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곧 혁신이다 22

“아무리 정리정돈을 강조해도 13년간 지켜지지 않았다”는 K 보고서의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다시’ 끝에 듣게 된 답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니…. 도대체 ‘정리정돈’과 ‘자기애’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모를뿐더러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에 사고를 거듭해 가자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갔다. 내가 정리정돈을 잘한다는 건 결국 자기한테도 큰 도움이 돼 돌아오게 마련이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침내는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결국 이 회장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근원적 얘기를 했던 것이다.

삼성이 일류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고객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오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제조 현장, 사무 현장을 가리지 않고 모두 일류가 될 수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1993년 6월 7일 나온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핵심은 ‘양보다 질’이었다. “지금까지는 양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질을 추구해야 한다. 양 100%를 벗어나 질 100%로 가자.” 질이라는 건 고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이는 결국 자신(삼성)을 위한 사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조하는 사람들은 양을 제로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양 50, 질 50으로 하시지요.” 이런 건의도 올려봤지만 이 회장은 확고부동했다. 오로지 ‘질 100%’ 이것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시작된 신경영의 요체다.



삼성 제품 바닥서 먼지만 뒤집어써

신경영이 시작된 배경에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K 보고서다. 하지만 그전인 1993년 2월 로스앤젤레스(LA) 회의부터가 시작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회장과 삼성 임원들이 LA의 전자 시장 상가를 돌아본 일이었다. 직접 현장에 나가보니 눈에 가장 잘 띄는 높이의 전시대에는 온통 소니나 도시바 같은 일본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다음이 미국산이었고 삼성 제품은 맨 밑바닥에서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다시피 했다. 어떤 건 고장 난 채로, 또 어떤 상가에선 덤으로 끼워 파는 경품으로 내놓은 곳도 있었다. 힘들게 생산해낸 우리 제품이 경품 취급을 받으며 진열대 바닥에 놓인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21세기는 정보의 혁명과 공유를 통해 모든 고객들이 1, 2등만 알고 찾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게 평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 자동차 회사도 3등 안에는 들어야 하고 반도체도 1, 2등만 이익을 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삼성은 1, 2등은커녕 아직 10등 안에도 못 끼는 수준이었다.

이 회장은 ‘이대로는 살아남기는커녕 망할 일만 남았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회장을 제외한 어떤 임원도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실적과 매출 분석만 보고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세기말의 변화를 보며 누구보다 절실한 위기의식을 품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일본에 가서 전문가들과 토론해 보니 모두 ‘삼성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고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당시 디자인을 지도하던 일본인 H 고문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건의했다. 이 회장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바꿔야 하나.’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얻어낸 답이 바로 ‘질’ 경영이었다.

이 회장은 세계 최고의 품질이 어떤 것인지 보고 듣고 깨닫지 못한 것이 삼성 위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삼성전자의 관계사 임원들을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다 집합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유다. 200명이 넘는 삼성전자 임원들이 프랑크푸르트에 모였다.

이들이 오는 동안 수행팀에 떨어진 명령은 “이제부터 유럽에서 세계 최고를 찾고 견학시켜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자동차 제조의 최고라는 벤츠와 폭스바겐, 에어버스를 조립하는 파리 공항 조립 현장, 세계 제일의 백화점과 각종 인프라 등 세계 최고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그 리스트대로 직접 찾아갔다. 돌아와서는 매일 저녁마다 각자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뼈저린 반성’이 회의 내용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유럽과 일본을 거쳐 68일간 이어졌다. 그동안 임원들은 회사 일에서 완벽하게 벗어났고 전화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몇 가지 질책만 듣고 곧 돌아갈 것으로 생각해 2~3일 출장 준비만 해온 사람도 많았다.

세계의 기업 역사에서 리더들의 마인드를 바꾸기 위한 이런 집중 교육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최고를 직접 보고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임원들 전부가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현장 개선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런 혁신 과정을 통해 오늘날 글로벌 삼성이 나온 것이다.

당시 처음 선보인 도요타의 렉서스, 그보다 먼저 닛산의 인피니티에 이르기까지 유럽 시장에서 일본 차들은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독일 아우토반에 오르면 시속 200㎞가 넘게 고속 질주하는데, 그 길에서 일본 차들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구성과 신뢰성의 문제였다. 일본 제품들이 유럽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닛산이나 도요타도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닛산은 “우리가 독일 차처럼 만들지 못하는 건 몸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닛산 회장은 개발자들을 독일로 보내 독일 최고의 차를 타게 하고 최고의 인프라를 경험하고 오게 했다. 그렇게 1년을 독일에서 생활하고 연구하고 돌아오니 과거 일본산 차를 타며 만족했던 체질이 사라졌다.

일류 자동차만 타다 오니 ‘이건 자동차도 아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유럽에서 처음 성공한 차가 인피니티다. 이를 똑같이 벤치마킹한 도요타도 렉서스를 성공시켰다. 두 브랜드는 유럽 시장 공략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명차 대열에 올라섰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는 체험, 그리고 이에 따른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1993년 2월 18일부터 나흘간 이건희 회장은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 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하고 세계 주요 전자제품과 삼성제품의 경쟁력을 비교, 수출확대책을 마련하는 등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현장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3년 2월 18일부터 나흘간 이건희 회장은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 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하고 세계 주요 전자제품과 삼성제품의 경쟁력을 비교, 수출확대책을 마련하는 등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현장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직접 경험해야 일류가 된다

삼성도 그랬다. 매일 저녁 큰 강당에 모여 서로 반성한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날엔가는 프랑크푸르트 호텔의 지배인이 “당신들은 무슨 종교 집단이냐”고 물은 적도 있다. 다들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고 낮에는 전도하러 다니듯 빠져나가고 밤이 되면 교주 같은 사람이 맨 앞에 앉아 있고 앞에 나와 얘기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일이 계속됐으니 종교 집단 같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류를 체험하기 위해 호텔·음식·교통 등 모든 스케줄이 세계 최고로만 짜여졌다.

한 기업이 변화하고 혁신을 이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깨달음이다. 그저 지시한다고 해서 혁신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마음으로 깨닫게 해 스스로의 눈높이를 높여줘야 한다.

신경영 행보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이 회장의 말이 있다. “삼성이 이 세기 말의 큰 변화 속에 혁신하지 않으면 결국 망할 것이다. 망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각자 생각해보라”는 지시였다. 이 말은 임원들에게 큰 깨달음을 준 계기가 됐다. 임원쯤 되면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주위에서 다 해주기 때문이다. 비행기표 하나 제 손으로 못 끊는, 더구나 망한 회사의 사람을 어디에서 받아줄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또 다른 충격도 있었다. 임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부장급에게 회사를 맡겨 놓았는데 돌아와 보니 오히려 그전보다 더 잘하고 있더라는 사실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임원들이 부장들에게 얹혀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임원은 상황을 크게 분석해 과제를 설정하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전략적 기능을 맡아야 한다. 제 부서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총제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저 부분 최적화에만 집중했다. 실로 엄청난 반성의 계기였다. 신경영 정신은 요즘 같은 위기에 다시금 돌이켜봐야만 한다.
신경영, 세계 일류를 보고 듣고 체험하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