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지난 3월 23일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일본은행 강당. 구로다 하루히코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단상에 올랐다. 취임 후 전체 직원들과 처음으로 마주한 자리. 마이크를 잡은 구로다 총재의 표정은 결연했다.
[SUPER MOUTH] 아베노믹스 전도사…디플레 탈출 ‘총력’
“그동안 일본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주된 사명을 달성해 내지 못했다. 이런 중앙은행은 (세계에서) 일본은행뿐이다.”

갑작스러운 꾸짖음에 직원들은 순간 모두 얼어붙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때의 상황을 “일본은행을 때려 부수겠다는 선전포고 같았다”고 전했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노믹스의 전도사이자 야전 사령관이다. 적극적 금융 완화를 직접 실행에 옮기는 역할이다. 그는 재무성(옛 대장성) 관료 시절부터 양적 완화론자였다. 국제금융 국장을 역임하면서 ‘엔 약세’ 정책을 주도했고 틈날 때마다 일본은행의 경기 부양 정책이 소극적이라며 비판해 왔다. 그는 자신의 금융 완화 정책에 ‘리플레이션(reflation)’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 디플레이션(deflation), 오르는 것이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면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완만하게 물가 인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 초반 ‘쇼와(昭和)공황’이라고 불리던 불황기 때 다카하시 고레키요라는 재무상이 처음 시도했다.

구로다 총재의 각오는 단단하다. 일본은행 총재로 내정되자마자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정책보다 ‘뭐든지 다하겠다’는 직설 화법의 힘이 셌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 안팎으로 크게 떨어진 데는 그의 공이 크다.

그는 일본은행 총재에 내정된 뒤부터 줄곧 ‘스피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최초의 한 달이 전부”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가 충만한 초반부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대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이끌 이른바 ‘구로다 팀’을 짜는 작업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중심축 역할을 할 기획담당 이사 자리는 아예 취임도 하기 전에 발령을 냈다.

그는 전임 시라카와 마사키 총재의 실패를 거울로 삼았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직후 미국·유럽 등이 대대적 양적 완화에 나설 때 주춤거렸다. 이 바람에 나중에 15번이나 금융 완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퇴임할 때까지 ‘미온적’이라는 낙인을 떼내지 못했다.

구로다 총재는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그래서 전임 총재들에 비해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다. 지난 4월 첫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쉬워야 통한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모든 게 ‘2’라는 숫자로 수렴됐다. “물가를 2년 내 2% 올리기 위해 장기국채 보유량을 2배 늘리는 방식으로 시중 통화량을 2배 확대하고….” 기자회견에는 이례적으로 ‘2’라는 숫자로 빼곡히 채워진 게시판도 등장했다. 국제무대에서도 그의 소통 능력은 먹혀들었다. 취임하자마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 휴식 시간마다 주요국 각료와 복도에 선 채로 설득전을 벌였다. 그 결과 ‘엔저 용인’이라는 면죄부를 받아냈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경기 부양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부호를 다는 분위기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년 뒤 소비자물가지수를 2% 상승시키려면 국내총생산(GDP)이 앞으로 2년 동안 매년 4% 이상씩 성장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일본 내 주요 민간 경제 연구소들이 예상하고 있는 일본의 2014~2017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 안팎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구로다 총재가 (일본 경제를 결딴내는) 파괴자가 될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자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도쿄 = 안재석 한국경제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