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부문에서도 고용 사각지대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서 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무기 계약직 887명에 대해 호봉제 전환이 추진된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통계청 조사원들이 일한 햇수에 따라 임금을 높여 받을 수 있도록 증액한 내년도 세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정한 인건비 기준과 별개로 전격 결정돼 파장이 예상된다. 18만 명에 이르는 공공 부문 무기 계약직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일 전망이다.
[경제부처 24시] 무기 계약직 처우 개선 놓고 ‘갑론을박’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1월 20일 전체 회의를 열고 통계청 무기 계약직 호봉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15억6500만 원을 증액한 내년도 세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기획재정부가 작성했던 원래 예산안에는 호봉제 도입 내용이 없었다. 도입 취지에 공감한 여야가 전격적으로 결정한 사항이었다.

앞서 여야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10억6500만 원을 증액하기로 했고 기획재정위 간사가 합의해 5억 원을 추가로 늘렸다. 당시 참여했던 한 여당 의원은 “양극화 해소라는 취지를 생각해 전격 합의했다”며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심의 시간이 촉박했다”고 전했다.



무기 계약직 ‘무늬만 정규직’ 호소

무기 계약직은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를 말한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동일한 사업장에서 2년 넘게 일한 기간제 근로자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다. 공공 부문의 무기 계약직 근로자는 18만 명(2011년 기준)이다. 정년을 보장받기 때문에 ‘사실상 정규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임금이 낮고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 혜택에서도 제외될 때가 많다. 공무를 하지만 공무원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무기 계약직으로 점차 전환하기로 한 가운데 무기 계약직 안에서도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주로 호봉제 도입 요구다. 통계청은 무기 계약직 규모가 크고 장기 근속자가 많아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이슈가 됐다.

통계조사원은 각 가구나 기업체, 농업 경영체 등을 방문해 각종 통계 조사를 진행한다. 이규희 통계청 노조위원장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공무원(기능 5~9급)이 10호봉제를 적용받아 연 2000만~8000만 원을 받는 데 반해 무기 계약직은 연 800만~1300만 원 정도를 받는 데 그친다”며 “10년 넘게 일해도 1년 일한 자와 똑같은 임금을 받아 박탈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번 증액안이 통과되면 5년 이상 근무한 통계 조사원은 내년부터 10만 원 정도 임금 인상 효과가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전체 행정기관의 무기 계약직 인건비 인상률을 3.0%로 정한 상태다. 내년 예산안에도 이를 총괄적으로 적용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예상하지 못한 인건비 증액이 추진되자 ‘한 기관에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관별로 호봉제를 도입하면 자체 경비 절감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한 군데에만 추가 재원을 투입하면 원칙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획재정위에서 “비슷한 기관들의 인건비 인상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상남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무기 계약직의 호봉제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앙 행정기관에서도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 등의 근로자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구성된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무기계약직공동투쟁연대’가 이들의 목소리를 이끌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공공 기관 내 무기 계약직 관리를 체계화하고 부처별로 제각각인 임금과 처우 문제에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