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중앙은행 - 라구람 라잔 총재

‘인 도 경제의 구세주’, ‘금융시장을 환호하게 한 록 스타.’ 지난 9월 4일 인도중앙은행(RBI)의 제23대 총재에 취임한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에 대한 인도 언론의 찬사들이다. 그동안 시장의 신뢰가 무너져 있었던 탓일까. 그의 취임 직후 폭락세를 보였던 루피화가 급속 회복되고 주식시장도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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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잔 총재의 이력을 살펴보면 대중의 기대가 왜 이렇게 큰 지 알 수 있다. 라잔 총재는 올해 50세로 다른 인도의 고위 공직자들에 비해 젊다. 이른바 ‘젊은 피’가 인도 정책 결정 라인에 합류한 셈이다. 성장 과정은 엘리트 코스와 국제화로 압축된다.

그는 1963년 인도 마드야 프라데시 주 보팔에서 태어났지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을 스리랑카·인도네시아·벨기에 등지에서 보냈다. 11세에 인도에 돌아와 델리에서 중·고교를 거쳐 명문 인도공과대(I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역시 명문 경영대인 인도경영대학원(IIM)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의 학업은 미국으로 이어졌다. 28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제학(금융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학계에 남게 된 그는 시카고대 부스(Booth)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성공했고 40세가 되던 2003년에는 최연소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임명됐다. 그의 진가는 2005년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개최됐던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고별식에서 발휘됐다. 미국 중심 금융 기술의 빠른 발전에 대해 무비판적이었던 시류에 비해 그는 세계경제에 미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재무 차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는 금융 기술 발달을 거꾸로 돌릴 것이냐면서 라잔 총재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자 라잔 총재는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다.

라잔 총재의 조국인 인도에서도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2008년부터 금융자유화검토위원회를 그에게 맡기는가 하면 11월에는 명예 경제 자문으로 임명했다. 그 역시 적극적으로 인도 정책 라인에 조언을 시작했고 2012년 8월에는 총리 경제 자문역으로 인도에 정착했다. 그리고 불과 1년여 만에 중앙은행의 최고 수장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제 관심은 라잔 총재의 행보다. 과거 비판에 익숙했던 학자에서 이제 정책 결정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경제학자 출신으로 통화정책 수립 경험이 없다. 그의 저서와 논문들을 관통하는 비판적 시각은 학자적 관점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을 추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의 방만한 금융 시스템에 대해서는 금융 규제, 남유럽식 관치금융에 대해서는 자유화를 각각 해법으로 제시했다. 또한 그는 재정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에 대해 반대하고 노동 경쟁력 향상과 혁신을 통한 공급 측면의 개선을 지지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폴 크루그먼은 케인스식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라잔 총재와 논쟁하기도 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자유론자’라고 할 수 있는 라잔 총재는 첫 기자회견에서 루피화 폭락,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급격한 경기 하락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 경제를 살리겠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가장 관심이 높은 것은 역시 그의 통화정책. 그는 중앙은행의 최대 역할이랄 수 있는 통화정책에 대해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을 막겠다고 강조했고 10월 전에는 정확한 방향을 내놓겠다고 했다. 미국의 양적 완화(QE) 축소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성장보다 물가 안정을 우선시 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취임 직후 라잔 총재는 자신이 인기 없는 정책들을 취할 수 있겠지만 꾸준히 나아가겠다고 공언했다. 과연 그의 첫 번째 통화정책이 대중으로부터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델리 =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gkang@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