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850호 (2012년 03월 21일)

[총성 없는 머니 전쟁터] ‘전봇대’ SK·KT·LG·케이블TV 사용권 놓고 ‘난타전’

기사입력 2012.03.20 오후 02:24

전봇대를 아십니까. 도시의 흉물이라고요? 전봇대가 없으면 도시가 마비될지도 모릅니다. 주(柱)당 300만 원인 전봇대는 땅속 케이블의 10분의 1 가격으로 전기와 통신을 공급하는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미관을 개선하기 위한 지중화 사업에도 불구하고 전국 840만 개의 전봇대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전봇대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인 총성 없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한국전력·KT·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케이블TV 업체들은 전봇대를 두고 지금도 영역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전봇대의 비밀을 해부했습니다.
KT가 필수 설비인 통신주 개방에 소극적인 사이 한국전력의 전주가 대여할 수 있는 통신선의 여력은 포화 상태가 됐다. 최근 필수 설비 개방을 두고 SK브로드밴드와 KT의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KT가 필수 설비인 통신주 개방에 소극적인 사이 한국전력의 전주가 대여할 수 있는 통신선의 여력은 포화 상태가 됐다. 최근 필수 설비 개방을 두고 SK브로드밴드와 KT의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전봇대는 크게 전주(電柱)와 통신주(通信柱)로 나뉜다. 전주는 한국전력(한전)이 전기 공급을 위해 세운 것이고 통신주는 KT가 통신선 연결을 위해 세운 것이다. KT가 통신주를 갖게 된 것은 과거 공기업이던 한국통신 시절, 독점적 전화 사업을 목적으로 세웠던 것들이 많다. 2010년 말 기준으로는 전주는 811만4103개, 통신주는 411만5968개다. 한전은 현재 (2012년 2월) 전국의 전주 수가 840만 개라고 말했다.

한편 KT를 제외한 통신 업체와 케이블 TV 업체는 한전과 KT로부터 전봇대를 빌려 쓰고 있다. 문제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돼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KT는 경쟁사인 타 통신 회사에 전봇대를 빌려주는 데 소극적이고 한전은 빌려줄 수 있는 여력이 포화 상태다. 그동안 수면 아래 꾹꾹 눌려 있던 갈등이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데는 한전이 제공하는 전주의 여력이 한계에 달한 것이 원인이다.

한전이 보유한 전주에는 전력선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통신선도 함께 다닌다. 전주의 가장 상단은 전력선이 다니는 길이다. 그 아래가 통신선의 자리인데, 통신선은 다시 상단선과 하단선으로 나뉜다. 통신선은 12개 이내로 제한되는데, 상단선 6개, 하단선 6개다. 전력선은 내부가 구리로 지지력이 있어 전력선 자체만으로 전주 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신선은 주로 흐물흐물한 광케이블이다 보니 지지력이 없어 보통 조가선으로 불리는 철제 케이블이 전주 사이에 연결되고 조가선에 낚싯바늘 모양으로 생긴 고리를 걸어 통신선을 얹게 되어 있다.

[총성 없는 머니 전쟁터] ‘전봇대’ SK·KT·LG·케이블TV 사용권 놓고 ‘난타전’

전주 811만 개, 통신주 411만 개

한전이 전주를 통신 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다. 당시 한전은 자회사인 파워콤의 통신 사업을 위해 전주를 개방하게 됐다. 이어 1996년 정보화촉진법에 따라 기간 통신 사업자에게 전주를 개방하게 된다. 1999년에는 일반 정보통신 사업자에게도 전주를 개방했고 2010년에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통신 업체가 필요로 할 때 의무적으로 전주를 대여해야 하는 ‘의무제공사업자’가 됐다. 파워콤은 2000년 LG그룹에 매각돼 한전은 현재 통신 사업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통신선을 빌려주는 입장이 됐다.

전봇대의 전선이 갈수록 엉키게 되는 이유는 통신 사업자와 케이블 방송 사업자(SO)의 무단 사용 때문이다. 무단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즉시 개통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로 통신사 등이 한전에 사용 신청을 하지도 않은 채 통신선을 깔아 버리는 것이다. 한전 측은 “일본에선 인터넷선 신청에서 개통까지 한 달이 걸리지만 한국은 5일 안에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보다 빨리 개통하기 위해 먼저 선을 깐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A사는 신청 당일 개통해 주는데 B사는 5일 걸린다고 하면 소비자로서는 A사를 선호하게 되는 이유다.

무단 설치의 둘째 이유는 이미 전주의 통신선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전주 통신선은 상단 6조, 하단 6조로 총 12조로 제한되는데, 이는 전주의 안전 규격을 고려해 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상단은 과거 파워콤 시절 전력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만든 배전 자동화용 통신선과 옛 파워콤(현 LG U+)의 상업용 통신선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상단 6조는 ‘파워콤(업계에선 아직도 파워콤으로 더 많이 불림)’ 위주의 선으로 깔려 있다. 우리도 배전 자동화 사업자로 참여해 같이 쓰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하단은 기간 통신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해 온세통신·드림라인·세종통신 등의 일반 통신 사업자, 케이블 TV SO들이 차지하고 있다. 포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신규로 통신선 사용 신청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KT의 필수 설비 개방 논란이 다시 지펴지고 있는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로 통신선이 무단 설치되면서 전봇대가 어지러워지고 있지만 무단 설치라도 한전이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 과거 한전이 무단 설치한 통신선을 철거하자 무단 설치한 통신사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미 개통돼 있는 상황이라면 철거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한전이 보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개통된 통신선에 대해서는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다. 한전 측은 “무단 설치된 통신선은 해당 통신사에 철거를 요청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840만 개나 되는 전주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소송을 하더라도 2~3년이 걸리다 보니 무단 설치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KT, 필수 설비 두고 SK와 신경전

한편 전봇대를 둘러싼 가장 핫한 이슈는 KT의 통신주 개방이다. 총성 없는 전쟁의 주인공은 SK브로드밴드와 KT다. 기존 전주가 포화 상태여서 KT가 단독으로 쓰는 통신주를 다른 통신사와 SO에 개방하라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KT의 통신주는 개방이 의무화돼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KT는 2004년부터 설비(필수 설비에는 통신주 외에 지하 관로도 포함됨) 의무 제공 사업자로 지정됐다.

필수 설비 개방의 근거는 이렇다. 통신사업자별로 제각각 전봇대를 세우면 미관도 해칠뿐더러 중복 투자로 자원 낭비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전봇대를 활용해도 충분한데 왜 전봇대를 새로 세우냐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한전은 811만 개의 전주 중 857만(중복 포함) 건을 개방(2010년 말 기준)했지만 KT는 411만 개의 통신주 중 17만 건만 개방한 상태다. SK브로드밴드는 “KT는 의무 제공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설비 등의 제공 조건 및 대가 산정 기준’의 문구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설비 제공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와 SO 등은 해당 고시의 용어를 혼란이 없도록 통일하고 요건을 보다 정확하게 명시하는 개정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상태다.

이에 맞서 KT는 필수 설비 의무 제공 해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했다. KT가 해제를 요청한 이유는 첫째, KT의 시장점유율이 2005년 52.5%에서 2010년 39.5%로 줄어 시장 지배력이 소멸했다는 것. 둘째, SK브로드밴드는 이미 KT와 대등한 인프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셋째, SK브로드밴드가 고시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최소한의 투자도 없이 KT 설비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LG는 비교적 느긋한 입장

SK브로드밴드는 이에 대해 “KT는 필수 설비 보유 사업자로서 설비 제공 의무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시장 지배력과 설비 제공 의무는 무관하다. KT가 보유한 통신주는 과거 공기업 시절 국민으로부터 준조세 성격의 설비비를 받아 구축한 필수 설비다. 그럼에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교묘하게 제도를 무력화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2월 한 차례 폭풍이 휘몰아친 이후 3월 초 다시 회오리가 몰아쳤다. SK브로드밴드는 필수 설비 개방보다 강도가 센 ‘필수 설비 구조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아예 통신주를 비롯한 지하 관로까지 모두 KT에서 떼어내 공동으로 써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자 KT는 3월 7일 ‘필수 설비 구조 분리 주장에 대한 KT의 입장’을 발표했다. KT는 “타사(SK브로드밴드 등)는 한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등 KT 시설의 대체재가 충분히 있다. 또한 타사가 단독으로 구축한 설비는 개방하지 않으면서 KT에만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통신 3사를 모두 의무 제공 사업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다음날 SK브로드밴드는 즉시 반박 자료를 냈다. SK브로드밴드는 “한전 설비를 이용한 것은 KT의 설비를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발 사업자들은 필수 설비 보유 사업자가 아니며 필수 설비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후발 사업자도 KT에 관로나 광케이블을 임대해 준 사례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대립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SK브로드밴드 측이 “통신주는 과거 KT가 공기업일 때 준조세를 받아 구축한 설비”라고 하자 KT 측은 “KT에만 필수 설비 의무를 강화하는 것은 재벌(SK브로드밴드와 LG 유플러스를 말함) 특혜 지원 정책”이라고까지 맞서고 있다.

기간 통신 사업자 3사 중 나머지 1곳인 LG유플러스는 어떤 입장일까. LG유플러스는 과거 한전 자회사인 파워콤이 피인수된 회사로, 전주의 통신선 중 상단을 거의 자가 통신선처럼 쓰고 있어 논란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다. LG유플러스로서는 KT가 의무 설비를 호의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면 SK브로드밴드보다 통신선 사용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의무 설비가 개방된다면 무임승차하듯 KT 설비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총성 없는 머니 전쟁터] ‘전봇대’ SK·KT·LG·케이블TV 사용권 놓고 ‘난타전’



취재=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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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2-03-22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