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중 미국에서 판매된 승용차(SUV·픽업트럭 포함)는 114만 대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증가했다. 미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침체 국면에 접어들기 직전인 2007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최대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의 11월 판매량은 18만6505대로 전년 동기 대비 3% 증가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는 각각 6%와 14% 늘어났고 도요타(17%)·혼다(17%)·닛산(13%) 등 일본 메이커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연비 부풀리기’로 미국 시장에서 곤욕을 치렀던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량도 8% 증가했다. 현대자동차 미국 내 판매량도 8% 증가
레이드 빅 랜드 크라이슬러 닷지브랜드 사장은 최근 LA모터쇼에서 “자동차 업계는 재정 절벽(fiscal cliff) 우려와 동떨어져 있다”며 “내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2억4500만 대 자동차의 평균 나이는 11년이다. 20%는 16년이 넘는다. ‘고물 차량’이 길거리를 덜컹덜컹거리며 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엄청난 잠재 수요(pent-up demand)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시의 현대자동차 딜러 숍에서 만난 마리아 차베스(52) 씨는 “10년 만에 새 차를 구입하러 왔다”며 최첨단 장치로 가득 찬 신형 아제라(한국명 그랜저)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딜러들은 “금융 위기 이후에 억눌려 있던 자동차 소비가 살아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동차 할부금융(오토론)도 늘어나고 있다. 예전 오토론을 제한했던 은행들이 다시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다. 금리도 크게 낮아졌다. 36개월 할부 금리는 연 2.7~ 2.9%대 수준이다. 뉴욕연방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6~9월까지 오토론은 180억 달러 증가해 잔액이 7680억 달러로 늘어났다. 최근 4년간 최고 수준이다. 미국자동차딜러협회의 폴 테일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와 초저금리가 자동차 수요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는 심리 호전도 한몫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가계의 부채 조정(디레버리징)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가계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며 이자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 부채는 11조3000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740억 달러 감소했다. 3분기 연속 감소세였다. 오토론과 학자금 대출 등이 늘었지만 전체 가계 부채가 감소한 것은 주택 관련 대출이 같은 기간 1200억 달러 줄었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관련 대출은 9월 말 기준 8조300억 달러로 최근 6년간 최저 수준이다.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쓰는 홈 론(home loan) 잔액이 줄어들고 압류 주택이 감소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관계자는 “오토론과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사용 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자금 사정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미국)=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