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M&A 행보…스프린트 이어 T모바일 인수 시동
세계 통신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진원지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다. 손 회장은 작년 미국 3위 통신사인 스프린트 인수를 끝내기 무섭게 둘째 타깃을 노리고 있다. 바로 연말에 터져 나온 T모바일이 인수설이다. 소프트뱅크에 스프린트와 T모바일까지 합치면 중국 차이나모바일에 이은 세계 2위 통신사로 단숨에 올라선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또 한 번 일을 꾸미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 통신사 T모바일 US 인수다. 소프트뱅크는 2013년에 인수한 미국 자회사 스프린트 넥스텔(Sprint Nextel, 이하 스프린트)을 통해 T모바일의 모회사인 독일 통신 대기업 도이치텔레콤과 협상에 들어갔다. 소프트뱅크는 T모바일 주식의 67%를 보유하는 도이치텔레콤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인수 금액과 소프트뱅크 산하의 스프린트와 경영 통합 형태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T모바일 매수 규모는 약 200억 달러 이상으로 예상된다.T모바일은 미국 4위 통신 업체다. 인수가 성사되면 소프트뱅크는 버라이즌을 제치고 세계 2위로 떠오른다. 소프트뱅크의 매출은 2013년 상반기 기준 320억 달러로 차이나모바일(430억 달러), 버라이즌(370억 달러)에 이어 3위에 랭크돼 있다. 미국 내 고객 수도 1억 명에 가까워져 버라이즌, AT&T와 맞먹게 된다. 현재 버라이즌이 1억200만 명, AT&T가 1억1000만 명, 스프린트와 T모바일이 각각 5500만 명, 4500만 명으로 뒤를 잇고 있다.
T모바일 인수는 당연한 수순
소프트뱅크는 2013년 7월 216억 달러(약 2조2500억 엔)에 미국 3위 통신 업체인 스프린트를 인수한 바 있다. 일본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으로는 2006년 일본담배산업(재팬타바코)이 2조2530억 엔에 영국 다국적 담배 회사 갤러허를 사들인 것에 이은 역대 2위다.
소프트뱅크의 연이은 초대형 M&A 행보에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짧은 시간 간격도 그렇지만 2조 엔이 넘는 자금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점 때문이다. 스프린트 인수 건까지 포함하면 1년 사이에 약 4조 엔을 훌쩍 넘는다. 2013년 9월 시점에서 소프트뱅크의 자산 총액은 약 15조 엔으로, 이 중 자기자본은 약 2조5000억 엔이다. 2조 엔의 부채가 추가로 대차대조표에 기록되면 재무 체질의 악화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손 회장이 농담조로 “빚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고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실적이 회복되면 연간 1조 엔 규모의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시장은 빚더미의 소프트뱅크를 반신반의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2013년 7월 신용 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소프트뱅크의 신용도를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 ‘Ba1’로 각각 낮추기도 했다. 스프린트를 인수하면서 재무 유연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 인수 완료 후 반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또다시 인수에 팔을 걷고 나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T모바일 인수 시도는 스프린트를 성공적으로 인수하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는 점이다. 애당초 두 회사를 한 묶음으로 인수하는 것에 미국 진출의 의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T모바일 인수가 성공하면 소프트뱅크의 재무 체질이 악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프린트 M&A에 따른 리스크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 T모바일을 인수하면 소프트뱅크의 재무 체질이 악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프린트 M&A에 따른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이 하나가 돼 AT&T와 버라이즌에 맞먹는 규모가 되면 보다 강력한 가격 설정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2강 2약의 미국 통신 시장의 지형도에 근거한다. 2강인 버라이즌과 AT&T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4%, 32%이며 2약인 스프린트는 17%, T모바일은 13%에 불과하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합치더라도 어느 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에 미치지 못하지만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있게 된다. 강력한 넘버 3가 탄생하면 경쟁 환경은 더욱 치열해진다.
사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2009년에는 T모바일의 모회사인 도이치텔레콤이 스프린트를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2011년에는 반대로 T모바일을 스프린트에 매각하는 안이 검토됐었다. 이는 스프린트든 T모바일이든 단독 경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상위 2개 회사인 버라이즌과 AT&T와의 격차가 벌어질 뿐이라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었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이 하나가 돼 AT&T와 버라이즌에 맞먹는 규모가 되면 보다 강력한 가격 설정이 가능하게 된다.
이 점을 파악하고 있는 소프트뱅크가 T모바일 매수에 나선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 인수 직후에도 미국 대형 휴대전화 판매 업체인 브라이트스타의 지분 57%를 12억6000만 달러에 전격 인수, 현지 유통 채널 확대 발판까지 마련했다. 여기에 순 가입자 증가 추세인 T모바일을 품에 안으면 고객 기반을 맞출 수 있어 버라이즌과 AT&T에 호각을 다투는 ‘천하삼분지계’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는 당연한 시도일 뿐만 아니라 생(生)이 걸린 활시위이기도 하다. 재건에 최소 2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스프린트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스프린트는 이전부터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2013년 4분기에도 매출 및 가입자 부진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T모바일을 인수해 양사의 인재를 잘 활용하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형태로 재건 방향을 잡는 것이 보다 유리하다.
통신 전국시대의 최후 승자 노린다
T모바일 인수가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첫째는 소프트뱅크의 현금 지불 능력이다. 소프트뱅크는 미즈호은행·골드만삭스·크레디트스위스 등에서 약 200억 달러(약 2조800억 엔)의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은행단으로부터 자금 면에서 보증을 얻고 있다. 하지만 도이치텔레콤이 ‘전액 현금으로 지불해 줄 것’을 제안하고 있는 반면 소프트뱅크는 ‘가능한 한 최고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난항이 예상된다. 양 사가 매수금 지불에 대해 현금과 주식의 비율을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할지가 관건이다.
T모바일의 기업 가치가 회복되고 있는 것도 소프트뱅크에는 걸림돌이다. 최근 T모바일의 주가는 메트로 PCS커뮤니케이션과 합병을 완료한 2013년 5월에 비해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실적도 나아지고 있다. T모바일은 2013년 3분기에 36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매출액은 66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했다. 전체 가입자 수도 102만3000명 증가했다. 1월 22일 현재 T모바일의 시가총액은 265억8000만 달러로, 소프트뱅크의 예상 제시 금액을 웃돈다. 도이치모바일이 매각 자체를 주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장애물은 미국 규제 당국의 반대 가능성이다. 이유는 반독점이다. 업계 3위와 4위의 통합은 규제 당국의 인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사법부와 연방통신위원회(FCC) 당국자의 발언을 감안하면 승인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안건”이라고 말했다. 미 규제 당국은 2011년 “통신 시장에는 4개 업체가 필요하다”며 390억 달러 규모의 계약까지 체결됐던 AT&T의 T모바일 인수를 저지하기도 했다. M&A로 통신 업계가 3강 체제로 좁혀지면 경쟁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손 회장은 지난 1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장애물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개탄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T모바일 인수 건을 겨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M&A 건에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M&A로 사세를 확장해 온 회사다. 1981년 후쿠오카 현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도매 업체로 시작된 소프트뱅크는 1995년 2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장 컴덱스를 매수했다. 2001년 야후와 공동으로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ADSL) 접속 서비스 ‘야후(Yahoo)! BB’를 제공하며 통신 업체로 변신했다. 2004년에는 적자였던 유선통신 업체 재팬텔레콤을 약 3400억 엔에 매수하고 2006년에는 무선통신 회사 보다폰재팬을 손에 넣으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7년 5월에는 월간 순 가입자 수 16만 명을 기록하며 도코모와 au를 제쳤다. 2010년엔 채무로 고전 중이던 모바일 업체 윌컴을 인수해 흑자로 전환시켰다. 지난해 인수한 스프린트 역시 2013년 3분기에 3억83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의 7억6700만 달러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미국 헤지 펀드인 서드 포인트는 지난해 11월 소프트뱅크 주식을 10억 달러어치 이상 취득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연초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2014 일본의 주역’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개척자(pioneer) 부문에 손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통신 전국시대에 손 회장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 “어떤 무기를 품에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코멘트와 함께였다. 소프트뱅크와 손 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지 자못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돋보기 | M&A마술사 손정의 회장의 경영 비밀
임원에 책상 치며 호통…“불퇴전 각오 없이는 변화 불가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1957년 사가 현 도스시에서 재일 한국인 3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손삼헌 씨는 언제나 정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그에게 ‘정의(正義)’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의(正義)라고 쓰고 마사요시로 읽는 그의 이름대로 손 회장은 바른길을 걸어왔다.
그에게 ‘정의’란 ‘뜻(志)’이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의 ‘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꿈을 집합시킨 것을 의미한다. 1983년 만성간염으로 쓰러지고 1986년 사장직에 복귀한 후 손 회장은 자신만의 뜻을 확립했다. 그것은 ‘나의 사업을 통해 세계 어딘가의 소녀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순간을 위해 세계 넘버원이 되겠다’는 도전적 메시지였다. 2012년 10월 시작돼 2013년 7월 완료한 스프린트 인수 건도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손 회장의 경영 키워드는 ‘자기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뚝심’으로 정리된다. 이는 과거 컴덱스(미국 IT 전시회 운영사), 지프 데이비스(미국 출판사) 인수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다. 손 회장은 당시 ‘일본에서 온 우리가 너무 참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인수 후 기존 미국인 경영진에게 경영을 맡겼다. 이 때문에 기업 체질의 근본적 변화를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닛케이신문 전자판 기고에서 “훌륭한 기업을 인수해도 경영 본연의 자세 자체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더 큰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썼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내 자신이 불퇴전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때의 경험은 고스란히 자산으로 남아 2013년 7월 인수한 스프린트에 적용되고 있다. 그는 스프린트의 경영 회의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현저히 낮은 스프린트의 광고를 언급하며 광고 대리점 계약을 전부 해지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넘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스프린트에 이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손 회장의 이런 움직임은 내부 반발을 불러 기업 융합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극단적으로는 경영 노하우를 가진 임원이나 사원이 사직할 위험도 있다. 손 회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스프린트 내에) 내게 눈을 희번덕거리는 임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임원들에게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지른다. 주저앉고 야단치면 그들도 깜짝 놀란다”고 자기 스타일의 경영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2006년 보다폰재팬을 인수한 후의 경험에서 나왔다. 당시 사내에는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 손 회장은 융화와 생존의 갈림길에서 생존을 선택했다. 그러자 임원 3분의 1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남은 임원들과 손 회장은 함께 고생한 전우 관계가 됐다. 도리어 융합에 성공한 것. 보다폰재팬을 온전히 품은 소프트뱅크는 2007년 4~6월 전년 동기 111억5000만 엔 손실을 극복하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손 회장은 “오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스타일(僕流)로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간의 목소리에 흔들려 가라앉는 배를 그대로 두면 가라앉을 뿐, 누군가 “노(No)”를 외치지 않으면 다시 떠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역할은 최고경영자가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충모 객원기자 gadd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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