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862호 (2012년 06월 13일)



[일본] 사내 영어 공용화·이과 우대 ‘대세’

기사입력 2012.06.12 오후 08:54

요즘 일본 청년 사이엔 기존 상식과 동떨어진 인기 조짐이 화제다. 대상은 ‘영어’와 ‘이과’다. 영어·이과 트렌드는 그간 수면 아래 이슈였다. 기업 실적 악화로 승승장구하던 해외 진출(영어)과 기술 개발(이과)에 브레이크가 걸려서다. 붐이 인 건 최근이다. 바닥 탈출을 위한 돌파구로 일본 제조업의 근원 파워를 지목한 결과다. 핵심 기술을 유지·발전시켜 이를 해외시장에 내놓아 정면 승부하겠다는 의도다. 그러자면 이과 출신이 제조 현장에 보강되고 해외 공략 수단인 영어 스킬이 필수로 요구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영어 실력이 뛰어난 직원과 이과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영어 실력이 뛰어난 직원과 이과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다.


사내 공용화로 불붙은 영어 압박감

1980년대 해외 진출이 유행하던 시절 영어 회화는 승승장구의 보증수표였다. 다만 버블 붕괴 이후 영어 트렌드는 수그러들었다. 영어 학원 등 관련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상황은 최근 반전 조짐이다. 압권은 ‘영어 공용화’ 카드다. 영어를 회사 내부의 공식어로 하자는 의미다. 실제 유니클로·라쿠텐 등 거대 기업이 연이어 사내에서의 영어 공용화를 채택·실천 중이다.

닛산 등 일부 기업은 간부 사원에 한정해 영어 공용화를 시작했다. 물론 영어 공용화는 아직 실험 단계다. 2012년 여름부터 사내 공용어로 영어 채택을 의무화한 라쿠텐을 보자. 2010년부터 경영 회의와 전체 조회는 영어로 진행하고 식당 메뉴도 영어 표기로 바꿨지만 갈 길은 멀다고 본다. 글로벌화가 상당히 진척된 회사로선 전체 임직원의 정보 공유를 원활히 하고 해외 진출을 확대하며 우수 인재를 모으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채택했다. 임직원의 영어 실력은 확실히 향상됐다.

2011년 600명의 신입 직원 중 30%가 외국인으로, 회사 분위기도 영어 친화형으로 바뀌었다. 다만 경영진의 의욕과 달리 실상은 좀 다르다. 불만이다. 공식 회의가 겉돌아서다. 논의하기보다 일방 주장과 내용 확인에 머무르는 회의가 대부분이다. 일본어로 비밀리에 다시 회의를 여는 경우도 있다. 음모론도 있다. 구조조정 명분 차원에서 고령 임직원을 자르려는 혐의다. 해외 공략을 위해 국내 고용을 줄일 때 영어는 꽤 괜찮은 해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도 비슷한 분위기다. 2012년부터 간부 회의 및 문서 작성의 영어 사용을 필두로 사내 영어 공용화를 선언했지만 아직 어수선한 풍경이다. 평가 점수에 매달리는 부작용도 논란거리다. 본사 직원과 점장 간부는 토익 700점을 의무 점수로 재촉하는데 이게 역으로 본업보다 중시되는 느낌이다. 학습 프로그램 혹은 토익 수험이 업무로 취급돼 불참자에게 되레 불성실 꼬리표를 붙이며 압박한다. “그 노력을 품질 향상에 쏟으면 좋을 것”이란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사장이 외국인인 까닭에 경영 회의, 사내 메일, 서류 작성 등에 영어·일본어가 함께 쓰이는 닛산자동차도 그렇다. 영어 실력만으로 업무 능력이 판단되는 등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여론이 많다. 업무 집중도 및 사기 저하를 초래한다는 이유도 있다. “일본인이 일본 직장에서 일하는데 영어를 쓰는 건 어리석은 짓(혼다자동차 CEO)”이란 반응처럼 아직은 반발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대세다. 회사 조직에서야 불협화음이 있을지언정 선택권이 없는 샐러리맨으로서는 영어 능력 업그레이드가 절박해졌다. 영어 능통 여부에 따라 샐러리맨 사이에 연봉 격차가 500만 엔에 이른다는 분석까지 나와 압박을 더한다. 20~40세 직장인에게 취득하고 싶은 자격·점수를 물었더니 1위에 토익이 올랐다(오리콘·2008년).

토익(23.1%)의 뒤를 이어 정보처리기술(13.4%), 파이낸셜 플래너(12.9%) 등으로 나타났다. 성별·연령대 불문 1위는 토익 점수였다. 대학가엔 ‘자격 취득’ 붐이 한창이다. 토익 수험자는 매년 증가세다. 2011년(227만 명)엔 1979년 이후 최초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영어 실력의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어로만 학위 취득이 가능한 국제학부까지 대학가엔 속속 설립 중이다. 20~34세 젊은 여성 근로자에게 ‘학원 수강 인기 랭킹’을 물어도 1위는 영어 교습으로 조사됐다.


30대 문과 출신 화이트칼라 …‘짐 쌀 일은 시간문제’

30대 문과 출신 화이트칼라 …‘짐 쌀 일은 시간문제’


몸값 천정부지의 이과 남자 붐업

젊은 피의 이과 이탈은 선진국의 공통 과제다. 문과보다 이과 전공자가 적어져서다. 기술이야 배고플 때 중시됐지 먹고살만해지면 그럴싸한 문과 계통이 부각되게 마련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일본 청년의 이과 이탈은 심상치 않다. 학력 조사를 해봐도 이과 계열 관련 점수는 기술 대국 일본을 무색케 할 정도로 낮다. 이과·수학에 대한 관심·흥미 저하는 결국 제조 현장 위기로까지 연결된다.

‘관심 부족→흥미 하락→학력 저하→인재 미비→기술 저하→혁신 하락’의 악순환이다. 이과 폄훼의 근저엔 부정적 사회 인식이 크다. 나빠진 이과 이미지와 문과보다 못할 것이란 사회 통념이 대표적이다.

이랬던 이과가 요즘 집중 조명 중이다. 이과 트렌드는 일종의 사회현상으로까지 해석된다. 발원지는 ‘이과남자’라는 TV 프로그램이다. 2009년 시작된 ‘이과남자’라는 방송이 이과 트렌드에 불씨를 댕겼다. 4명의 미남 고교생이 공부를 도와주는 프로젝트(유저 참가형)를 줄거리로 삼았는데 큰 인기를 얻었다. 몰랐던 긍정적인 이과 이미지와 실제 장점 등이 확인되자 이과 출신의 몸값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과 과목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증가했다.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이과 출신자는 방송사 단골 게스트로 부각됐다. 특히 결혼 시장에서는 낙양지가(洛陽紙價)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본인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고 착실·성실한 이미지가 상위에 랭크된다. 실리적 장점도 뺄 수 없다.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자신에게 맞춰 색깔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안정적인 직업이 메리트다. 위험천만한 현대사회에 밥을 굶기지 않을 직업으로 이과의 전문성만한 게 없다. 바람 피울 확률이 적다는 점도 꼽힌다. 위험 회피 차원에서 부인을 연구 대상으로 봐 늘 배려하기 때문이다.

이과는 돈벌이에도 좋다. “문과 수입이 이과보다 많다”는 건 통설이었다. 버블 경기 땐 문과(금융업계 1000만 엔)가 이과(제조업, 400만 엔)보다 600만 엔 더 많았다. 이후 줄었지만 격차는 여전하다. 전공보다 업종 격차지만 일반의 시선은 그만큼 공고했다. 실태 조사는 이과의 연봉 승리를 증명한다.

이과 연봉(681만 엔)이 문과 연봉(583만 엔)보다 약 100만 엔 많다(2008년·도쿄대). 기술의 이과 출신자가 광범위한 직업 선택권을 가져서다. 2012년 조사는 격차가 더 커졌다. 각각 624만 엔, 488만 엔으로 140만 엔 벌어졌다. 비정규직은 각각 4.8%, 12%로 문과 계열이 더 열악하다. 대학 입시 때 수학 수험자(530만 엔)와 미수험자(440만 엔)의 연봉 격차도 크다. 이과 출신 웹 엔지니어의 신입 연봉이 1000만 엔인 기업도 있다.

이과가 잘 팔리는 건 직장·가정·인간관계 등 다양한 현장에서 특유의 논리적 사고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원적인 현상을 3차원의 공간·입체적으로 인식해 다각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과 트렌드가 뜨자 관련 시장은 문전성시다. 수학 문제 풀이 붐을 필두로 이과형 두뇌 자극을 위한 트레이닝 책까지 나왔다.

학력 저하와 맞물려 응용·독해력 저하가 지적되는데 이때 논리 사고에 익숙한 이과가 유력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두자리 이상의 곱셈 암산을 채택한 인도 교육도 동일 맥락에서 인기다. 단순 암기처럼 보여도 의외로 기술·증명 문제가 많아 상황 판단과 논리 사고를 키우는 데 제격이라고 본다.


30대 문과 출신 화이트칼라 …‘짐 쌀 일은 시간문제’

문과·대졸·30대는 화이트칼라 간부 후보생의 공통분모였다. 종신고용·연공서열제와 내부 승진 사장 제도를 통해 샐러리맨의 꽃이란 경영진에 올라가는 게 가능했었다. 이젠 상황이 변했다. 비용 절감 차원의 상시적 구조조정이 안착되면서 화이트칼라의 인원 정리가 흔해졌다. 생산·판매 현장은 이미 구조조정이 완료돼 추가적인 인원 삭감이 불가피해졌다. 남은 건 화이트칼라다. 그래도 20대는 낫다. 실무 담당자를 자르면 곤란하지만 월급 수준이 낮아 유지 합리성이 충분하다. 50대도 고령을 이유로 적잖이 인원 정리가 이뤄졌다. 핑계거리도 충분하다. 50대 이상이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블루칼라는 숙련과 다기능을 내세워 구조조정의 칼날을 일정 부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30대다. 특히 고비용 관리 부문이 타깃이다. 이과 출신의 기술적 직무 종사자는 예외다. 이들 30대의 한정된 직무 경험자라면 대개 고학력자로 보수 수준도 높다. 화이트칼라의 대량 실업을 염려하는 배경이다(‘문과·대졸·30대 이상이 잘린다’ 중 요약).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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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2-06-13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