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862호 (2012년 06월 13일)

[아! 나의 아버지] 대물림 된 한류 사랑

기사입력 2012.06.12 오후 08:53

지금은 배 나온 30대 유부남의 모습이지만 내게도 방탕한 시절이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세상에 대한 자만심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당시, 아버지께서 건방진 아들에게 일침을 가하셨다.

“성남 시장에 가보면 너보다 잘 노는 친구들이 많으니 그 친구들보다 잘 놀든지 아니면 정신 차려라.” 따끔한 충고였다.

아버지는 말씀을 아끼는 편이었고 표현력이 뛰어난 분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성장기에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유독 이 말씀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버지께서 전하고자 한 뜻은 항상 겸손하고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삶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근검절약을 삶의 지침으로 여기고 사셨다. 남들 앞에서 화려한 치장을 하거나 생색내는 것을 싫어하셨다. 자녀들 교육을 제외하고는 절대 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셨다. 검사 출신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 과학기술원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 치고는 과할 정도로 자기 자랑이나 소비에는 흥미가 없으셨다. 어릴 적에는 겸손함과 근검절약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에 불만도 있었지만 어느새 그것을 삶의 모토로 이어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종종 놀라곤 한다.
“ 아버지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내세우셨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 아버지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내세우셨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내세우셨던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한 자식들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칠 정도로 컸다. 혹시라도 자녀들이 미국에 대한 찬양 또는 사대주의적 발상을 논할 때면 언성을 높여가며 한국의 역사·문화뿐만 아니라 경제성장 및 스포츠까지 열렬히 옹호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내가 결혼하고 직장에서 이룬 업적까지도 “네가 한국에 적을 두고 있고 다시 이 땅에 돌아와 노력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라며 국가의 공으로 돌릴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할 것이다.

그런 가르침에 나도 모르게 현혹된 것일까. 이미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기 전부터 난 한국의 대중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고 그 가능성에도 항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영어권 최대 규모의 한류 포털을 운영하는 편집국장이 되어 있었다. 한국만의 우수한 문화와 멋스러움을 당당하게 전 세계로 전파하고 국가 이미지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꿈꿔 오셨던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한류가 점차 세계로 도약하는 시점에 어떻게 한국 문화를 더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지를 계획하는 요즘도 아버지의 가르침은 유용하다. 다만, 한류를 전파하는 입장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공교롭게도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숱하게 강조하신 겸손의 미덕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조금의 성공을 맛봤다고 해서 한류의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돌변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나뿐만 아니라 한류의 전파에 앞장서는 모든 분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라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김의준 숨피미디어 편집국장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2-06-13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