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스피치

유명 개그맨에서 시작된 ‘버럭 스피치’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갑작스레 화를 내며 호통을 치는 이 화법은 의외로 상대방의 웃음을 자아내는 촉진제로 종종 사용된다.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이 불리한 것 같으면 버럭 화를 내는 이 화법은 사실 화를 내고 있지만 자신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그맨처럼 위트 있는 연출력이나 연기력도 없으면서 아무 때나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직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눈 뒤 농담까지 주고받고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180도 태도를 바꿔 화를 내는 리더도 있다. 반대로 함께 담소를 나누며 웃고 즐기다가 혼자 진지한 태도로 전환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리더도 있다.

이렇게 뜬끔없이 분위기를 바꾸면 순간적인 카리스마는 작렬하겠지만 상대방의 기분은 얼떨떨해질 수밖에 없다. 대화도 감기와 같아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마음의 몸살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노련한 리더라면 상대방을 꾸중하거나 칭찬하는 과정에서 온도를 서서히 내리기도 하고 서서히 올리기도 하면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따라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부하에게 영하 5도에 해당하는 꾸중을 해야 한다면 처음 대화의 시작은 0도부터 출발해야 한다. 20도에서 출발해 갑작스럽게 영하로 떨어뜨리면 상대방의 마음이 바로 얼어버린다. 감정을 순식간에 바꾸면 부하는 모욕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상대방에게 반응을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 적당한 온도에서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그러고도 화가 나면 꾸중해야 하는데, 다짜고짜 버럭 화부터 내면 상대방은 할 말을 잃어버린다. 부하의 변명을 들으면서 서로 중간 온도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다.
‘0.5초의 예술’ 깜짝 화법 활용법 “상대방이 감정을 전환할 시간을 허락하라”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서프라이징 화법’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시험에 합격했는데 일부러 떨어진 척 표정을 짓다가 합격했다고 알려 사람들을 더욱 기쁘게 하는 화법을 말한다. 그런데 이 화법에도 중요한 테크닉이 있다. 슬픈 감정에서 기쁜 감정으로 갈 수는 있지만 나쁜 감정에서 기쁜 감정으로 가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하가 승진한 것을 숨기고 일부러 떨어진 척하려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어쩌지?”하다가 승진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테크닉이 부족한 사람들은 화를 내며 “아니 그 실력에 승진을 바랐어? 나 참 기가 막혀서”라고 말한 뒤 승진 소식을 알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소식에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진다.

깜짝 화법에서는 앞부분에 비판적인 말을 사용하려면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농담이라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 사실 이 화법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만 앞말과 뒷말 사이 표정이나 말의 뉘앙스에 변화를 넣어 상대방에게 감정 변화로 들어갈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깜짝 화법을 ‘0.5초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종종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답답한 상대방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가 터져 흥분하기도 한다. 이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 자신은 속이 후련하겠지만 상대방은 당황하게 된다. 나중에 사과하고 달랜다고 하더라도 그 서운함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대화에서의 교양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거나 품위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 때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서서히 온도를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표현하면서도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방 마음의 문에 노크하고 상대가 걸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0.5초의 예술’ 깜짝 화법 활용법 “상대방이 감정을 전환할 시간을 허락하라”
안미헌 한국비즈트레이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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