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생태계의 새로운 시도들


“퍼즐 게임이 이미 많은데 유사한 게임을 개발한 이유가 뭐죠?”, “유료화 모델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해외 진출 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웠습니까.” “아직 수익이 나지 않았지만 여러 게임 중 한 가지 게임이라도 혼을 싣고 만든다면 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네요.”

지난 5월 15일 밤 9시쯤 서울 논현동의 한 지하 스튜디오, 최근 스타트업 관계자라면 꼭 시청한다는 벤처 전문 팟캐스트(스마트폰을 통해 내려 받아 보는 방송) ‘쫄지말고 투자하라(이하 쫄투)’의 촬영이 한창이다. 이 쇼의 두 호스트는 벤처캐피털(VC)사의 대표다. 캡스톤파트너스의 송은강 대표와 IDG 벤처스코리아의 이희우 대표는 이날 게스트로 온 플라스콘 차경묵 대표에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질문만 보면 마치 청문회 같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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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쫄지말고 투자하라’의 촬영 현장. 이 방송은 벤처 관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팟캐스트 ‘쫄투’ 편당 다운로드 2000건

약 1시간 동안 플라스콘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을 마친 두 호스트는 촬영 마지막쯤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멘토링해 준다. 그리고 평가를 마친 각 호스트는 “10억을 투자하겠습니다”는 식으로 발표한다. 이 금액은 실제 투자라기보다 소개된 스타트업의 가치·잠재력·사업성 등을 감안해 내리는 일종의 평가 점수다. 호스트가 말한 액수의 투자가 곧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쫄투’ 방송 후 투자가 이뤄진 사례도 있다. 6회 출연자인 게임 제작 업체 디지털프로그의 노태윤 대표는 이 대표로부터 10억 원, 송 대표로부터 5억 원 등 총 15억 원을 투자받았다. 한편 3회 출연자 박재욱 VCNC 대표는 이 방송이 매개체가 돼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1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밤 10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이지만 방청하러 온 이들로 작은 스튜디오는 북적였다. 연세대 창업지원단, 다음 회 출연 예정인 스타트업 대표, 한국인 여자 친구와 함께 온 IBM 출신 독일인, 벤처 전문기자 등 약 25명이 모였다. 그리고 호스트와 게스트, 방청객 모두 촬영이 끝난 후 인근 커피숍에 모여 명함을 주고받으며 네트워킹한다. 이 자리에서는 즉석에서 다음 출연자가 결정되기도 한다.

아이튠즈 팟캐스트에서 ‘쫄투’는 한 편당 다운로드 1500~2000건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방송에 대한 리뷰란에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 창업하기 전에 보세요”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쫄투’는 호스트인 두 VC 대표, 소리웹의 이용진 대표 등 5명이 의기투합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 방송을 통해 생기는 수익은 없다. 다만 방송 제작비용을 각자 기부식으로 부담하며 단지 재미와 보람을 찾을 뿐이다.

호스트 이 대표는 “스타트업이 VC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며 “많은 벤처 최고경영자(CEO)나 예비 창업자들이 VC가 어떻게 벤처를 평가하고 투자하는지 감을 얻을 수 있고 방송을 통해 직접 기업을 홍보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얼마 전 부산의 한 벤처기업가가 ‘지방에서는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투자 받을 기회도 부족한데 쫄투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벤처 전문 팟캐스트로는 ‘쫄투’ 외에도 ‘벤처 야설’이 유명하다. 박영욱 블로그칵테일 대표, 김현진 레인디 대표 등 벤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벤처기업인과 VC, 기자가 함께 만들고 있다. 종잣돈 마련, 개발자 찾기 등 벤처 선배들의 창업 경험담을 에피소드로 엮어내며 ‘창업 교과서’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청년 창업 1000 프로젝트 2기 출신 벤처기업가 4명의 창업 관련 수다가 모여 있는 ‘사소한 CEO의 배고픈 시간’도 최근 뜨고 있다. 창업하면서 겪었던 서류 절차, 세금 문제 등 사소한 부분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정부의 벤처 지원 사업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팁도 제공한다.

해외 벤처인 사이에는 널리 퍼졌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도입된 개념이 바로 ‘공동 작업실(co-working space)’이다. 서울 논현동의 ‘코업(co-up)’ 사무실은 여느 회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는 1명, 혹은 2~3명으로 구성된 벤처 회사 10개사가 입주해 20개 책상을 각자 이용하고 있다. 입주한 기업들은 단지 사무 공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벤처 노하우와 정보도 공유한다. 이곳에는 웹디자이너와 앱 개발자 등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쉽게 옆자리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코업의 한 달 이용료는 24만 원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 무형적으로 얻는 것은 훨씬 많다. 이곳은 소위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요람 같은 곳이다. 양석원 코업 대표는 약 3년 전 이런 개념을 소개한 미국 신문을 보고 실리콘밸리에 직접 가 코워킹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단지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코업에서는 지난 3월부터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 그룹 소풍(Sopoong)과 손잡고 10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무 공간뿐만 아니라 시드머니 500만 원을 지원하고 3개월 후 평가를 거쳐 엔젤 투자와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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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 공간과 벤처 정보 공유 시대

한편 수많은 스타트업과 투자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거미줄처럼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벤처 투자자 이희우 대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약 1000명의 관계자들이 연결돼 있다. 절반은 스타트업의 대표들이고 나머지는 벤처투자가들이다. 이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벤처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을 진행한다. 메시지를 수백 명에게 동시에 보낼 수 있고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력·정보·조언 등이 필요할 때 신속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벤처 SNS 그룹으로 페이스북의 ‘CEO톡’,‘툭까놓고 HELP’, ‘꼴통, 나는 대표다’, ‘스타트업 그리고 페이스북 엔젤 투자 클럽’ 등이 있다.

SNS나 인터넷을 통해 10억 원 이하 소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 제도가 내년 상반기에 도입되면서 SNS 벤처 네트워크는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양석원 코업 대표 인터뷰
“최근 벤처 문화 급변하는 것 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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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원 코업 대표는 스타트업 사이에서 ‘이장님’으로 불린다. 스타트업을 위한 팟캐스트 ‘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제작하고 있고 코업이란 스타트업 공동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자금 지원을 통한 육성 사업도 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 스타트업 CEO를 응원하기도 한다. 마을의 이장처럼 벤처 생태계에서 스타트업의 고충을 해결해 주는 이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유명한 웹 기획자이자 대안 사업가다. 그는 공동 작업실을 통해 공유 경제의 개념을 국내에 확산하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일하다 미국에 가서 일하는 동안 코워킹 스페이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등 그들의 벤처 문화가 인상 깊었어요.”

그는 한국에 돌아와 적극적으로 이런 벤처 문화 보급에 나섰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생각대로 일을 끌어갈 수 없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 사업을 시작한 2년 전에 비해 벤처 문화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최근에는 벤처 1세대의 후배 양성 노력이 강하고 민간 차원에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과 엔젤·얼리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벤처 생태계가 잘 조성돼 준비된 창업자만 있으면 소프트랜딩할 수 있는 때”라고 설명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