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862호 (2012년 06월 13일)



[한국의 스타트업] 한국판 앵그리버드 우리가 만든다

기사입력 2012.06.12 오후 08:46

7명이서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동 운명체로 살아 왔다. 그 정도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인데 한두 명도 아니고 일곱 명이 똑같이 일관되게 마음을 지켰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같이 오래 지내다 보니 이들 중에는 두 커플이나 결혼하는 일도 생겼지만 그러면서 더 친밀해지고 결속력이 더 강해진 것 같다. 2000년에 처음 뭉쳐 지금까지 초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는 레드픽게임즈의 7인, 그중 신봉철 대표와 만났다.

부산대 시각디자인학과 93학번인 신봉철 대표는 군 제대 후 학부를 졸업하던 즈음인 2000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부산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던 선배가 온라인 게임을 같이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게임은 CCR의 포트리스다. 포트리스를 보고 디자이너로서 어떤 느낌이 들었느냐고 했더니 그의 대답이 이랬다. “인기를 많이 끌던 게임이었죠. 하지만 우리도 그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에 회사를 차렸죠.”


캐주얼 게임에 강점을 가진 레드픽게임즈는 한국판 앵그리버드를 노리는 게임을 내놓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은 신봉철 대표.

캐주얼 게임에 강점을 가진 레드픽게임즈는 한국판 앵그리버드를 노리는 게임을 내놓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은 신봉철 대표.


큰 회사보다 마음 가는 곳으로

그로서는 첫 창업이었다. 회사 이름은 드림미디어. 신봉철·김진의·정현옥·임영우·노현태·구자만·신훈교 등 7명에 처음 제안한 선배 등 10여 명이 이때 모였다. 대학 선후배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회사도 부산에 차렸다. 잠수함이 주인공인 ‘배틀마린’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뚝딱 만들어 창업한 첫해에 세상에 내놓았다. 이들이 처음 생각했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 입증됐다. 나오자마자 이 게임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록인 동시 접속자 수 2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었고 회원 수도 250만 명을 넘어섰다. 단기간이었지만 이들이 게임을 만드는 계기가 됐던 포트리스의 성적을 앞서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감이 생긴 이들은 턴제 슈팅 게임 ‘비틀윙’을 개발했다. 이들의 실력을 본 CCR가 찾아와 이 게임을 퍼블리싱했다. 드림미디어는 2003년까지 총 3개의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고 새로운 게임 개발을 시도하고 싶었던 신봉철 대표(그는 드림미디어에선 대표가 아니었음)를 비롯한 창업 멤버들이 나와 2004년 2월 탑픽이라는 온라인 게임 개발사를 설립했다. “2년 뒤엔 서울 가자!” 부산에서 시작했지만 서울 입성을 노린 이들은 2006년 분당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 이듬해 첫 작품을 출시했다.

이들의 첫 작품은 나나이모로, 캐주얼 비행 슈팅 역할 수행 게임(RPG)이었다. 당시로선 재미있는 시도였고 가능한 모든 게임 기능이 구현됐다.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개발 기간이 좀 오래 걸렸다. 2007년에야 출시된 이 게임은 넥슨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에 진출해 텐센트가 서비스했다. 텐센트가 서비스를 맡으면서 중국 현지에서 최고 동시 접속자 13만 명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텐센트가 개입하면서 게임 개발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텐센트는 나나이모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좀 더 크게 히트를 치려면 좀 더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대형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텐센트가 주문한 것은 본격 다중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이었다. 나나이모는 청소년과 여성에 타깃이 맞춰진 캐주얼 게임이었다. 돈이 더 되고 시장성이 좋은 분야는 MMORPG였고 텐센트의 주문으로 NX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개발2본부장을 맡고 있던 신봉철 대표는 20여 명에 달했던 개발2본부 직원 중 14명과 함께 회사를 나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대신 탑픽이 투자하는 형식을 택했다. 탑픽에 남았으면 어쩌면 좀 더 편하게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힘들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탑픽은 NX 프로젝트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MMORPG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해 2개발본부 식구들 중 상당수, 특히 드림미디어 시절부터 함께한 일곱 명은 흔히 말하는 MMORPG 장르보다 캐주얼 게임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개개인들의 성향이 그쪽을 훨씬 좋아하기도 했고요. 잘하는 것,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내키지 않는 것을 하는 게 싫기도 했고요.”


2000년 당시 최고 인기 게임이었던 ‘포트리스’에 도전해 ‘배틀마린’을 만들었던 10인의 창업 멤버들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최고 인기 게임이었던 ‘포트리스’에 도전해 ‘배틀마린’을 만들었던 10인의 창업 멤버들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게임 개발 주력

14명이 나와 2011년 11월 설립한 회사가 레드픽게임즈(REDPIG GAMES)다. 직역하면 ‘빨간 돼지’이지만 아기자기한 이미지를 위해 만든 이름인 것 같다. 빨간 돼지가 표현하는 상징이 이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장난꾸러기 같으면서 귀여운 형상이다.

탑픽 출신들이 추가로 합류하면서 직원은 19명으로 불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에 새로 사무실을 얻었다. 이들의 강점은 오랫동안 함께해 오며 호흡을 맞춰왔다는 것. 5, 6년은 기본이고 10년이 넘게 같이 있던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도 대부분 탑픽 출신들이어서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안다. 자신들의 장점이 있는 분야에 올인하기로 한 것도 이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처음에 3억5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게임을 개발하려면 이 정도 자본금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최근 투자 유치를 위한 작업도 하고 있다.

레드픽게임즈가 처음 만든 게임은 스마트폰용 모바일 게임 정글벨(Jungle Bell)과 주크로스(Zoo Cross)다. 둘 다 퍼즐 게임이다. 퍼즐을 맞추듯이 모양을 상하좌우로 움직여 모양이 3개 이상 맞으면 점수가 생긴다. 6월 초에 출시될 예정이다.

탑픽이 PC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레드픽게임즈는 스마트폰용 게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출시가 임박한 2개의 게임 외 개발 중인 3개의 게임도 모두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용 게임이다. “요즘 우리의 생활만 봐도 개발할 때가 아닌 평소에는 PC를 잘 켜지도 않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필요한 대부분의 일상을 처리할 수 있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 시장이 향후 PC 기반의 게임 시장보다 훨씬 커질 것 같습니다.”

한국판 앵그리버드를 노리는 그런 게임도 개발 중이다. 아주 쉽고 직관적으로 각도만 잘 맞춰 잡아 당겨 쏘아 타깃을 맞히는 그런 게임이지만 색다른 재미 요소를 주기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실내 장식이나 캐릭터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한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도 개발 중이다.

내년 6월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스마트폰용 역할 수행 게임(RPG)도 있다. 마을을 확장하고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기본이고 게임 속 세계의 숨은 영웅들을 모아 나만의 군단을 만들어 악마에게 잠식당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한판 싸운다는 내용이 줄거리다. 5개 개발작들이 차례차례 출시되면서 지금은 개발 전문 업체이지만 게임 서비스도 함께하는 회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서비스 분야의 인력 충원도 준비하고 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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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2-06-13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