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이 대표 취임 1년여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그룹 비서실과 주요 계열사를 거친 경영 분석 전문가로, 경영 안목과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부회장은 2011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한 후 사업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영 안목과 추진력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게 삼성그룹 내의 평가다.

박 부회장의 승진에 즈음해 삼성그룹 측은 “박 부회장이 국내 보험 시장을 선도하고 글로벌 초일류 보험사로의 성장을 견인할 기반을 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금리·저성장 등 금융업이 직면한 난제를 타개할 적임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인사로 박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 대표이사 중 가장 높은 직급인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금융 계열사에서 부회장 승진이 나온 건 2006년 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 이후 6년여 만이다. 그런 만큼 삼성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 계열사에 대한 권한과 역할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대 신화 박근희 부회장의 성공 키워드 “스펙보다 각 분야서 내공 쌓는 게 중요”
박 부회장의 승진이 발표되자 사내에선 ‘예상된 결과’라는 평가다. 197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박 부회장은 34년간 그룹과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삼성캐피탈을 시작으로 9년간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을 두루 맡으며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2011년 6월 삼성생명 대표로 부임한 후엔 혁신을 주도하며 어려운 경영 환경에도 기대 이상의 경영 성과를 냈다. 그 덕에 최근 3분기 영업이익은 3215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00% 이상 늘었다.

저금리 기조로 보험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11년 만에 외부 컨설팅 업체에 경영 진단을 맡긴 것도 박 부회장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재신임을 받은 것이다.



삼성카드·중국 본사 거치며 인정받아

삼성 내에서 이건희 회장이 아끼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는 박 부회장은 ‘지방대 신화’로도 주목받는다. 1953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청주상고(현 대성고)와 청주대 상학과를 나왔다. 정작 박 부회장 본인은 “상고와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이 한 번도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11월 강원대에서 열린 삼성그룹 순회 토크쇼 ‘열정락서’에서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지방에서만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삼성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스펙보다 전문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각 분야에서 내공을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197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총무·경리과에 들어가면서 삼성맨이 됐다. 2004년 삼성캐피탈 사장으로 부임하기까지 삼성전관과 삼성비서실, 삼성구조조정본부 등에서 재무와 경영 진단 등을 담당했다. 한 분야를 맡으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 덕에 사내에서 ‘일벌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그룹 경영진단팀장을 맡은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진가를 발휘했다. 당시만 해도 매년 1조 원 가까운 이익을 내던 삼성카드를 감사한 뒤 “그룹 창설 이후 최대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라 그룹 차원의 사전 조치가 이뤄졌고 삼성카드는 이후 터진 ‘카드 사태’ 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같은 해 그는 삼성캐피탈과 삼성카드 사장을 잇달아 역임하면서 두 회사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삼성카드를 안정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은 후 그는 삼성그룹 중국 본사 사장 겸 삼성전자 중국총괄 사장을 맡는다. 2005년부터 6년간 중국 본사 사장을 맡으며 그는 중국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부회장이 중국 사업 총괄을 맡은 직후인 2005년에 100만 대에 그치던 중국 지역 노트북 생산이 2009년에는 600만 대로 6배 뛰어오르는 등 괄목할만한 실적 개선을 이뤘다. 생산 라인을 셀(cell) 방식으로 바꾸고 부품 조달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혁신을 지속적으로 단행한 결과였다.
지방대 신화 박근희 부회장의 성공 키워드 “스펙보다 각 분야서 내공 쌓는 게 중요”
공격적인 영업·현장 경영 ‘집중’

2010년 귀국한 그는 삼성생명 보험담당 사장으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2011년 6월에는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후 사업 전반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추진력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단행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다.

삼성생명 대표이사를 맡은 후 그는 ‘현장 경영’에 집중했다. 대표이사 취임 후 거의 모든 지점과 영업소를 직접 방문했다. 올 초 삼성그룹 인트라넷에 오른 사내 인터뷰에서 박 부회장은 “현장을 모르는 CEO는 허수아비다”며 “CEO라면 우리 직원이 어떤 사무실에서 일하는지, 냉장고는 있는지, 화장실은 깨끗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그는 이 인터뷰에서 “사장이 의전에 신경 쓰면 회사가 망한다”며 “지방에 출장 가서 임원 차를 타면 엉덩이에 뿔 안 난다. CEO가 되려는 사람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얘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장 경영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박 부회장은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펼치고 방카슈랑스와 독립 법인 대리점 등 비전속 판매 채널에 대한 성장도 적극 도모했다. 하반기에는 은퇴 설계 관련 포털 사이트를 오픈하고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가문 관리 컨설팅 서비스 등을 실시했다.

중국 본사 사장의 경험을 살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었다. 취임 후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삼성생명은 국내에서 절대적인 1위를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국내에 머무를 수는 없다”며 “앞으로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모든 경영을 글로벌화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은 중국과 태국에 진출한 데 이어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을 기점으로 해외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외 진출은 “금융사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이 회장의 소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 회장은 수년 전부 터 “금융에서는 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회사가 나오지 않느냐”며 금융 계열사의 혁신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인사에서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대폭 교체한 것도 그 같은 질책의 일환이었다.

박 부회장의 승진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가 부회장으로 동급인 것처럼 삼성생명도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금융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이 회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또한 박 부회장 외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윤용암 부사장이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자산운용은 올해 펀드 수탁액과 운용 보수 감소 등으로 삼성그룹 경영 진단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자산 운용 업계에서는 윤 사장이 삼성생명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주식과 채권 운용 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과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 김석 삼성증권 사장,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 등 나머지 금융 계열사 대표이사들은 모두 유임됐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