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토즈라는 회사명은 혹시 약간 생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회사가 만든 게임명을 들으면 누구나 무릎을 친다. ‘아 애니팡 만든 그 회사.’ 애니팡이라는 게임은 흔히 ‘단군 이후 최초로 전 국민이 하는 디지털 게임’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 됐다.

동네 촌로에서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들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이토록 전 계층의 사람들이 특정 게임에 열광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애니팡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개발사인 선데이토즈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성공의 단맛을 본 시기보다 실패의 쓴맛을 본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시대 최초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운도 얼마쯤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희대의 바로 그 운이 올 때까지 이 회사와 창업자가 신념을 갖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냥 기다린 게 아니라 그 신념에 맞게 실력을 키우고 전략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참고 버텼다. 여기엔 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정웅 사장을 만나 그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스페셜 인터뷰] ‘애니팡 돌풍’ 이정웅 선데이토즈 사장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계속 달려야 살아남죠”
선데이토즈 창업자는 이정웅·임현수·박찬석 등 3명이다. 세 사람은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00학번 동기생들이다. 세 사람은 학교 때부터 친했고 자주 모였다고 한다. 학창 시절 친밀감이 있었기에 졸업 후 서로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만났다.

이정웅 사장은 트랙나인·신텍정보시스템·NHN 등을 거쳤다. 병역특례로 군 문제도 해결하고 NHN에서 4년간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 임현수 기술이사(CTO)는 고슴도치플러스·엔씨소프트 등에서 일했다. 박찬석 운영이사는 T3엔터테인먼트에서 한때 국민 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던 오디션을 개발했던 인물이다.



첫 번째 결단=잘하는 것을 하자

1981년생 동갑내기인 세 사람은 각자의 회사를 다니면서도 연락해 자주 모였다. 처음엔 그저 친분이었지만 점점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계속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다 ‘창업을 하자’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2007년부터 토즈라는 곳에서 만나 창업을 계획했다. 일요일마다 토즈에 모여 창업을 논의했다고 해서 나중에 회사 이름도 선데이토즈가 된다.

창업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장점은 셋 다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 서로 말이 통하고 팀워크가 잘된다는 점이었다. 반면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고 인맥이 제한돼 있고 게임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선 모른다는 것은 단점이었다.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시장에 안착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다른 창업 멤버들과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들이 잘하는 게임 분야에서, 특히 순발력 있게 게임을 출시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보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장은 한게임에 있던 시절 1년에 50개씩 플래시 게임을 만들 정도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그는 작은 게임을 빨리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소규모 게임들을 오픈 플랫폼과 결합해 승부를 내자고 다짐한 게 출발이 됐다. 돌다리도 두세 번 두드리고 건너갈 그런 스타일의 신중한 이 사장이 첫 번째 결단을 내린 것이다. 창업자 세 사람은 2년 동안 셋이서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성과를 확실히 낼 때까지 직원을 뽑지 말자. 눈에 보이는 성과가 확인된 다음에 회사를 확장하자.”

치밀한 계획, 자신의 재능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분석, 짜임새 있는 역할 분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데이토즈의 첫 작품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정웅·임현수·박찬석 세 사람이 처음 시도한 것은 ‘친구에게 게임을 만들어 선물하자’는 콘셉트의 게임, 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결합된 형태의 게임 서비스였다. 당시 아직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소셜 역할수행게임(RPG) 또는 소셜 네트워크 게임(SNG)을 발전시킨 형태다.

처음에 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비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도는 무참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왔다. 신중하게 시도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래도 이들은 첫 번째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자 했다. “첫 실패를 겪고 나서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부족한 게 참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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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부족했을까.

“창업자들이 모두 개발자 출신이라는 게 일단 약점이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큰 약점이더군요. 제품을 만들 줄은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마케팅할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고객 관리를 하고 서비스를 해 나갈지에 대해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소셜 게임은 개발 이후의 단계가 중요한데 말입니다. 너무 큰 게임부터 시작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페이스북에 없는 것을 만들자’라고 한 게 무리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선데이토즈 전략’이라는 것을 2009년 상반기에 수립했다. 경영 경험이 없던 이들은 뒤늦게 회사의 중·장기 전략, 단기 전술이라는 것을 한 차례 사업을 실패하고 첫 시작한 뒤 1년이 훌쩍 넘어서야 수립하게 된다. 그래도 그 필요성을 알았다는 점에서 실패가 의미는 없지 않았다.


두 번째 결단=소셜 게임 1등이 되자

뼈아픈 실패를 겪고 나서 이 사장은 두 번째 결단을 내린다. 한국형 소셜 플랫폼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고 이 시장에서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존의 모든 게임 개발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한창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에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에 앱스토어를 연다. PC 기반의 소셜 게임 시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선데이토즈는 사이트가 오픈되자마자 소셜 게임 애니팡·애니사천성·아쿠아스토리를 차례로 출시했다.

싸이월드 앱스토어는 마치 선데이토즈를 위해 준비된 무대 같았다. 물고기를 키우는 단순한 게임인 ‘아쿠아스토리’는 국내 소셜 게임 최초로 200만 회원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회원 수를 늘려나갔다. 애니윷놀이·애니사천성 등도 100만 회원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다. 자신감을 얻은 이 사장은 2011년 1월 야심작 ‘정글스토리’를 출시했다. ‘정글스토리’를 뛰어넘을 블록버스터 소셜 게임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 사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이 무렵부터다.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무난히 안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글스토리의 초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아쿠아스토리도 회원 수는 갈수록 늘었지만 수익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 정도 회원이 모이면 결제가 상당히 이뤄져야 하는데 번번이 그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표를 꼼꼼히 뜯어봤어요. 그랬더니 싸이월드 리뉴얼을 전후해 방문자 수, 이용자 수, 결제 비율 등 모든 지표가 정체되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됐죠.”

회사 안팎에서 싸이월드의 리뉴얼 탓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국내에서 PC 기반의 소셜 게임이 벌써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고민해 봤죠. 스마트폰이 10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확산되면서 스마트폰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PC 앞에 앉아 소셜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간단한 게임을 하려고 PC 앞에 앉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싸이월드에 2011년 7월 대규모 해킹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좀 줄어들었고 결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장은 선데이토즈의 전략을 다시 한 번 수정한다.
[스페셜 인터뷰] ‘애니팡 돌풍’ 이정웅 선데이토즈 사장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계속 달려야 살아남죠”
세 번째 결단=모바일에 올인

당초 이 사장은 2011년 여름께 차기작을 PC용 웹 버전으로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전략을 전면 수정한다. 기존의 모든 개발 라인업을 중단한 것이다.

“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그것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전을 모바일용으로 완전히 바꾸기로 했죠. 우선 선데이토즈의 최고 인기작인 아쿠아스토리를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하기로 했죠.”

두 번째 결단을 내릴 때와 상황은 유사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한 것은 분명했지만 돈을 벌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너무나 초기인 시장에 또다시 모험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셜 게임으로 전환할 때 승부수를 던졌듯이 이번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문제는 모바일 경험이 아무도 없다는 것. 1년 넘게 좌충우돌하며 배우는 학습의 시기가 이어졌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소셜 게임으로 전환하던 시절에는 실패를 겪은 뒤의 결단이었기에 사실 잃을 게 없었어요. 그런데 모바일 시장을 맞이하면서는 비장함마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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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존 소셜 게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던 게임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만들어 출시하는 것 자체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가장 자신 있고 실패 위험이 적다고 생각되는 아쿠아스토리를 우선 앱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때마침 카카오톡이 게임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었다. 6000만 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갖고 있는 카카오톡을 플랫폼으로 한다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수익 모델이 절실한 카카오톡은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다양한 게임들이 장점을 발휘하고 최대한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을 택했다. 이 사장은 카카오톡의 특성상 게임 시간이 짧은 애니팡이 최적의 콘텐츠라고 결론짓는다.

7월 30일 선데이토즈의 애니팡은 카카오톡의 게임 플랫폼 ‘게임하기’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한다. 약 1주일 동안은 잠잠했다. 점차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재밌다, 쉽다, 즐길 거리가 많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다운로드 1000만 건 돌파, 두 달여 만에 2000만 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게임 이용자 수는 1000만 명을 넘고 동시 접속자 수만 300만 명에 달한다.

출시된 지 이제 석 달도 안돼 세운 기록이다. 이 사장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미 게임이 아니라 문화가 된 애니팡을 통해 한국의 모바일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에게 후배 창업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뜻밖에 그는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자신도 여전히 “헤매면서 배우는 중”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언젠가 모바일 시대가 오고 대박 나는 업체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주인공이 선데이토즈일 줄은 몰랐다”며 “브레이크 없는 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벤처기업인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계속 달려야 살아남고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