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 항공사 급성장, 세계시장에서는 여전히 변방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종 전문 기관들이 새해를 예측하며 ‘트렌드 키워드’를 내놓는다. 올해는 물론이고 최근 몇 년 동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비 트렌드는 바로 합리적 소비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물론 가격 대비 품질과 서비스를 꼼꼼히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이 깔려 있다.

합리적 소비 선호 현상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 이하 LCC)의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 LCC의 급성장에 따라 전 세계 항공사 실적 집계 상위권에는 LCC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 세계 항공사별 수송 실적을 보면 국제선은 아일랜드 국적의 라이언 에어, 국내선은 미국 국적의 사우스웨스트가 각각 1위를 차지했고 영국의 이지젯은 국제선에서 3번째로 높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컴퍼니] ‘국가대표’ LCC 육성 위한 지원 ‘ 절실’
‘안전성·편리성·경제성’으로 시장 안착

전 세계적으로 LCC의 영역 확대는 세 가지 형태로 진행 중이다. 기존 LCC의 시장 확대가 첫 번째, 전일본공수(ANA)가 지난해 설립한 일본의 첫 본격 LCC인 피치항공처럼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는 형태가 두 번째, 기존 항공사가 기단 운영이나 운항 정책을 변경해 LCC로 바꾸거나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가 세 번째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세 가지 형태가 혼재된 상황이다. 가장 먼저 출범한 제주항공이 지속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자회사나 계열사 형태로 진에어와 에어부산을 설립하고 이후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이 시장에 가세했다.

LCC의 확대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06년 6월 제주항공 취항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기존 항공사 중심의 시장 구도가 점차 LCC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 기존항공사가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국제선에서 소폭 성장하는 수준에 그친 반면 LCC는 2011년 기준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5개 LCC의 국내선 수송 실적이 869만 명으로 제주항공이 처음 취항한 2006년 37만 명보다 무려 24배나 성장했으며 수송 분담률도 2006년 2%에서 2011년 42%로 20배 넘게 대폭 증가했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LCC의 2011년 국제선 수송객 수도 183만여 명으로 2010년 92만4000명보다 2배 이상 증가하며 국내선을 벗어나 시장 범위를 국제선으로 확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항공사별로는 제주항공이 2011년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해 약 300만 명을 수송하며 2010년 대비 무려 3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컴퍼니] ‘국가대표’ LCC 육성 위한 지원 ‘ 절실’
이처럼 단기간 내 우리나라 LCC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인지도 제고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안전성·편리성·경제성’ 등 기능성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에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한 결과로 보고 있다.

제주항공이 도입한 ‘얼리버드 운임제’는 국내선 편도를 최저 1만 원에 이용할 수 있어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현재도 LCC의 경제성을 상징하는 마케팅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기존 항공사 대비 저렴한 운임 구조는 세계경제 위기 여파로 인해 이제 여행의 대안이 아닌 최선으로 자리 잡았다. ‘편리’와 ‘안전’에 있어서는 기존 항공사에 비해 높거나 비슷한 수준의 정시율을 유지하는 등 소비자가 신규 항공사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뿐만 아니라 제주항공은 유럽의 저비용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하되 한국적 정서에 맞는 서비스 개발로 조기에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령 목적지의 ‘이동’에만 초점을 맞춰 모든 서비스를 유료화한 유럽이나 일본의 LCC와 달리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무료화하며 한국적 정서와 융화한 것.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국내선 수송 실적 분담률 42%였던 우리나라 LCC는 올해 국제선 확대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중·단거리 중심의 기단 운용 특성상 일본과 중국에 집중된 가운데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각각 우리나라 LCC 최초로 베트남과 라오스에 정기 노선을 개설했고,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 등 국내 5개 LCC는 올 하반기에도 신규 노선 취항과 기존 노선 증편 등 공격적인 노선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기점으로 하는 국제선에서 LCC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 세계 평균인 26%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고 우리나라 항공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동남아시아권의 평균 51%와 비교하면 겨우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컴퍼니] ‘국가대표’ LCC 육성 위한 지원 ‘ 절실’
우리나라 LCC는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에 비해 출발이 늦었지만 2006년 제주항공 취항 이후 잇따른 LCC의 취항으로 독과점 해소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의 확대와 운임 인하(물가안정) 등 긍정적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5월 취항한 일본의 피치항공을 시작으로 에어아시아 재팬, 젯스타 재팬, 에어필 익스프레스, 중국 춘추항공 등 동아시아권 LCC들의 시장 진입이 예상돼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각 항공사별 가격 및 서비스 경쟁력 확보는 기본, 정부 차원의 저비용 항공 육성 지원책이 필수로 동반돼야 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라이언에어와 이지젯 등 LCC가 국제선 수송 실적에서 전 세계 대형 항공사를 앞지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유로운 노선 개설 덕분이었다.



유럽·동남아·일본 정부 지원 적극적

유럽연합(EU)은 1997년 4월 역내 항공 자유화를 시작하며 국제선뿐만 아니라 시장 단일화가 완성돼 역내에서 자유로운 취항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영국 런던을 베이스로 하는 이지젯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파리 노선을 운항하는 것이나 아일랜드 국적의 라이언에어가 영국 런던의 스탠스테드 공항을 베이스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항공 자유화의 결과다.

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권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6년 3월 LCC 전용 터미널을 설립해 카운터와 사무실 임대료를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이들 국가가 LCC 키우기에 적극적인 이유는 아시아 항공 시장의 성장성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의 뒷받침은 원가 경쟁력을 높여 LCC 존재 이유의 핵심인 ‘낮은 운임’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나라보다 시작이 늦은 일본의 대응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일본 정부는 2007년 ‘아시아 게이트웨이(Asia Gateway)’ 계획을 공개하고 지방 공항에 대한 규제를 대폭 철폐했고, 벽지 공항에 들어오는 외국 항공사에는 해당 지자체에서 이·착륙료와 시설 사용료 등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나리타공항과 간사이공항도 입주 항공사의 임대료와 이용료 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새 터미널의 내장과 설비를 간소화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컴퍼니] ‘국가대표’ LCC 육성 위한 지원 ‘ 절실’
반면 우리나라는 2006년 제주항공 취항 이후 국제선 취항 준비 시점에 ‘국내선 2년 2만 회 무사고 운항’ 조건을 신설하는 등 지원보다 규제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2011년 인천~나리타 노선, 최근 김포~쑹산 노선 등 주요 노선에 대해 ‘균형 성장’을 이유로 매각을 진행 중인 항공사에 주요 노선 운수권을 배분하는 등 정책 운용에 난맥상을 노출하고 있다.

해외 LCC의 성공 사례 배경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듯이 이제는 ‘국가대표 LCC’ 육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과 함께 옥석을 가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항공사에 대한 기회 보장이 필요한 때다. 또한 기존 항공 산업과 신규 LCC 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서는 근거리 노선의 운수권 우선 배분, 공정한 경쟁을 위한 시장 왜곡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