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통한 ‘집합적 파급력’을 위한 5가지 요소

‘모금은 예술이자 과학’이라는 말이 있다.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의견은 모금자의 열정과 감동적인 스토리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 예술의 심미적 성향과 닮았다고 말한다. 반면 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쪽은 타깃 분석을 통한 전략적 접근으로 모금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예술적 모금이었다면 최근 국제 구호기구들의 모금 방법은 과학에 가깝다. 모금에도 기업의 전략적인 마케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석 기법들과 전략 수립 방법론들이 도입되고 있다. 국내외 모금 전문가들이 말하는 ‘모금의 기술’의 핵심을 들여다본다.
[SPECIAL REPORT] 세계 최대 모금 단체가 밝히는 ‘모금의 기술’
“마케팅은 더 이상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영리 조직에도 유효하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사립대 170곳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자 ‘마케팅 개념의 확대(1969년, 코틀러, 레비)’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후 미국 대학·병원·시민단체는 ‘모금의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성숙된 모금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모금의 기술은 최근 기업의 기업사회적 책임(CSR) 활동뿐만 아니라 정부와의 정책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문제 영역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세계 최대 자선 기관 세계공동모금회(UWW:United Way Worldwide)는 125년의 역사를 통해 모금의 기술을 발달시켜 연간 모금액이 약 52억 달러(5조4000억 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UWW는 산업혁명의 결과 탄생한 조직이다. 일을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이주하면서 나타나는 사회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야 할 요구에 따라 설립됐다. 정부와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환경·교육·복지 등 공익 이슈에 대해 각각 소규모 그룹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장했다. 지금은 전 세계 1800개의 파트너십을 갖고 있으며 1100만 명의 기부자, 292만 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있고 매년 1만 달러(1000만 원) 이상 기부하는 2만5000명을 보유하고 있다.


연간 5조 원 모금의 저력은 ‘협업’
지난 4월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으로 서울에서 강연을 가진 브라이언 갤러거 UWW 회장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협업이 필요하며 이해관계인들이 모두 함께 움직일 때 높은 수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기업도, 시민사회도 사회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이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공동의 큰 목표 아래 각자의 가치를 창출할 때 윈-윈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집합적 파급력(Collective Impact)’이라고 표현했다. 집합적 파급력은 기업·정부·비영리단체(NPO)·학계 등 사회의 다양한 조직들이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공통의 사회문제 등 특정 목표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사회 공헌 활동을 말한다.

국내 모금 단체들은 좋은 취지를 필사적으로 알리려고 하지만 협업에 미숙한 까닭에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반면 UWW의 모금자들은 외부와의 협업을 진행하기 위해 전문가의 훈련도 받고 있다. 협업 훈련은 공동 목표 설정, 사회화 기술, 역할 분담, 참여자 각각의 성공을 측정하는 지표 개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기업도 최근 CSR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기업과의 파트너십은 모금 주체에게 중요한 가치다. 모금 교육과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도움과나눔이 국내 70개 모금 단체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가장 강화하고자 하는 모금 방법 중 ‘기업 모금’이 27%를 차지해 가장 많이 개척할 분야로 꼽혔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 모금은 ‘가장 많이 활용한 모금 방법’과 ‘가장 효과적인 모금 방법’을 묻는 질문에서 ‘지인을 통한 모금(31%)’에 못 미친 각각 14%, 16%의 답변이 있을 뿐이었다. 많은 모금 단체가 기업 모금에 큰 기대를 거는 반면 실제 성과를 크게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CSR 트렌드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SPECIAL REPORT] 세계 최대 모금 단체가 밝히는 ‘모금의 기술’
단기간 재정적 성과를 이뤄야 하는 것이 기업이지만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좋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고 수익에도 긍정적 영향을 가져 온다는 있다는 개념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변화다. 갤러거 회장은 제너럴일렉트릭(GE)의 변화와 성장을 예로 들었다. GE의 9대 회장 제프리 이멀트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추구했다. 지역사회의 기여를 내세운 것이다. 기업 이윤을 추구하며 혹독함까지 보였던 잭 웰치 전임 회장과는 반대의 전략이었다. 당연히 주주 등 이해관계인들은 이멀트 회장의 비즈니스 전략을 싫어했다. 경기의 영향으로 주가가 떨어지고 성장이 정체된 GE의 자구책이 자선사업이라니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멀트 회장은 꿋꿋이 지역사회 기여를 위해 아프리카·남미 등 취약 지역의 소외 계층에게 물 정화 시스템, 휴대용 의료 장비 등을 수년간 보급해 왔다. 초기에 기업 수익에는 도움이 안 됐지만 휴대용 의료 장비 등이 유럽·미국 등 선진사회에서도 수요가 발생하면서 수익 사업으로 전환됐다. GE의 의료 장비 사업은 단기적 성과보다 지역사회 및 비영리단체들과의 협업을 통한 사회 공헌, 차세대 먹을거리까지 발굴한 셈이다.

갤러거 회장은 모금 단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 조직의 작은 목표를 위한 모금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큰 아이디어 아래 외부 파트너의 참여를 유도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금전적인 기부를 넘어 의미 있는 CSR 활동을 찾고 있는 기업의 참여를 잘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협업 훈련을 받은 UWW 소속 모금자들이 구사하는 기업과의 협업 노하우가 있다. 단지 금전적 기부만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의 구성원인 직원·고객·외주 업체까지 전체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UWW를 대변하는 방법론이라고 갤러거 회장은 말한다. 그는 UWW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모금 기관이지만 UWW 독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이제까지 한 건도 없다고 말한다.

“기업과 어떻게 협업할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 많은데 기업도 기본적으로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은 문제에 직면하면 자산인 자본·기술·직원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해결에 나선다. 특히 직원은 회사의 중요한 자산인데 모금 주체들은 이들의 참여를 잘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직원들의 사회 참여, 공헌 활동 참여 욕구를 잘 이끌어 내는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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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와 직원은 과거 단지 임금에 따라 정해진 책임을 다하면 되는 단순한 관계였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변하고 있다. 회사는 직원에게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고 직원들도 자신들이 기업과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길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수록 기업과 지역사회에 대한 충성도는 커진다는 논리다. 기업·직원·지역사회·비영리단체 모두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윈-윈 성과다.

사례를 살펴보자. 유럽 기반의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의 공장이 들어선 프랑스의 툴루스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났다. 북아프리카 이민자가 많은 이 지역의 고등학교 중퇴율이 40%에 달했다. 지역사회·정부·비영리단체 모두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했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하지만 UWW가 주춧돌이 돼 에어버스라는 현지 기업과 지역 대학생들과의 협업을 유도해 내면서 공동 가치를 추구한 결과 상황이 달라졌다. 에어버스 공장의 엔지니어들이 지역 고등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공장에서 공고 학생들과 함께 일하고 엔지니어링에 대한 관심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숙제도 도와주며 개인적 고민에 대한 상담에 나섰다. 에어버스 엔지니어들은 고교생들에게 고교 졸업 등 다양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면 비행기를 타게 해주겠다는 보상까지 약속했다.


전략 수립 단계부터 참여 유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교생들은 과학·비행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꿈을 갖게 됐다. 그 결과 고교 성적도 크게 향상됐고 고교 졸업생 비율도 크게 늘었다. 프로그램 참여 학생의 100%가 고교를 졸업했다. 에어버스의 직원들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고 무엇보다 자부심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오랜 시간 훈련된 인재들을 앞서 확보하는 소득도 얻었다.

갤러거 회장은 기업과의 협업을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해 한마디로 비영리단체도 비즈니스의 생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업의 CSR 담당도 사회복지 등에 대해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사회·비영리단체의 성공을 위해 각각의 구성원들은 공동 가치 창출에서 전략 수립 단계부터 참여하길 원한다. 구성원의 참여가 많을수록 주위의 친구나 동료의 자원봉사를 지켜보며 동기부여가 돼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한다. 참여자가 늘면 늘수록 각 참여 기관 및 기업의 예산의 집행도 역시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단, 참여 단체나 기업이 늘수록 발생하는 문제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합의를 도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갤러거 회장은 “UWW는 기업과 지역 사회의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구현하도록 돕는다”며 “각 참여자의 긴장 관계를 잘 관리하는 스킬이 중요한데 초기 단계에 높은 가치 수준의 목표 설정에 대해 합의했다면 긴장 관계나 갈등은 궁극적으로 타협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UWW는 장기 비전의 목표를 도출하는 데 평균 18개월이 걸린다. 각 참여 그룹과 수많은 대화를 통해 동의에 접근하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프로젝트 실행이란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100% 동의는 아니지만 프로젝트의 리더는 참여 그룹의 동의 수준이 적정선에 이르렀을 때 과감히 이를 결론짓고 실행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모금 주체나 프로젝트 리더의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일관성이 있어야 이를 신뢰하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자원봉사나 기부를 추천할 때 주체가 이러이러한 체계를 갖추고 있어 효율적으로 참여자의 돕고자 하는 욕구를 잘 반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또한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잘 알려주라고 갤러거 회장은 주문했다.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 인터뷰
[SPECIAL REPORT] 세계 최대 모금 단체가 밝히는 ‘모금의 기술’
모금 활동에도 인력·마케팅 투자해야 성과 높인다

도움과나눔은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모금 컨설팅과 교육 사업, 모금 실행 사업을 하고 있다. 모금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는 “잠재 기부자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평가, 개인에 대한 적절한 관계 형성 전략 수립과 관리, 적절한 기부자 관계 관리 등의 과정은 모금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 모금 단체들의 성과 측면에서의 현황은 어떤가.
시민사회 단체는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반면 월드비전·유니세프와 같이 국제적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갖춘 구호단체의 모금액은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모금 시스템을 갖춘 모금 단체가 기부를 흡수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 기부 문화가 미숙하다고 하는데 성과가 좋지 않은 모금 단체의 변명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의 기부와 자원봉사의 열기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 기부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국민들은 뜨거운 기부 성향을 가지고 있다. 국내 기부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최근 10년 사이에 기업 기부의 비중이 줄어들고 개인 기부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기업가 기부와 기업 기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최고경영자(CEO)·임원·오너 등이 자신의 자선적 성향에 맞게 기부하지만 국내 기업가의 개인 자선 기부는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비영리단체 등 모금 단체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조직의 철학을 담은 공익 활동을 할 때 사회와 공유하고 체계적인 모금을 하는 데 취약하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소통을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이들의 본원적인 사업이다. 하지만 비영리 프로젝트와 모금 활동이 명확하게 결합이 안 돼 있거나 유기적으로 조화돼 있지 않다. 특히 모금 활동에도 인력, 마케팅 활동 등에 투자가 필요한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례로 국내 대학의 모금 담당자는 4~5명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대학은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모금 담당자가 약 500명에 달한다.


기업 모금이 힘들다고 들 말한다.
한국 기업의 CSR 활동은 다른 구미 선진국 기업에 비해 규모나 예산으로 볼 때 결코 적지 않다. 다만 CSR 전략과 일관성이 부족하다. 기업들은 CSR 예산을 기업의 분야에 맞게 사회 공헌의 테마를 좀 더 전문적으로 만들고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절박한 이슈나 취약층을 돕는 것이 그 기업의 CSR 활동의 전략과 맞는지 고려할 때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기업은 CSR 활동을 자체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다양한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면 보다 전체적인 사회 공헌에 접근할 수 있고 효율성에서 장점이 있다.


전략적·체계적 모금 활동에 대해 조언한다면.
첫째, 각 모금 주체가 갖고 있는 철학과 메시지를 사회와 어떻게 소통할지 진지한 해석 작업이 필요하다. 이후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의 커뮤니케이션에 나서야 한다. 둘째, 기부를 잘 받고 기부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조직적 체계가 필요하다. 흔히 농업적 모금이라는 표현을 쓴다. 밭을 잘 일구고 씨를 뿌려 놓으면 성과를 거두게 마련이다. 조직적 역량을 갖추고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모금 아이디어만으로 부족하다. 실제 인프라와 지속 가능한 힘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철저한 조사와 계산이 필요하다. 국제 구호단체는 이런 계산을 갖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