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인수 선언한 삼성전자… 조급한 의사결정이 화 부를 수도
삼성전자는 11월 초 개최한 ‘애널리스트데이’에서 성장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눈에 띄는 점은 지금까지와 달리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점이다. 1995년 미국의 PC 제조업체 AST리서치 인수에서 별 재미를 못 본 이후 삼성전자는 M&A보다 내부 역량을 활용한 유기적 성장을 선호해 왔던 터라 이날의 발표는 다소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다.삼성전자뿐만 아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M&A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의 M&A 규모는 세계 30위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이 두 개의 칼(유기적 성장+M&A)을 이용하는 반면 한국 기업은 한 개의 칼(유기적 성장)만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해외 경영 전문가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M&A를 주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남의 회사를 인수해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게 그리 쉬운 노릇만은 아니다. M&A를 통해 숙박•레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이랜드나 중공업 분야로 진출한 두산과 같이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건설 회사 인수로 고생하고 있는 웅진이나 전자회사를 샀다가 모회사까지 위기를 맞은 해태처럼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다. 성공한다면 회사의 위상을 바꿔 놓는 묘약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했다가는 멀쩡한 모기업까지 휘청거리게 만드는 골칫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는 M&A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을 챙겨야 할까. 중요한 체크포인트 세 가지를 알아보자.
1. 우리 회사의 전략 목표 달성에 필요한가
1996년 펩시콜라의 상황은 심각했다. 미국 시장점유율이 10% 이상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코카콜라에 밀렸다. 100년에 걸친 콜라 전쟁이 코카콜라의 완승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려 있던 펩시콜라는 고객 트렌드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코카콜라보다 먼저 감지했다.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탄산음료 판매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강 음료나 스포츠 음료로의 다각화가 시급했다. 코카콜라가 알아채고 따라오면 곤란했다. 새로운 시장에서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답은 M&A밖에 없었다. 펩시는 1998년 주스 업체 ‘트로피카나’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게토레이’를 소유한 ‘퀘이커오츠’까지 일련의 비탄산 음료 업체들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사업에서 차지하는 탄산음료의 비중은 낮아졌고 비탄산 음료 분야의 시장점유율은 높아졌다.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펩시는 2010년 기준으로 음료 업체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펩시는 ‘신성장 동력 발굴’이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M&A라는 도구를 멋지게 활용했다.
페이스북(FaceBook)은 프렌드피드(FriendFeed: 친구 소식 알림 서비스), 핫포테이토(Hot Potato: 위치 기반 서비스), 드롭닷아이오(drop.io: 온라인 파일 공유 서비스)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그리고 핫포테이토의 창업자 저스틴 셰퍼를 위치 데이터베이스 책임자로, 드롭닷아이오의 창업자인 샘 레신은 개인 페이지 책임자로 인수했다. 그리고 다른 인력들도 페이스북의 개발팀에 합류시켰다. 대규모 전문 인력이나 영입하기 어려운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M&A를 추진한 것이다. 이때 인재만 남겨두고 인수 회사는 사업부로 통합하거나 폐쇄하며 인재들에게는 스톡옵션이나 임금 인상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의 M&A를 ‘어크-하이어(Acq-hire: Acquire와 Hire의 합성어, 인수 고용)’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어크-하이어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지적이 있자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한 분야에서 특출하게 뛰어난 사람은 적당히 잘하는 사람보다 100배의 가치가 있다(M&A를 통해 영입할 가치가 있다)”고 대응했다.
회사의 미래를 바꿔 버리기도 하는 M&A.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분석한 다음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략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가 2009년 최근 기업 인수•합병 작업을 마친 회사의 임원 250명에게 “M&A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느냐”라고 물었을 때 무려 40% 이상이 명확한 투자 논거 없이 인수•합병을 단행했다고 답했다. 조셉 바우어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는 “M&A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작정 M&A에 뛰어들기 때문이다”는 말까지 남겼다. M&A를 고려하는 회사들이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점은 “과연 이 회사가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꼭 필요한 회사인가”하는 것이다.
2. M&A를 통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가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는 미국의 만화책 출판사다. 1939년 설립돼 한때는 DC코믹스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큰 만화책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이 되자 만화책 시장이 급속하게 위축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만화가들이 자신들이 그린 만화를 출판하지 않고 웹에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하락하는 상황에서 마블은 자신들이 60년 이상 만화책을 출판하면서 쌓아 온 수천 개의 캐릭터를 영화사에 팔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들인 ‘스파이더맨’, ‘엑스맨’, ‘판타스틱 포’, ‘헐크’, ‘토르’, ‘아이언 맨’ 등이 이렇게 해서 나온 영화들이다. 그리고 마블의 캐릭터로 만든 영화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던 디즈니는 2009년 9월 마침내 마블 출판사를 40억 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 디즈니는 마블 인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로 ‘신데렐라’나 ‘미키마우스’ 등 자신들의 캐릭터와 전혀 다른 마블의 캐릭터를 확보했다는 점을 꼽았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영화•게임•캐릭터 등의 막강한 유통망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에 마블 캐릭터들의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디즈니는 또한 게임 분야에도 많이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마블 캐릭터는 게임으로 만들기에 딱 안성맞춤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사업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디즈니의 장점인 ‘캐릭터 산업’에도 마블 캐릭터를 끌어다가 무진장한 제품들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와 같이 M&A를 할 때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너지가 있어야만 M&A 때 지불하는 웃돈(경영권 프리미엄)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시너지는 대개 유형의 시너지와 무형의 시너지로 나뉘는데, 유형의 시너지는 유통망•생산시설•영업점 등 눈에 보이는 자산들로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를 의미한다. 반면 무형의 시너지는 기업 내에 존재하는 노하우•로열티•지식재산권•인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들로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를 말한다. 지식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무형 시너지의 가치가 점차 중요해지는 추세다. 디즈니가 일개 만화책 출판사에 4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쓴 것도 마블의 캐릭터들이 가져다줄 유•무형의 시너지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가치에 걸 맞은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
3. 핵심 인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일본 노무라증권이 금융 쇼크로 패망한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 및 유럽 조직을 단돈 1달러에 인수했다. 그리고 핵심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려 40억 달러를 보너스로 썼다. 그런데 쓸 만한 인재들은 돈만 받아 챙기고 나서 1년 기한이 되니 하나둘씩 슬며시 회사를 떠나버렸다. 노무라증권은 5조 원을 쓰고도 핵심 인재를 붙잡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M&A의 완전한 성공을 위해서는 핵심 인재들을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돈만 많이 준다고 회사에 남아 있지 않는다. 인재를 잡아두기 위해서는 제도와 문화적인 통합을 이뤄 내야 한다. 제도라고 하면 채용•평가•보상•승진 등 인사제도 전반을 떠올릴 수 있지만, 조금 더 폭넓게 본다면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 모두를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제도가 바뀌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결국은 조직을 이탈하게 된다.
신한은행은 업계 후발 주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흥은행을 인수했다. 두 은행의 제도적 차이는 두 은행의 역사만큼이나 컸다. 임금 격차, 조직 체계 등은 물론이고 직급에 대한 호칭도 서로 달랐다. 하나의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이른 시간 내에 제도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은행은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제도를 맞춰 나갔다. 임금 차이도 단계적으로 좁혀 나갔고 달리 부르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호칭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바꿔 나갔다.
이렇게 서서히 제도를 맞춰감으로써 구성원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조직을 통합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도 5년의 시간을 갖고 조직을 통합하기로 한 것은 신한은행의 선례를 잘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다르듯이 기업도 성장한 문화가 다르다. 기업의 문화는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두 기업이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통합까지 이뤄져야 한다. 두산은 2006년 일본의 미쓰이로부터 발전소 보일러 회사 밥콕(Babcock)을 인수했다. 그 이후 영국 회사인 밥콕과의 문화적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해 ‘한국 사람들과 일하는 법(Doing Business with Koreans)’이라는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한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방식에 대해서도 꾸준히 가르쳐 준 것이다. 이를 통해 본사와의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마인드를 높여 줬고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전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기술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에는 어떤 산업이건 간에 선발 주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후발 주자가 맨땅을 일궈 따라잡기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은 일거에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 지배력을 단숨에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M&A를 활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기업에 M&A는 조조와 유비의 적벽대전, 혹은 옥타비아누스의 악티움 해전처럼 죽느냐 사느냐 명운이 걸리는 의사결정인 것이다.
업계 순위를 몇 단계 높이기 위한 욕심으로 감행할 것이 아니다. 꼼꼼히 분석하되 햄릿처럼 우유부단해도 안 되고 과감하게 실행하되 돈키호테처럼 무모해도 안 된다. 솔로몬의 지혜를 최대한 발휘해 성공한 M&A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이우창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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