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기어와 갤럭시 라운드가 불편한 이유

삼성전자가 뉴욕타임스 10개 지면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왜 그랬을까. 주목을 받고 싶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둔한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갤럭시 S4나 갤럭시 노트 광고도 아닙니다. 스마트 손목시계 ‘갤럭시 기어’ 광고입니다. 직접 만져보진 않았지만 ‘혁명적인’ 제품은 아닙니다. 그런 제품 광고에 상식을 뛰어넘는 광고비를 집행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겁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 한가하게 ‘혁신제품’광고 공세 펼 땐가
물론 제가 모르는 노림수가 있겠죠. 분기에 10조 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으로서는 그까짓 몇 억 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테고요. 애플만 싸고도는 듯한 미국 사회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외칠 수 있을 때 외치는 것은 나쁜 전략이 아닙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어색합니다. 혁명적인 제품을 내놓고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라면 평범한 제품을 내놓고 떠드는 게 하책일 테니까요.

세계 최초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갤럭시 라운드’ 발표도 왠지 어색합니다. 한마디로, ‘소 왓(So what?)”입니다. 화면이 평평한 게 나을까요. 굽은 게 나을까요. 멍청한 제 판단으로는 평평한 게 백배 낫습니다. 그런데 굳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갤럭시 라운드’를 내놓고 ‘세계 최초’ 운운하는 게 어색합니다. 우리도 혁신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려는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얘기 꺼낸 김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성전자나 애플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댓글이 붙곤 합니다. ‘제품 나오면 바로 사고 싶어지네요’, ‘삼성이 만들면 사고 싶어지는 무언가가 있네요’. 이런 댓글을 보면 그저 웃습니다. 천하의 삼성이 이런 댓글을 사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소위 ‘삼성고시’에 10만 명이 몰렸다는 얘기도 들리고 “삼성이 인재 블랙홀”이란 말도 나옵니다. 막말로 삼성이 빨아들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싹쓸이한 인재들이 밖에 나가 외화를 싹쓸이해 온다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천재’와 ‘수재’ 소리를 듣던 인재들이 의료계와 법조계로 몰려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0조 원, 10만 명 현상’과 최근 삼성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습니다.애플보다 먼저 시계형 디바이스를 내놓고 세계 최초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기를 내놓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아둔한 제 판단으로는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삼성맨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모토로라가 ‘레이저’라는 슬림폰으로 인기 절정을 달리다가 곤두박질했고 노키아와 블랙베리도 최정상에서 급전직하했다는 사실을…. 어쩌면 다음 순서는 삼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최근 수년 새 끊임없이 벌어졌고 ‘졸면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잠시도 졸지 못하는 게 이 바닥입니다.

일개 블로거이자 기자가 분기에 10조 원을 버는 기업에 대해 왈가왈부할 깜냥은 못됩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좀 더 혁신적이길 바랐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상용화되길 바랐는데 예상이 빗나가 푸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구경꾼의 푸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됩니다. 숲을 관통해 지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떨어져 구경하는 사람 눈에는 제대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