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숙 교수(한국인 최초 OECD 근무)의 국제기구 진출 멘토링

지난 12월 11일 대학생 기자단과 함께 이화여대를 찾았다. 국제기구 진출에 필요한 조언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국제기구 진출의 멘토가 되어줄 사람은 남영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ILO(국제노동기구)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9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인 최초로 OECD에서 일한 그녀는 회원국들의 근로 환경, 여성 복지, 그리고 아시아 경제 개혁 문제 등을 분석했다. 이후 국제협상 전문가로 활약하다가 현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임 중이다.
[외국계 기업] “매력적인 직장…스펙보다는 실력을 쌓아라”
처음에 어떻게 국제기구에 들어가셨나요.

전공이 개발경제학이에요. 특히 개발도상국의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세계은행(World Bank)의 일을 돕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국제기구의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학교에 있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현장에서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마침 ILO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어요. 시험에 통과해서 2년 반 정도 일하다가 OECD로 자리를 옮겼고요.

국제기구라는 조직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국제기구 직원을 국제공무원(International Civil Servant)이라고 해요. 즉 공무원처럼 관료 조직의 일원이라는 거죠. 국제기구는 관료 조직의 초거대 버전이에요. 그러다 보니 관료 조직이 가진 특징이나 문제를 가지고 있죠. 많은 학생들이 국제기구의 일을 ‘인류의 복지와 평화’로만 생각해요. 물론 크게는 그런 일을 하지만, 하루하루 부딪치는 건 관료적인 업무들이에요. 그것에 낯설어 하거나 안 맞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떤 성향이 국제기구에 잘 맞을까요.

그것도 기구마다 달라요. 예를 들어 제가 있던 OECD는 학자적인 성향이죠. 연구하고 분석하고 보고서 내는 게 기본 업무니까요. 반면 UNDP(유엔개발계획) 같은 곳은 현장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한테 맞아요. 자기한테 맞는 기구를 골라야 해요.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제가 낸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읽혀요. 일을 할 때는 잘 모르는데 그걸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면 정책으로 반영되는 등 파급 효과가 크죠. 지식인으로서 그런 보람이 있었어요.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면 어떤 얘기를 많이 해주시나요.

대부분 제네바나 비엔나의 유엔 기구에서만 인턴십을 하려고 하더군요. 물론 좋겠지만 쉽지 않아요. 돈도 많이 써야 하고요. 전 학생들에게 아시아 국가를 가라고 해요. 문화적으로도 가깝고 돈도 덜 들고, 무엇보다 더 잘 도와줄 수 있어요. 국제기구를 서구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이종욱 박사님도 남태평양을 통통배 타고 돌아다니시면서 시작해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까지 오르셨잖아요. 그게 진짜 국제기구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죠. 저야 운이 좋아서 본부로 갔지만 여러 가지 루트를 살피는 게 현실적이에요.

UN employment(유엔 채용)에 집착하다 보면 unemployment(실업) 신세가 된다는 말도 있던데요.

맞아요. 물어보면 다들 꿈이 국제기구래요. 그런데 그게 다들 반기문 사무총장급이죠. 꿈을 갖는 것은 좋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면 오히려 불행해져요. 현실적으로 뭐가 가능한지 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측면에서 국제기구는 하나의 옵션으로 두고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국제기구는 기본적으로 입직의 문이 좁고 경력을 원해요. 회사에서 관련 경력을 쌓고 전문가가 돼서 중간에 들어가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요. 오히려 그런 사람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국제기구를 가고 싶은데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기업에 가야 할지 NGO 같은 데서 경험을 쌓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겠죠. 예를 들어 인권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NGO 활동을 해보고 이슈를 아는 게 가까울 것이고, 개도국의 창업을 돕는 IFC(국제금융공사)에 관심이 있다면 기업 경험이 낫겠죠. 국제기구에서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경험이 다양할 수 있어요.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사람을 뽑는다면 법이나 통상이 아닌 NGO의 경험을 굳이 요구하진 않겠죠?

분야와 기구에 적합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거군요.

이삭줍기 식의 스펙 쌓기는 소용없어요. 국제기구는 인터뷰로 결정돼요. 인터뷰에서는 화려한 스펙보다는 자기 실력과 열정이 있어야 통해요.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그 분야에 대해서 고민했고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됩니다. 결국은 공부를 해야죠. 단편적인 상식 공부도 많이 하던데, 교양상식 정도가 아니라 그 분야의 고전부터 제대로 읽는 게 낫다고 봐요.

사실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어요. 스펙을 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남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좌우돼서 그래요.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자기 실력을 쌓고 책을 많이 읽는 게 좋아요.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국제기구에 당장 못 들어가더라도 경험을 쌓고 뒤를 볼 수도 있고요.

그 외 국제기구 진출을 위해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국제기구는 보통 순환근무를 해요. 본부에서 현장으로 옮기기도 하고 근무지가 바뀌기도 해요. OECD 경우에는 분석해야 할 담당 지역을 순환시켰어요. 그래서 제너럴리스트를 원해요. 인터뷰할 때도 이 사람이 이 분야에서 폭넓은 사고를 하고 있는지를 보고요. 아주 미시적인 것보다는 국제적인 트렌드에 대해서 알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해요.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한다고 하셨는데, 전문성도 중요하다고 하셨고요.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나요.

제너럴리스트라고 한 건 일반적인 그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의 제너럴리스트를 말해요. OECD라면 경제가 되겠죠. 경제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미시, 공공정책, 재정, 금융 등. 이 중 특정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경제라는 큰 틀에서 모두 커버 가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일을 시켜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보면 돼요.

해외 학위가 중요하진 않은가요.

석사 학위가 요구되는 건 보통 그 정도를 갖추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일종의 학력 인플레가 생겨서예요. 인터뷰 때 그들이 원하는 지식을 갖고 있고 대답할 수 있으면 어디서 학위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국제기구 진출에 유리한 전공이 있나요.

대학원 중에는 자기 전공 분야의 일반대학원이 좋겠고, 아니면 국제적 사안에 포커스를 맞춘 국제대학원도 준비하는 데 편할 거예요. 이런 게 있더라고요. 다들 국제기구가 경제나 정치학, 인문학인 줄만 알아요. 생각해보세요. 그 큰 조직에 얼마나 많은 이공계 관련 분야가 있는데요. 통계, 컴퓨터, 공학 전문가가 필요하고 실제로도 그런 쪽에 오프닝이 많아요. 그런데 이공계에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일종의 틈새시장이에요.

학생들을 위해서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

아무래도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국제 정치·경제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4.0’이나 ‘빈곤의 종말’ 같은 책이 좋겠네요. 여학생 같은 경우 ‘여자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한국경제신문 출간)라는 책도 좋아요. 여성은 자기 아이디어를 관철하고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는 과정에서 협상이 필요해요. 그 방법에 대해 잘 나와 있어요.

국제기구 이후 국제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셨어요. 협상력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하겠죠.

당연하죠. 국제기구의 일은 기본적으로 회원국뿐만 아니라 필드의 스테이크 홀더(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협상하는 과정이에요. 협상력이 중요하죠. 이때 여성이 가지는 협상력이 있다고 봐요. 협상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하거든요. 우리 여학생들이 진출해서 일하면 잘할 거예요.

반대로 국제기구에서 여성이 불리한 점은 없을까요.

적어도 표면적으로 유리 천장이나 차별은 없어요. 오히려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어서 가능한 책임 있는 자리로 올리려는 노력도 있고요. 다만 외국에서 살아야 하고 많은 경우 개도국에 파견되기 때문에 가족이 문제죠. 애들 키우고 남편과 지내는 게 힘들어요.

앞으로 국제기구 진출의 전망은 어떨까요.

굉장히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 장애는 언어와 무관심이었어요. 지금은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많고 관심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어요. 국제기구에 진출한 선배들도 많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시작했던 저희 때랑 다를 것이고요. 또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서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려고 하고, 채용해서 같이 일하려고 하는 분위기예요.

끝으로 국제기구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캠퍼스 잡앤조이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많은 직장을 거쳐봤지만 국제기구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에요. 국제기구가 당장 손에 잡을 수 없는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업데이트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스펙보다는 실력을 쌓아두세요.

학생들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즐거운 게 뭔지 찾았으면 해요. 경험하고, 알아가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생각은 바뀌거든요. 생각이나 믿음은 불변적인 게 아니에요. 자신에 대한 이해도 바뀌고요. 예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걸 해야 돼’라고 했던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데요. 그렇게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과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의 매개가 ‘직업’인 거죠. 그런데 그걸 하나에 못 박아놓고, 심지어 내가 아니라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정해놓고 사는 건 무의미하지 않나요.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도전과 모험을 해보세요.


국제기구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에요. 당장 손에 잡을 수 없는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업데이트하다 보면 기회가 와요



editor's postscript
김성윤(한국외대 중국어통번역 4)
[외국계 기업] “매력적인 직장…스펙보다는 실력을 쌓아라”
대학 1학년 때 국제기구가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진출 방법, 국제기구의 특징 등이 적혀 있는 두꺼운 책을 찾아봤다. 관련 교양 수업도 들어보고 세미나도 가봤다. 하지만 여전히 뜬구름 잡는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취업만 바라보기에도 버거워지면서 국제기구는 그저 꿈으로만 남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남영숙 교수님과 인터뷰할 기회가 왔다. 인터뷰 중 “관료 사회의 모순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현실과 이상을 조율할 수 있는 저울이 되었다. 또 “목적도 없이 단순히 경험 쌓기에만 치중해서 근본적인 기본 지식이 부족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지난 대학 3년의 생활을 돌아보게 했다.



김선주(한국외대 경영정보 2)
[외국계 기업] “매력적인 직장…스펙보다는 실력을 쌓아라”
국제기구. 단어만 들어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재가 연상된다.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국제기구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꿈을 펼치신 멋진 여성, 남영숙 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기억에 쏙 남는 건 국제기구 취업을 옵션으로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국제기구는 현실적으로 입직의 문이 좁기 때문이다. 옵션으로 생각하며 관심 분야의 학문을 깊이 있게 수학하고, 관련 경력까지 갖춘다면 국제무대 진출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여대생들의 워너비, 남 교수님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서 아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글 함승민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