당시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던 때로 아태연구소도 주로 일본 관련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에 가장 관심이 많다.

“한국도 지난 10년간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됐습니다.” 신 소장의 말이다. 아태연구소 내에는 독립 분과로 한국학연구소·중국학연구소·동남아시아학연구소를 두고 있다. 현재 아태연구소의 주요 관심 분야는 동북아, 특히 한중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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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경제·사회·정치 분야를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방문 연구원을 하려는 사람이 100명 넘게 대기하고 있다. 반면 경제 전문가들의 지원은 뜸한 편이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아태연구소를 많이 찾았다. 흔히 스탠퍼드에서 1년간 연구하고 왔다고 하면 아태연구소를 말하는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세일 전 의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숙 유엔 대사, 신각수 주일 대사, 박원순 변호사 등이 이곳을 다녀갔다. 연구소 내에 붙은 박근혜 의원의 강연회(2008년)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재정 자립도는 당연히 100%다. 대학교에서 연간 10만 달러를 받지만 아태연구소가 몇 십만 달러를 대학교에 벌어 준다는 것이 신 소장의 말이다. 대학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목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정책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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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도 학교 것이고 연구원 월급도 학교에서 주지만 연구소 자체가 그 이상 벌어들이기 때문에 학교의 간섭이 거의 없는 편이다.

부소장은 2명 있는데, 대니얼 스나이더(Daniel Sneider) 부소장은 연구부문을 총괄하고 있으며 미국 국무부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때 주한미국 대사였던 리처드 스나이더의 아들이다.

행정 담당 부소장인 데이비드 스트라웁(David Strau b) 부소장은 아태연구소 내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스트라웁 부소장은 능숙한 한국말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한국어 실력은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수준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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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를 방문한 한국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니 보수파에 가까워 “연구소만의 정해진 성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나이더 부소장은 “그렇지 않다. 대학은 여러 가지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 연구소의 목표가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것이다.

다만 연구소의 결과물들에서 보여주는 관점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얘기했다. “주로 한나라당 정치인들만 오는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노무현 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이었던 이종석 전 의장도 다녀갔다”고 얘기했다. 노무현·박근혜·이종석 등 한국 정치인들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을 보니 그는 한국‘통’이 분명했다.

스트라웁 부소장은 1979부터 1983년까지 주한미국 대사관 영사로 근무한 뒤 다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2007년에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미국 외교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에도 능숙하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냐”고 묻자 “영어하는 사람에게 독일어는 식은 죽 먹기”라고 대답했다. 그는 일본어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아태연구소 내 한국학연구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 내부보다 한·미·북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여기(아태연구소) 오는 이유는 자기 나라 것은 외국에 나가서 외국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이에 덧붙여 한반도에 미국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미국 출장 중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대개 사무실 문 앞에서 인사하는 것과 달리 그는 몸소 엘리베이터에 탄 뒤 건물 정문까지 배웅했다.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것이었고 한국 문화로서도 최고의 손님 대접이었다.

노틸러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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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문 연구소로 잘 알려진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 Institute)는 한국인에게도 제법 낯익은 곳이다. 지난 5월 노틸러스연구소의 피터 헤이즈(Peter Heyes) 소장은 ‘북한의 핵 딜레마’라는 글을 통해 “북한이 경수로를 설계하고 건설하면서 국제 기준을 따르지 않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영변의 경수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북한이 혼자 수습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이 경수로 건설 초기 단계부터 적극 개입하는 것이 한 가지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2009년 6월 노틸러스연구소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효과적인 미사일 체계를 구축하려면 적어도 20~30회의 시험 발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북한의 현재 미사일 실험 속도를 감안할 때 앞으로 10년에서 15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류에 나서기도 했다. 1998년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에 5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것이다. 이는 당시 북·미 간의 신뢰 구축 조치로 기획된 시범 사업으로 노틸러스연구소가 주도하고, 존스재단·록펠러재단 등 민간 재단에서 재정을 지원했다.

비정부기구(NGO)가 북한에 식량이 아닌 에너지를 지원하는 최초의 사례였다. 풍력발전기 용량은 11kW로 500가구의 주민 2300명 가운데 절반이 하루 12시간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됐다.

한국보다 북한에 대해 더 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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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에 비해 노틸러스연구소는 외형적으로 규모를 자랑하는 연구소는 아니다. 현재 호주·미국·한국에 3곳의 연구본부를 두고 있는데, 한국은 서울 도심의 사무실을 접고 한신대 이기호 교수의 연구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사무소는 샌프란시스코대(USF) 내 15㎡ 규모의 작은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특별한 간판이 없어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스콧 브루스 국장과 인턴 1명이 있었고 인터뷰도 사무실 내에서 이뤄졌다.

1992년 피터 헤이즈 소장이 설립한 노틸러스연구소는 맥아더·포드·휴렛 등의 재단에서 주로 재정 지원을 받고(primary funding) 각국의 에너지 부처, 노르웨이 외무부 등의 각국 정부 지원과 시민 단체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전체 스태프는 10명 안팎으로 본부 격인 미국 사무소에 5명, 한국에 5명, 호주에 1명이다. 미국은 소장인 피터 헤이즈, 정보기술(IT) 담당자와 또 다른 스태프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브루스 국장과 인턴 1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이기호 교수 한 명이 풀타임 스태프이고 3~4명이 인턴이다. 호주는 단 1명의 스태프를 두고 있다.

미국과 한국 외에 호주가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브루스 국장은 “헤이즈 소장이 자란 곳이 호주이고, 또 남아시아와 네트워크를 만들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무소는 “북아시아의 중심이고 북한 등 논쟁적 이슈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노틸러스연구소는 유럽과 아프리카보다 환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노틸러스연구소가 다루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 ▷비핵확산(Non-proliferlation)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그것. 활동 방식은 연구 보고서 발간, 이슈에 대한 코멘트, 워크숍 등이다.

에너지 안보는 일본·한국·러시아·중국·대만·북한·몽골·인도네시아·베트남·호주에 걸친 10개국에 팀이 있는데, 이들은 각국의 에너지 동향을 파악해 대안 모델을 제시한다. 각 국가별로 공통분모가 있다면 국가가 함께 에너지 시설을 짓도록 하는 것이다.

노틸러스연구소가 최근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슈는 북한의 비핵확산과 에너지 안보다. 브루스 국장은 “북한은 2012년까지 권력 승계 과정에 있다. 미국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의회와 대통령의 의견이 불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정권 교체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과 관련된 이슈로는 “북한·중국·일본과 관련한 미국의 정책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팰러앨토·샌프란시스코(미국)=글·사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