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로 극적 반전 기회…폭스바겐 손에 넣은 두 가문 모두 승자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역인수로 친가를 제압한 피에히 회장
2005년 10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본사 임원 회의실.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과 베른트 피세츠리더 폭스바겐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회의실에는 포르쉐가 폭스바겐의 지분 18.53%를 취득했으며 향후 지분 확대를 통해 폭스바겐의 경영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 보고서가 올라왔다.

“우리는 그동안 괴물을 방치해 왔습니다.”

임원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기술과 사업,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온 포르쉐가 칼끝을 돌려 자신들을 향한 것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었다. 이윽고 피에히 의장이 입을 열었다.

“그들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비데킹, “다윗이 이긴다”
39세. 1983년 엔지니어로 포르쉐에 입사한 벤델린 비데킹이 1992년 포르쉐 회장으로 취임할 때 나이다. 젊은 혈기와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비데킹은 특유의 공격적인 경영 방식으로 도산 위기의 회사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때론 훌륭한 경영자 한 명이 기업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비데킹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포르쉐의 판매량을 책임지는 볼륨 모델인 소형 2인승 스포츠카 ‘박스터’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은 모두 비데킹의 작품이다. 두 모델로 포르쉐는 일어섰고 사상 최대 판매량과 수익률 기록을 매년 갈아치웠다. “미래에는 전 세계에서 6개 자동차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위르겐 슈렘프 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조차 “6개 회사와 포르쉐가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자신의 말을 수정할 정도였다(물론 슈렘프의 예언은 틀렸다).

비데킹은 2009년 7월 23일 포르쉐 경영에서 손을 떼기 전까지 16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포르쉐를 넘어 폭스바겐까지 손을 뻗치면서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인수 전쟁을 벌였다. 폭스바겐을 향한 비데킹의 야망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2002년 그는 골리앗을 제압한 다윗의 이야기를 주제로 자신의 경영 철학을 역설한 ‘다윗의 법칙’이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크기가 모든 것의 결정적인 기준이었다면 공룡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데킹에게 포르쉐 감독이사회 의장인 볼프강 포르쉐가 있다면 피에히 의장에게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있었다. 슈뢰더 총리는 폭스바겐 본사가 들어선 니더작센 주 주지사 시절부터 피에히와 돈독한 우정을 쌓아 왔다. 2000년 어느 날 슈뢰더 총리는 피에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포드자동차 최고경영자(CEO)인 자크 내서가 “포드가 폭스바겐의 지분을 취득한다면 독일 정부가 반대할 것인가”라고 물어 왔다는 것이다. 포드가 폭스바겐의 주요 주주가 된다면 폭스바겐 경영은 물론 포르쉐와의 전통적인 협력 관계에도 금이 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슈뢰더 총리는 포드 측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피에히는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폭스바겐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사람들 대부분은 폭스바겐에 대한 대규모 출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2005년 포르쉐가 폭스바겐의 지분을 늘리는 불씨가 됐다. 2005년 10월 포르쉐가 폭스바겐의 지분 18.53%를 취득하면서 비데킹 회장은 “외부의 적대적 인수 시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포르쉐와 폭스바겐 인수전을 이해하기 위해선 ‘폭스바겐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폭스바겐은 1937년 5월 28일 독일 히틀러 정부에 의해 설립됐다. 오늘날의 폭스바겐을 있게 한 ‘딱정벌레차’, ‘비틀’이 바로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설계한 작품이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이 오랫동안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한 배경이다.


피에히 의장과 슈뢰더 총리의 밀회
제2차 세계대전 후 1949년 10월 8일 영국 점령군 사령부는 폭스바겐을 독일 정부에 이전하고 실질적인 경영은 니더작센 주에 넘겼다. 1960년 8월 22일 정부는 폭스바겐을 독일 의회가 제정한 폭스바겐민영화법(일명 폭스바겐법)에 의해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 법에 의해 폭스바겐 지분의 60%가 일반 공모됐고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40%를 보유하게 됐다. 여기서 폭스바겐법 제2조 1항과 제3조 5항은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그 20%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제한했다. 즉, 주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결권은 최대 20%라는 뜻이다. 또한 제4조에서는 폭스바겐의 주주총회 특별 결의 요건을 80% 찬성으로 정했다. 독일 주식법상의 75% 찬성보다 강하다. 니더작센 주가 가지고 있는 폭스바겐 지분 20.1%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폭스바겐법에 따르면 포르쉐가 의결권 있는 주식을 아무리 많이 취득해도 의결권은 20%로 제한된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폭스바겐법이 역내 자본의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유럽경제공동체협약에 위배된다며 2005년 3월 4일 EU 사법재판소에 독일 정부를 제소한 것이다. 2007년 10월 23일 재판부는 EU 집행위원회의 손을 들어줬고 20% 의결권 상한과 정부의 이사 지명권 규정이 무효화됐다.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비데킹도 애초부터 이 점을 예상했다.

하지만 여기에 숨은 반전이 하나 더 있다. 독일 정부가 EU 사법재판소 판결의 허점을 이용해 문제 삼지 않은 주주총회 특별 결의 규정을 그대로 놓아둔 것이다. 당시 EU 사법재판소는 이에 대한 시정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니더작센 주가 계속 거부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에 실패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니더작센 주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독일 콘체른법상의 지배 계약 체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니더작센 주 주지사는 피에히 편인 크리스티안 불프(제10대 독일 대통령, 2010~2012년)였다. 2001년 영국 보다폰의 독일 만데스만 적대적 인수 시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독일 정부가 폭스바겐을 보호하기 위해 EU 집행위원회와 소송까지 불사한 것은 이례적이다. 슈뢰더 총리와 불프 주지사 등 피에히 의장의 각별한 정치권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폭스바겐법이 EU 집행위원회에 의해 EU 사법재판소에 제소된 2005년 포르쉐의 분위기는 밝았다. 소송에서 승리하면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폭스바겐 지분을 차츰 늘려 나갔다. 2008년 10월엔 “2009년 중으로 폭스바겐의 주식과 주식 매수 옵션을 지분의 75%에 해당하는 만큼 취득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영권 장악 의사를 밝힌 것이다. 포르쉐는 지분을 42.6%까지 늘린 뒤 지분 31.5%에 대한 콜옵션을 추가로 매입하며 인수에 박차를 가했다.

포르쉐는 폭스바겐 지분 인수 후부터 지속적으로 폭스바겐 주가가 상승해 2005~2009년 동안 옵션을 통해 약 82억 유로를 벌었다. 포르쉐는 폭스바겐에 130억 유로가 예치 중이었기 때문에 인수 자금으로 들어간 돈을 인수 후 이용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인수 과정에서 약 90억 유로의 부채가 증가했고 2008년 9월 터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로 포르쉐의 판매가 27%나 감소하자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은 당시 포르쉐의 가장 큰 시장이었다.

폭스바겐 주가가 하락하자 파생 상품에 대한 손실(2008년 당시 폭스바겐 주가가 10유로 하락하면 약 6억 유로 손실)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무리한 폭스바겐 인수 시도가 포르쉐를 부도 위기까지 몰아넣은 것이다.

100억 유로에 달하는 채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포르쉐는 독일 정부에 긴급 융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부 펀드인 카타르투자청에도 지분 투자를 제의했지만 카타르투자청은 포르쉐와 폭스바겐을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포르쉐가 손을 벌린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폭스바겐이었다. 피에히 의장은 공개석상에서 “포르쉐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무리한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폭스바겐에 역인수(Reverse takeover)를 초래한 비데킹은 포르쉐 매각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2009년 7월 23일 비데킹 회장의 퇴임식에서 볼프강 포르쉐 의장은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16년간 동고동락한 비데킹 회장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를 목전에 두고 거꾸로 폭스바겐의 열째 브랜드가 되어 버린 데 대한 통한의 심정이었다.


헤지 펀드, 투자 손실 소송 나서
2009년 7월 포르쉐와 피에히 가족은 피에히 가문 주도로 두 회사를 합치는 데 합의했다. 폭스바겐은 포르쉐AG 지분 49.9%를 포르쉐SE로부터 80억 유로에 매입했다. 이 자금으로 포르쉐SE는 대부분의 차입금을 상환할 수 있었다. 결국 두 가족은 포르쉐SE를 통해 결합된 폭스바겐 지분 50.73%를 보유하고 니더작센 주는 20.1%를 그대로 유지했다. 카타르투자청은 17%의 지분을 갖게 됐다. 폭스바겐은 즉시 합병하려고 했지만 포르쉐가 폭스바겐에 완전히 넘어갈 경우 주가 손실 등을 우려하는 헤지 펀드들의 강력한 반발로 포르쉐가 지분을 넘기되 지주회사 기능을 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이후 폭스바겐은 2012년 7월 4일 포르쉐SE가 보유한 포르쉐AG의 남은 지분 50.1%를 44억6000만 유로에 인수했다. 세금 문제로 남은 지분 인수를 잠정적으로 보류하려고 했지만 독일 세무 당국이 인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일부 감면해 주면서 수월하게 인수가 마무리됐다. 폭스바겐 그룹은 주식 매수 청구권을 제공하는 콜옵션을 행사하고 포르쉐SE에 보통주 1주를 제공하며 세법상 합병 적용을 회피해 세금 9억 유로를 아꼈다.

이 대결은 표면적으로는 비데킹과 피에히의 대결이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의 대결이었다. 1937년 포르쉐 설립 후 70여 년째 이어져 온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의 전쟁은 외척인 피에히 가문이 친가를 제압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젊은 시절 포르쉐 회장을 노렸던 피에히는 1972년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모두 포르쉐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정확히 40년 만에 포르쉐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올라섰다. 아우디 회장과 폭스바겐 회장,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을 거치며 거둔 성과다.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역인수로 친가를 제압한 피에히 회장
하지만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포르쉐과 폭스바겐 인수·합병(M&A)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모두다.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은 이로써 포르쉐는 물론 유럽의 맹주이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는 거대 기업 폭스바겐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폭스바겐 그룹은 2018년에 전 세계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어쩌면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의 오랜 모임 장소인 첼암제 쉬트 농장에서 볼프강 포르쉐와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와인 잔을 부딪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가문의 싸움은 끝났지만 아직까지 후유증은 남아 있다. 2014년 2월 7개 헤지 펀드들은 2012년에 이어 포르쉐 회장과 피에히 폭스바겐 회장을 상대로 투자 손실에 대한 18억 유로의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2008년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설(說)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고 불합리하게 이득을 취득했다는 것. 당시 포르쉐는 폭스바겐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주식 옵션을 취득했지만 인수설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이에 따라 헤지 펀드들은 폭스바겐의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단기 매매 차익을 위해 공매도에 나섰다. 하지만 추후 포르쉐가 폭스바겐 지분을 7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해 단 이틀 만에 폭스바겐 주가는 4.4배가 상승(폭스바겐 주가 2008년 10월 24일 209.3유로→10월 28일 912.7유로)했다. 이 때문에 주가 하락을 예상했던 헤지 펀드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시 주식을 매수(숏커버)하면서 주가 상승에 탄력을 더했고 투자 손실이 발생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폭스바겐 주식은 5%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 가문은 한 배를 탄 만큼 충분히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폭스바겐은 포르쉐 지분을 전량 인수한 후 지속적으로 주가가 상승해 지멘스와 SAP 등을 제치고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