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이후 재평가 움직임…선진·개도국 소득 격차는 정말 ‘수렴’했나

G20 Finance Ministers and Central Bank Governors begin their annual meeting in Sydney, Australia, Saturday, Feb. 22, 2014. (AP Photo/Jason Reed, Pool)
G20 Finance Ministers and Central Bank Governors begin their annual meeting in Sydney, Australia, Saturday, Feb. 22, 2014. (AP Photo/Jason Reed, Pool)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성장 격차가 축소됨에 따라 그동안 세계경제의 추진력으로 간주되던 ‘세계화’를 보는 시각에 선진국 학자를 중심으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디온 라흐만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주로 선진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는 가운데 세계화의 퇴조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피터 만델슨 유럽연합(EU) 무역위원회 위원장과 난단 닐레카니 인도 인포시스 대표는 세계화가 혁신의 촉진, 생활수준 향상 등을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있어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계경제 중심국으로 급부상한 신흥국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세계경제의 중심국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높은 교역 증가와 성장률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신흥국의 경제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자국 내 외화의 급격한 유출에 대비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신흥국은 막대한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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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은 외화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와 유럽 채권에 투자했다. 신흥국의 미 국채 매입이 미국의 국채 금리 안정에 기여한 측면은 있지만 이들 국가의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라 미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위험도 잠재한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거나 위안화 절상 압력의 수위를 높일 때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대량 매각하는 방식으로 응수할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에 퍼지면서 국채 금리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국 등 신흥국 기업들은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자동차·전자 분야에서 미국 기업을 추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진국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신흥국은 그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각종 경제협력체에서 발언권이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요 20개국(G20) 회의다.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국 기업들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한편 이들 기업의 경영과 혁신 방식을 모방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월마트·피자헛 등 선진국 소비 업체들은 중국·인도의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를 조직하고 제품을 디자인하는 방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신흥국의 생산능력 확대와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세계 교역량이 크게 확대됐다. 회귀분석 결과를 보면 세계 교역 증가율과 세계 경제성장률은 밀접한 ‘정의 관계(positive relation)’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교역에서 신흥국이 절대적으로 기여한 만큼 세계경제에서도 그만큼 도움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흥국의 발전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나는 저렴한 상품의 수출로 선진국의 수입 물가 하락을 유도한다. 또 하나의 경로는 선진국의 노동비용 하락, 아웃소싱이나 생산 시설 이전을 통한 원가절감이다. 공장 이전에 위협을 느낀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력 약화 등이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내수에 비해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훨씬 빨라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글로벌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각국 간 경상수지 불균형은 환율 조정을 통해 일정 부분 해소돼야 하지만 신흥국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다.

특히 정보기술(IT) 관련 분야에서는 선진국이 기획, 핵심부품 개발, 연구·개발(R&D), 마케팅 등을 담당하고 제품은 신흥국의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이를 다시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국제적인 분업 구조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한국 등으로부터 고부가가치 중간재를 수입해 최종 제품을 만든 후 이를 선진국에 수출하고 있어 미국·유럽에 대해서는 무역 흑자를, 주요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적자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수취형 무역구조를 시정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지식·기술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추세다.


위대한 수렴인가, 위대한 발산인가
선진국의 저금리 기조로 투자수익률이 낮아진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의 빠른 성장세, 자본시장 개방도 확대 등을 배경으로 이 지역으로 대거 유입됐다. 세계 투자 자본 유입액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의 10%대에서 최근 30% 가까이 상승했다. 이 같은 자금 흐름은 신흥국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빈번한 외환위기를 낳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세계화가 진전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는 소득 격차가 현저하게 확대됐다. 1960년 선진국 소득의 8% 수준이었던 저소득 개도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1% 내외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 중소득 개도국의 1인당 GDP도 11%에서 5% 내외로 떨어졌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케네스 포메란츠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 교수는 선진국 입장에서 ‘위대한 발산(great divergence)’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계화가 급진전된 2000년대 들어서는 개도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가 축소됐다. 로버트 솔로의 성장 모델에 따르면 특정국의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본은 혼잡비용(red tape)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자본이 적은 국가가 빠르게 많은 국가를 추격했다. 포스너의 기술 격차 이론에서도 후발국은 선발국의 지식과 기술을 흡수함으로써 압축 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논설위원은 ‘위대한 수렴(great convergence)’이라고 부른다.

세계화가 세계경제 성장보다 더 빠르게 진전됨에 따라 국제무역, 자본 이동 등의 세계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세계화의 성과가 달리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논란과 세계화 추진 전략에 수정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링(reshor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최근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위대한 발산’과 ‘위대한 수렴’ 간의 논쟁은 실증적으로 그동안 추진된 세계화 성과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