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가 점찍은 ‘차세대 사업’ ESS

이차전지는 삼성그룹과 LG그룹에서 똑같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고 있는 사업이다. 삼성SDI는 정보기술(IT) 제품에 들어가는 소형 리튬 이온 전지에서, LG화학은 전기차에 쓰이는 중형 리튬 이온 전지에서 각각 세계 1위다. 최근 에너지 저장 장치(ESS)가 주목받으면서 경쟁이 대형 전지로 옮아가고 있다. ESS는 전기 분야에서 수천 년 동안 유지된 ‘생산-소비’ 이원 구조를 ‘생산-저장-소비’로 재편하는 꿈의 기술이다.
[SPECIAL REPORT] 매년 53% 성장 ‘블루오션’…에너지 혁명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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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저장 장치(ESS)’에 대한 관심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용량으로 저장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기술을 오랫동안 탐색해 왔다.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지금은 발전기를 돌려 한 번 생산한 전기는 곧바로 쓰지 않으면 그냥 사라지고 만다. 만약 ESS가 보급되면 순간적으로 수요가 몰려 발생하는 요즘 같은 여름철 전력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최근 ESS가 주목받는 데는 신·재생에너지 보급도 한몫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주력인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은 자연조건에 민감해 전력품질이 고르지 않은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이는 전체 전력 계통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ESS는 발전량과 발전 시간이 불규칙한 신·재생에너지를 고품질 전력으로 바꿔준다. ESS 보급이 신·재생에너지 활성화의 필수 조건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동안 ESS 시장의 주류는 흥미롭게도 양수 발전이 차지해 왔다. 전기가 남아도는 밤 시간대에 산 위 저수지로 몰을 퍼 올려 놓고 전력 소비가 많을 때 이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방식이다. 전기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변환해 저장하는 형태다. 양수 발전은 한국에도 익숙한 개념이다. 1979년 완공된 청평 양수발전소를 시작으로 양양·삼랑진·무주·산청·청송·예천 등 7개 발전소가 지어졌다. 규모가 가장 큰 양양 양수발전소(100만kW)는 상부 댐과 하부 댐의 낙차가 819m로 아시아 최대다. 국내 양수 발전 용량은 470만kW로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5.7%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300기 이상의 양수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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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양수 발전이 가능한 지형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충분한 낙차를 확보할 수 있는 산 위에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호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이 땅에 스며들지 않도록 암반 지형도 갖춰야 한다.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건설비도 큰 부담이다.

1990년대에 전지를 활용한 ESS 개발 붐이 불었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납축전지였다. 일반 자동차용 배터리로 많이 쓰이는 크고 무거운 바로 그 납축전지다. 이찬재 삼성SDI ESS지원팀장은 1990년대 중반 참석한 디스플레이 국제 전시회 경험을 들려줬다. 이 팀장은 “전시장 한쪽에 4층 건물을 납축전지로 꽉 채워 놓고 전력을 저장하는 걸 시연했다”며 “마치 봉이 김선달처럼 느껴져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2년 후 이들 업체들은 하나둘 사업을 접었다. 납축전지는 저렴하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거운 데다 300~500회 정도로 수명이 짧았다. 첫 번째 전지 도입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이 팀장은 “그 후 한동안 전지를 활용한 ESS 개발이 침체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만든 것은 리튬 이온 전지였다. 휴대전화 등 전자 제품에 들어가던 리튬 이온 전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용량 확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리튬 이온 방식은 현재까지 개발된 이차전지 중 효율이 가장 높고 출력이 강한 게 강점이다.

ESS는 용도에 따라 시장이 세분된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가정용(10kWh 이하), 데이터센터용(10~100kWh), 대형 건물의 상업용(30~500kWh),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함께 설치해 전력망에 연결하는 유틸리티용(500kWh 이상) 등이 있다. 리튬 이온 전지와 납축전지, 양수 발전을 포함해 6~7개 기술이 이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일본 NGK가 개발한 나트륨황전지(NaS)와 레독스 흐름전지는 리튬 이온 전지나 납축전지처럼 전기화학적 원리를 이용한다. 잉여 전력으로 공기를 동굴이나 지하에 압축하는 압축공기 저장 시스템(CAES)이나 회전자를 감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플라이 휠과는 차이가 있다. 소재 표면에 전기를 저장하는 슈퍼 커패시터는 직접 충전 방식에 속한다. 이 가운데 빠르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리튬 이온 전지다. 전문가들도 리튬 이온 전지가 ESS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리튬 이온 전지의 약점으로 꼽히는 비싼 가격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보급이 리튬 이온 전지 수요를 증가시켜 전체적인 가격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 이온 전지를 갖다 여러 개 쌓아 놓고 제어장치를 붙이면 그대로 ESS가 된다.


전력 저장 장치는 인류의 오랜 꿈
기존 리튬 이온 전지 업체들에 ESS 시장은 놀라운 축복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전기차 보급이 지연되면서 이들은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다. 냉혹한 인수·합병(M&A)과 파산 도미노가 이미 한바탕 업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미국 선두 업체인 A123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했다.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인 완샹그룹이 2억5700만 달러에 파산한 A123를 사들였다.

리튬 이온 전지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ESS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시장을 주도해 온 삼성SDI와 LG화학도 마찬가지였다. 삼성SDI는 소형 리튬 이온 전지 1위 업체다. 리튬 이온 전지 전체로도 세계 1위다. 아직은 소형 제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소형에서의 경쟁력을 발판으로 중형(전기차용)과 대형(ESS)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LG화학은 전지차용 전지에서 세계시장을 리드한다. 시장조사 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 평가에서 ESS 경쟁력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형과 중형 전지에서 각자 입지를 다진 두 업체는 ESS 시장에서 진검 승부를 벼르고 있다. 서로의 경쟁력을 내세우면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ESS의 매출 자료를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워낙 초기 단계이다 보니 ESS 시장 통계를 조사하는 곳도 아직은 없는 상태다. 두 회사의 진짜 실력이 아직은 베일에 가려 있는 셈이다.

TV용 브라운관 생산 업체로 출발한 삼성SDI는 시장 변화에 맞춰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업체로 변신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평판TV 시장이 액정표시장치(LCD)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2009년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또 한 번 혁신에 나섰다. 지난 1분기 전지 사업 매출(68%)이 디스플레이 매출(32%)을 2배 이상 앞질렀다. 1분기 전지 사업 매출은 8828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93.8%인 7720억 원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IT 기기에 쓰이는 소형 리튬 이온 전지다. 올 초 보쉬와 50 대 50으로 합작 설립했던 전기차용 이차전지 생산 업체 SB리모티브를 흡수 합병해 중형 제품을 보강했다.

삼성SDI가 ESS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2009년 말이었다. 직원 7~8명으로 태스크포스가 꾸려졌고 이듬해 10월 정식 팀이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이찬재 팀장은 “장기적으로 소형 제품만 갖고는 시장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는 대형 축전지를 리튬 이온 전지로 대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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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SDI는 천안과 울산, 중국 톈진, 말레이시아 세렘반 등 4개 공장에서 리튬 이온 전지를 만들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70km 떨어진 세렘반은 1990년 만들어진 삼성SDI의 첫 해외 법인이다. 작년 브라운관 생산 라인을 소형 이차전지 라인으로 전환했다. 국내에서는 천안은 소형, 울산은 전기차용 전지와 ESS로 이원화했다.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룹 부회장이던 구본무 회장이 유럽 출장 중 영국 원자력연구원에서 이차전지를 처음 보고 귀국길에 샘플을 가져와 럭키금속에 넘기며 연구를 지시했다. 이후 LG화학으로 옮겨 연구가 계속됐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자 2001년 그룹 내에서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놓았다. 하지만 구 회장은 길게 보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면 힘을 실어 줬다. 2005년에도 2000억 원대 적자를 내며 또 한 번 위기가 닥쳤지만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충북 오창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이차전지 공장을 준공했다. 여기서 ESS를 포함한 전 제품을 생산해 낸다. 지난 1분기 전지 사업 매출은 5917억 원을 기록했다. 석유화학과 정보 전자 소재를 포함해 5조7000억 원대인 LG화학 전체 분기 매출의 10.3% 수준이다. LG화학은 전자 사업 매출을 제품별로 세분해 발표하지 않는다.

2010년 미국 미시간 주 홀랜드 전기차 전지 공장 착공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LG화학의 이름을 널리 알리 결정적인 계기였다. 착공식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큰 화제가 됐다. 이 공장은 2012년 완공됐지만 제너럴모터스(GM) 전기차 볼트의 판매가 예상외로 부진하면서 공장 가동을 계속 미루다가 지난 7월 어렵게 운영에 들어갔다. 전기차 시장 수요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저장 용량 커지고 해외 수주 증가
이차전지는 삼성 LG 모두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 사업으로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그만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두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경영자들의 면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은 2010년 말 삼성전자 디지털이미징사업부 수장에서 삼성SDI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겼다. 박 사장은 1999년 삼성전자 초대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아 삼성전자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 마케팅 전문가다.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해외 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그는 서양 문화에 몰입하기 위해 싫어하던 관자 요리를 6개월간 먹으면서 미식축구와 야구 관련 정보를 몽땅 외웠다. 그는 “모바일 혁신을 부른 리튬전지가 에너지 혁명 시대를 이끌 것”이라며 삼성SDI의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주도했다.

박 사장은 ESS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2012년 주저하는 연구진에 조건없이 거액을 지원하며 기흥 사업장에 1MWh급 ESS 설치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전력 소비가 적은 저녁 시간에 전기를 저장하고 전력 소비가 많은 낮 시간에 활용해 연간 1억 원의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거뒀다. ESS의 효과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국내 최초로 ESS 실제 검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권영수 LG화학 사장은 2011년 말 구본무 회장의 특명을 받고 LG디스플레이에서 옮겨 왔다. 소형 전지 사업부와 중대형 전지사업부를 합쳐 전지사업본부로 승격시키고 권 사장을 사령탑에 앉혔다. 구 회장은 인사 발표 전 권 사장을 불러 “LG디스플레이를 세계 최고로 키운 것처럼 LG화학 이차전지 사업도 최고로 키워 달라”고 주문했다. 권 사장은 1979년 LG전자에 입사해 1980~1990년대 해외투자실, 미주 법인, 세계화 담당 이사를 거치며 글로벌 역량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 재경부문장 등을 역임하며 LG전자의 돈줄을 책임졌다. LG디스플레이에서는 필름패턴편광안경(FPR) 방식의 3D, IPS 패널 등 차별화된 기술 개발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권 사장은 디스플레이에 이어 전지 사업도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지난 5월 북미 최대 ESS 실증 사업의 이차전지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내비건트리서치가 발표한 ESS 분야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서 16개 기업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제조와 마케팅 분야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과 자동차 전지 등 다양한 이차전지 포트폴리오를 통한 사업 시너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epa03427074 A picture made available on 09 October 2012 shows wind turbines in a mountain pass near Tehachapi in Kern County, California, USA, 08 October 2012.  Since 2002, wind power in California has doubled with a total of 4,287 megawatts. As of March 2012, wind energy  supplies about 5% of California's total electricity needs, or enough to power more than 400,000 households.  In 2011, 921 megawatts were installed mostly in the Tehachapi area and Kern County is currently reviewing wind projects that would generate a combined 4,600 megawatts of renewable energy if approved.  EPA/MICHAEL NELSON
epa03427074 A picture made available on 09 October 2012 shows wind turbines in a mountain pass near Tehachapi in Kern County, California, USA, 08 October 2012. Since 2002, wind power in California has doubled with a total of 4,287 megawatts. As of March 2012, wind energy supplies about 5% of California's total electricity needs, or enough to power more than 400,000 households. In 2011, 921 megawatts were installed mostly in the Tehachapi area and Kern County is currently reviewing wind projects that would generate a combined 4,600 megawatts of renewable energy if approved. EPA/MICHAEL NELSON
삼성SDI와 LG화학은 2010년부터 ESS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ESS는 전지 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완제품을 판매하는 구조가 아니다. 우병민 LG화학 과장은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전력 회사나 전력망 구축 회사, 태양광발전 회사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삼성SDI나 LG화학에서 리튬 이온 전지를 구매해 여기에 인버터·공조장치·변압기·제어기 등으로 구성된 전력 조절 시스템(PCS)을 붙여 최종 제품을 만들어 판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중전기 회사인 ABB는 발전소에서부터 송배전망까지 전체를 통째로 설계해 준다.

먼저 LG화학이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 회사인 SCE에 가정용 ESS 전지(10KWh급)를 처음 공급했다. 이어 2011년 ABB와 MWh급 ESS 전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5건의 수주 계약을 따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지난 5월 선정된 SCE의 테하차피 재생에너지 송전 프로젝트다.

이는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테하차피 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SCE 고객과 캘리포니아 전력망까지 운송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풍력에너지 인프라 사업이다. LG화학은 이 지역 모놀리스 변전소에 32MWh급 리튬 이온 전지를 공급하고 SCE와 함께 실증을 진행하게 된다. 32MWh는 약 100가구가 한 달 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여기에는 전기차(GM 볼트 기준) 2000대 이상에 해당하는 전지가 들어간다. 우 과장은 “SEC를 비롯해 향후 북미에서 진행될 대규모 스마트 그리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ESS 설치 의무화
미국 캘리포니아는 동부 펜실베이니아·뉴저지·메릴랜드와 함께 ESS 사업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지역 중 하나다. 다른 지역은 리튬 이온 전지의 가격 때문에 아직은 경제성이 다소 떨어진다. 이 팀장은 “캘리포니아 등은 밤과 낮의 전기요금 차가 10배에 이른다”고 말했다. 더구나 캘리포니아는 2014년부터 공급 전력의 2.25%, 2020년까지 5%에 ESS 설치를 의무화한 법을 세계에서 처음 제정했다. ESS를 설치하면 세금 공제 혜택도 받을수 있다.

삼성SDI도 2011년 일본 니치콘사와 가정용 ESS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가정용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일본 인버터 업체인 니치콘이 삼성SDI의 전지 모듈과 전지 관리 시스템(BMS)에 PCS를 추가해 일반 고객에 판매한다. 이 팀장은 “원전 사태로 전력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일본에서 에너지 저장의 필요성이 커졌다”며 “다른 경쟁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가정에 ESS를 설치하면 정부에 30%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각 지자체들도 추가로 보조금을 준다. 이 때문에 몇몇 지역은 대당 200만 엔인 ESS를 거의 공짜 가격에 들여놓을 수 있다. ESS는 기본적으로 태양광발전 설비가 함께 설치된다. 이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남는 건 ESS에 저장해 둘 수 있다.

가정용을 제외한 전력용 ESS는 대부분이 실증 단계다. 안정적인 전력망 운용을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우리나라 전력 수급 계획도 10년, 20년 후를 보고 짠다”며 “ESS가 설치됐을 때 혹시라도 부정적 영향이 없는지 장기간의 충분한 실증 데이터를 요구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제품 사이클이 1년도 안 되는 스마트폰 업계의 시각으로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 실증 단계를 통과하면 훨씬 빠르게 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

내비건트리서치는 세계 ESS 시장이 매년 평균 53%씩 성장해 2020년 58조 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이 팀장의 전망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단순하게 제품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SS 보급이 확대되면 이를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특정 지역의 에너지를 관리해 주는 서비스업이 등장할 수 있다. ESS를 통해 해당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추고 전력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전력이 남는다면 다른 지역과 거래할 수도 있다. 이 팀장은 “ESS는 기존 산업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라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