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리더십으로 시장 창조…갤럭시 라운드·기어로 화제

[올해의 CEO] 갤럭시 신화 탄생시킨 ‘미스터 반도체’
종합 대상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약력 : 1952년생. 1975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5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 1992년 삼성전자 64D램 개발팀 이사. 2008년 반도체총괄 사장. 2011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또 일을 냈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영업이익 1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0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25곳이 추정(10월 이후)한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평균은 10조5191억 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에 영업이익 9조 원대에 처음 진입한 이후 1분기 만에 국내 기업 최초로 10조 원대를 찍더니 현재 예상대로만 결과가 나온다면 4분기에 사상 최고 실적을 또 한 번 갈아치우게 된다. 4분기에도 스마트폰 사업 호조와 반도체 부문의 성장이 실적을 이끌었다.


10년간 시스템 반도체 묵묵히 지켜
삼성전자는 크게 휴대전화 사업을 이끄는 IM(정보기술·모바일, 신종균 사장)과 TV와 냉장고 등 CE(소비자 가전, 윤부근 사장), 반도체 등 DS(디바이스 솔루션, 권오현 부회장 겸임) 3개의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권 부회장은 삼성그룹 성장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자계열 세 부문을 총괄한다. 분기마다 최고 실적의 신화를 써내려 가는 그에게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개의 기업이 연간도 아니고 3개월마다 10조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곳은 한국에 삼성전자 말고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 미국의 엑슨모빌·애플, 러시아 가즈프롬, 중국 공상(工商)은행 등 4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놀라운 실적은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 어떤 경영 전략보다 기술력을 내세우는 권 부회장의 ‘지략’이 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권 부회장은 반도체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전기전자공학 박사 출신 경영자다. 그는 1985년 삼성전자 미국연구소에서 메모리 반도체 개발 담당으로 출발, 1992년 일본을 제치고 64MB(메가바이트)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4MB D램, 64MB D램 개발에 앞장서면서 한 번 타기도 어렵다는 삼성그룹 기술 대상을 두 번이나 받는 등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미 내로라하는 인재였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시스템 LSI)로 나뉜다. 전자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고 후자는 연산이나 제어 등 정보처리 기능을 가진 것으로 PC나 스마트폰 등에 들어간다. 우리가 항상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시스템 반도체의 대표적인 예다. 소셜 네트워크 등에 올릴 수 있는 ‘셀카’도 시스템 반도체 덕분에 가능하다. 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이미지센서(CIS)가 바로 시스템 반도체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20%, 시스템 반도체의 비중은 80%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워낙에 메모리 반도체가 강세였던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는 비(非)메모리 반도체라고 불릴 정도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해외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유독 ‘비주류’에 속했던 시스템 반도체의 역사 때문에 1997년부터 약 10년간 비메모리 분야를 묵묵하게 지켜 온 권 부회장 역시 2008년 반도체 총괄 사장을 맡기 전까지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대신 메모리 사업이 워낙 잘나가던 시절이어서 메모리 전문가였던 진대제·황창규 전 사장은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오고 삼성전자가 메모리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권 부회장의 존재감이 드러나며 ‘급부상’했다. 특히 권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반도체 전 사업 분야를 두루 거친 몇 안 되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가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경영 전략
●기술 몰입형
남의 기술은 추종하고 싶지 않다며 끊임없이 ‘기술 창조’를 경영 철학으로 내세워

●시장 선도 넘어 시장 창조
‘갤럭시 라운드’나 ‘갤러시 기어’ 등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세상에 없던 시장’을 만들고자 함


‘세계 최초’ 기술력으로 애플의 ‘탈삼성’ 막아
권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그린 주역으로도 불린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아이폰·아이패드에 들어가는 칩을 위탁 생산(파운드리)하는 독점 공급사로 계약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애플에 모바일 AP를 독점 공급해 4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AP 전문가이자 아이폰 개발 과정에 깊이 관여한 권 부회장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권 부회장은 국내 반도체 시장 구조가 메모리 반도체 일변도에서 시스템 반도체 부문으로 그 비중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일찍부터 마련해 왔다. 2005년 권 부회장(당시 시스템LSI 사업부장)은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사업부 시절 최초의 비메모리 전용 공장인 S라인 준공을 이끌어 냈다. 본래 메모리를 만들던 기흥 9, 14 라인을 지난해 초 모바일 AP 생산용으로 전환했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도 메모리 라인을 모바일 AP 생산용으로 바꿨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스템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3.3%에서 4.9%로 확대하며 인텔·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이어 4강(시장조사 기관 아이서플라이 집계)에 진입했다.

하지만 갤럭시 성공의 신화를 쓰고 있는 삼성전자라고 하더라도 ‘포스트 스마트폰’ 전략에 대한 시장의 우려 또한 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해 권 부회장은 ‘기술’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지난 11월, 2005년 이후 8년 만에 진행된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남의 기술을 추종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 철학 중 하나가 ‘기술 리더십’인데 지금도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술 중심’을 외친 권 부회장의 의지는 올 한 해 삼성전자가 출시한 제품들로 입증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세계 최초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휘어진 화면)를 탑재한 커브드 스마트폰인 갤럭시 라운드를 선보였다. 그보다 앞선 9월에는 시장 선점을 위해 세계 최초로 입는 컴퓨터인 갤럭시 기어도 내놓으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초의 곡면 UHD 올레드 TV, 세계 최초로 초경량의 1테라바이트(TB) 미니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글로벌 출시 소식 등도 올해 안에 이룬 것들이다. 그는 글로벌 불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나 퍼스트 무버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 창조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를 이룰 수 있는 키 역시 ‘기술’이라고 했다. ‘탈삼성’을 추진하는 애플도 해마다 기술을 ‘점프업’하는 삼성전자와 쉽사리 작별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권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번 선정 명단에선 한국인으로는 권 부회장, 지도자 부문의 박근혜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3명이 뽑혔다. 당시 권 부회장에 대한 소개는 존 스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맡았는데 그는 권 부회장에 대해 “동시대 모든 이를 능가하는 보기 드문 업적을 남겼다”며 “워크맨을 만든 모리타 아키오 전 소니 회장과 스티브 잡스 애플 CEO와 같이 비즈니스 거인”이라고 호평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