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이지만 세상 바꿀 수 있다고 믿었죠”

지난 5월 31일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가 대학 캠퍼스를 찾아 한국 대학생과 만났다. 이날 오전 8시 40분부터 한양대 서울캠퍼스 백남음악관에서 열린 ‘캠퍼스 IT 콘서트’에는 대학생과 일반인 5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워즈니악의 미니 강의에 이어 원유집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의 사회로 학생 패널과의 대화, 청중 질문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주요 발언 내용을 정리한다.
[스티브 워즈니악] 워즈니악이 말하는 애플 창업 스토리
많은 사람들이 애플을 위대한 기업이라고 하는데, 그 시초는 처음 스티브 잡스와 제가 애플을 창업했을 때 가졌던 젊고 이상적인 가치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스티브와 나는 여러분 같은 젊은 20대로서, 돈도 없고 사업의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핵심 가치를 가지길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성공한 회사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한 번 성공한 제품을 비슷하게 계속 만들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컴퓨터에 빠져 10년 동안 스스로 공부

우리의 생각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던 젊은 친구들이 우리 단말기(PC, 당시의 애플Ⅱ)를 사용해 더 많은 능력을 갖게 하고 그들을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와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이후 줄곧 애플과 이 회사 기술 제품의 품질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됐습니다. 내 얘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애플 초기의 제품들을 모두 직접 만들었고 평생 엔지니어로 살았습니다. 특히 나는 어린 시절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나의 전자 기술에 대한 관심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조립용품 세트를 사주시곤 했습니다. 수학과 과학 등도 잘했지만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특별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학교의 친구들은 이런 것에 관심도 없었고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나는 참 특별한 아이였죠.

나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습니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 방구석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작업하곤 했지요. 나는 뭔가를 만들고 그것이 작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위치나 트랜지스터 같은 것에 대해 배우는데 빠져들었죠. 그 장치들을 모아 어떤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죠. 조금씩 그 기술들을 결합해 컴퓨터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조금씩 배워 가는데 10년 정도 걸렸죠. 수업이나 책, 경쟁자도 없었고 금요일까지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죠. 나는 컴퓨터를 설계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내가 학교에 다닐 땐 고등학교에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내가 전자 기계를 만드는 것을 보고 회사에 추천해 줘 그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는 순식간에 연산을 하지만 결국 사람이 설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볼 수 없었던 컴퓨터 코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교 1학년 때 선생님도 책도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 컴퓨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정말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컴퓨터 입문이 대학원 과정에 있었습니다. 공대생이었기에 그 코스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제가 짤 수 있는 모든 코드를 짜며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컴퓨터가 엄청나게 비싼 대학교에나 있는 귀한 것이었기에 마침내 나 자신만의 컴퓨터를 설계하게 됐죠. 그때 스티브 잡스를 만났습니다. 스티브와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고 뛰어난 친구였죠. 기본적으로 좋은 친구 관계로 출발했습니다. 스티브는 전자 기기에 대해 나름의 식견이 있었습니다. 휴렛팩커드(HP)에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치는 친구였죠. 삶에 대한 철학도 비슷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 워즈니악이 말하는 애플 창업 스토리
인생 철학 비슷한 잡스와 의기 투합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은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지 등 많은 내부의 것들을 공유했습니다. 음악과 다른 것들도 좋아했습니다. 나는 재미삼아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기기들을 설계했고 스티브는 언제나 그것들을 팔아 돈을 벌 궁리를 했습니다. 회사는 그것들을 팔아 세상을 바꿀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또 아이작 뉴턴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독립적 영혼이었습니다. 나도 대학 졸업장 없이 HP에 입사해서 오늘날의 아이폰4쯤 되는 계산기를 만드는 일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나만의 기기들을 설계하며 보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발명을 했습니다. 휴먼인터페이스 키보드와 컬러 TV 스크린이 그것입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녀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고 전자 기기를 빨리 그리고 적은 부품으로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게임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웃는지로 삶의 성공을 평가합니다. 게임을 TV로 플레이하곤 했는데, TV가 어떻게 시그널을 받아들이는지 기억해 내 1달러짜리 칩으로 0과 1만으로 색상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0과 1만을 전송했지만 TV는 이것을 컬러 신호로 인식하죠. 그래서 스티브에게 컴퓨터로 숫자를 입력하고 그 숫자가 TV에 색깔로 표현되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즉시 마주보면서 우리가 세계를 바꿀 끝내주는 아이템을 만들게 됐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색깔뿐만 아니라 움직임(애니메이션)도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으로 게임도 만들 수 있었죠. 우리는 컬러 영화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었죠. 우리는 매우 흥분해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때 돈을 투자할 엔젤을 찾았습니다. 매우 중요한 인물을 찾아야 했는데, 그가 바로 마이클 마쿨라였습니다. 그는 회사의 마케팅을 담당했고 회사를 마케팅 중심의 프로페셔널한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코치 겸 멘토였습니다. 회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스티브와 내게 가르쳐 줬죠. 첫 제품 후 몇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애플2 컴퓨터가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컴퓨터에 명령어를 넣어 작업을 지시했지만 맥킨토시는 2D의 아이콘을 사용한 지시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했듯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쉬운 것을 선호하죠. 이것은 현재까지 컴퓨터가 나아가는 방향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이때부터 항상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맥킨토시 팀에 있을 때 비행기 사고가 났고 스티브가 대신 팀을 이끌고 맥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IBM 같은 회사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그 순간이 가장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지요. 1984를 모델로 한 해머를 던지는 광고가 나왔죠. 이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스티브가 회사를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는 훨씬 더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온 세계가 당신과 동의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사람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수의 매우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일을 진행합니다. 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비판 등으로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며, 그 아이디어가 애플 제품으로 나올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성숙되도록 장려합니다. 사람들은 애플의 신제품을 볼 때 즉시 애플이 추구하는 퀄리티에 맞는지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멋진 제품을 만들 다양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좋은 제품을 내놓을 것이며 이는 거의 예술적 경지에 달한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어라고 말하든지, 당신 자신을 믿으세요. 당신 고유의 생각을 믿으십시오. 온 세계가 당신과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을 믿으십시오.





학생 패널들과의 대화
“멘토를 찾고 밑바닥부터 출발하라”
[스티브 워즈니악] 워즈니악이 말하는 애플 창업 스토리
스티브 워즈니악은 15분간의 미니 강의에 이어 학생 패널들과 45분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학생 패널로는 김신일(27·전자통신공학부)·이호태(22·분자시스템공학과)·박성우(25·신소재공학부)·아자소피아(24·전자통신공학부)·강수민(23·국제학부) 씨 등 한양대생 5명이 나섰다.

애플사를 만든 것은 돈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업계에 신선함과 놀라운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는가.

돈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물론 스티브는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기에 좋은 제품이 나오면 ‘우리는 이걸 팔아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고 싶었다는 점이다. 대학을 중퇴했다가 다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8년 동안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나는 아홉 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과 잡지 등의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HP와 IBM 컴퓨터 매뉴얼을 보고 공부하면서 나만의 컴퓨터를 디자인하곤 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면 그것을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열 살 때 휴대용 라디오를 만들었고 고등학교 때는 이미 높은 수준의 공학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취업 걱정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혁신적인 기기는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아이폰4가 아닐까 싶다. (흰색 아이폰을 꺼내며) 아이폰4는 작은 컨테이너 안에 많은 기능이 집약돼 있는 기기다. 스크린은 인간 친화적인 기능이다. 스크린을 터치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이곳에 오기 전 시리(아이폰4S에 기본 탑재된 음성 대답 비서)에 한국에 대해 질문했는데 즉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 시리가 내 좋은 친구같이 느껴진다. 언젠가는 내 마음까지 이해해 주겠지만 5~6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애플의 비밀은 무엇인가.

보안을 지키면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기밀 유지가 중요한 이유는 시장에 처음으로 선 보인 제품을 이기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선발자가 항상 가장 큰 이익과 성과를 갖게 된다.

창업을 꿈꾸는 학생이 많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멘토를 찾아라. 당신이 실수하는 것을 피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멘토를 구하라. 그리고 당신 자신을 믿어라. 대기업에 밀려서 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라. 나 또한 HP에 아이디어를 냈지만 다섯 번이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돈이 없다고, 자본금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처음에 스티브와 내가 애플을 만들 때도 돈이 없었다. 몇 백 달러가 없어 주문이 들어오는 데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찾아냈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 시작하면서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가라.

창업을 해야 할까, 취업을 해야 할까.

두 가지 모두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도 HP에 수차례 거절당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가령 6개월 만에 성공할 것이라고 자부하지 마라. 성공하기까지 5년이 걸려도 완벽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라. 스스로 하고 싶은, 믿는 일을 하라.

애플을 능가할 만한 회사는 어떤 산업 영역에서 나올까.

애플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를 주력으로 했다. 이어 음악 산업에 뛰어들어 아이팟을 선보였고 이어 아이튠즈 스토어를 전 세계에 소개하고 최종적으로 아이폰을 선보였다. 각기 매우 커다란 사업이지만 애플은 이 사업을 함께 이끌어간다(컨버전스). 그렇기 때문에 신제품이 나오면 우리가 이제까지 선보였던 제품의 틀(프레임워크)에 넣을 수 있다.


이재구 지디넷코리아 국제·과학 전문기자 jklee@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