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장 넘기 고민하는 기업들…생존력 축적한 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주목’

이번주 화제의 리포트는 대신증권 김경민·박기범 애널리스트가 펴낸 ‘2014 독일 IFA 참관기:TV에서 사물인터넷까지, 세상은 천천히 바뀐다’를 선정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IFA 참관을 통해 글로벌 IT 시장의 다섯 가지 시사점을 찾았다.
[화제의 리포트] IFA 현장서 본 글로벌 IT 4가지 트렌드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IFA)는 1924년 라디오 전시회로 시작됐다. IFA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28년 사상 최초로 TV가 공개되면서부터다. 이후 IFA는 대표적 글로벌 가전제품 전시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올해 90주년을 맞은 2014년 IFA에서는 사물인터넷과 스마트 웨어러블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실제로 IFA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들 역시 다양한 종류의 사물인터넷 및 웨어러블 기기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뿐만 아니라 일본(소니·세이코엡손), 미국(오큘러스·MATO·아이헬스), 프랑스(위딩스)의 기업들이 스마트 글래스, 스마트 링, 헬스 케어 기기 등을 전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사물인터넷 기업인 네스트의 창업자가 9월 6일 별도로 기조연설을 진행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정용 온도 조절기를 개발한 네스트는 최근 구글에 32억 달러에 인수됐다.

2013년 IFA 개막식의 핵심 주제는 ‘글로벌 가전 시장의 수요 회복’이었다. 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는 한편 장기간 침체됐던 생활 가전 제품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개막식의 핵심 주제는 ‘역성장의 시작’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한편 카메라와 프린터 등의 수요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리서치 회사인 GfK의 전망에 따르면 2014년 및 2015년 글로벌 가전 시장은 각각 전년 대비 마이너스 2.5%, 전년 대비 마이너스 1.2%로 역성장이 예상된다. 역성장을 타개할 해법 중 하나로 사물인터넷과 스마트 웨어러블이라는 키워드가 2014년 IFA에 등장한 것이다. IFA 참관을 통해 알아본 글로벌 가전 시장의 핵심 시사점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① 혁신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천천히 바뀐다.
웨어러블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혁신 가능성 때문이다. 이번에 삼성전자(갤럭시 기어S), LG전자(G워치R)뿐만 아니라 소니·세이코엡손·MOTA는 각각 스마트 안경과 시계·반지를 선보였다. 갤럭시 기어S는 자체 전화가 가능하고 1000개 이상의 타이젠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확장된 기능을 제공했다. 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제품은 MOTA의 스마트 반지다. 핵심 기능 2가지(시간 확인, 메시지 확인)만 탑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웨어러블 제품들은 기능적 측면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② 혁신이 없을 때는 디자인 차별화가 대안이다.
웨어러블 신제품들의 기능이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나마 차별화가 가능한 요소는 디자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LG전자 G워치R가 원형 디스플레이 채택과 명품 이미지 전개로 차별화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9월 9일 미국에서 공개된 애플 워치도 디자인 차별화에 주력했다. 애플 워치 신제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18K 골드가 적용된 애플 워치 에디션에 대한 선호도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보인다. 기능이 동일하다면 결국 18K 골드가 적용된 애플 워치의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디자인 차별화밖에 없다.

디자인 차별화는 TV 신제품 경쟁에서도 발견된다. 각 기업들의 핵심 제품은 다르지만 공통분모는 디자인의 차별화다. 몰입감을 높이는 커브드 TV, 얇은 두께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콘텐츠의 종류에 따라 외관을 바꿀 수 있는 벤더블 TV는 휘거나, 얇거나, 가변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③ 중국 TV의 위상이 높아졌다.
중국 TV 시장 1위 기업인 하이센스는 IFA 내에서 단독으로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하이센스의 TV 시장점유율은 중국 기준 18.5%, 글로벌 기준 5.74%다. 주요 발표 내용은 하이센스라는 기업을 유럽 언론에 소개하는 내용이었지만 전시장 규모는 2013년 대비 2배가 넘게 확대됐고 신제품 라인업은 예전보다 강화됐다.

하이센스는 한국·일본 기업과 견줄만한 TV 신제품(퀀텀닷·커브드·벤더블)을 공개했다. 화질·베젤·두께 등을 보면 전체적인 완성도는 한국 기업에 비해 못 미쳤다. 하지만 신제품의 영향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중국에서 저가로 출시되면 순조롭게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출시됐던 3D TV, 스마트 TV도 한국 제품에 비해 완성도가 낮지만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화제의 리포트] IFA 현장서 본 글로벌 IT 4가지 트렌드
④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역성장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기업을 찾아라.
역성장이 시작되고 혁신이 지연되더라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에는 희망이 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 중 원가절감을 통해 영업 원가(매출원가+판관비)를 최소화한 기업은 역성장의 고통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업은 향후 수요가 반등할 때 매출 성장이 영업이익으로 고스란히 직결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업은 극심한 변동성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살아남는 방법’을 아는 회사다. SK하이닉스의 영업 원가는 2012년까지 10조 원 초반으로 항상 고정돼 있었다. 즉 변동비 비중이 실제적으로 전체 원가의 10~20%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영업 원가가 고정되면 업황 턴어라운드 시 매출 성장은 그대로 영업이익이 된다. SK하이닉스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분기별 영업이익 1조 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웬만한 외부 변수에 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영업 원가를 구조적으로 안정화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도 비수기를 견디는 힘을 본격적으로 축적하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현재 반도체 산업 대비 외형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매출 확대보다 마진 확보가 더 중요한 실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눈에 뜨게 변동비가 줄어들고 있다(60%→50%). 2014년 상반기 실적에서 주목할 것은 비수기 영향과 원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변동비 절감에 힘입어 매출 총이익률이 12%로 견조하게 유지됐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1분기 및 2분기에 매출 총이익률이 12%를 넘었던 시기는 6회 중 1회에 불과했다. 따라서 앞으로 LG디스플레이의 매출이 줄거나 그대로더라도 영업이익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특히 3분기는 원화 기준으로 매출은 전년 대비 같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8%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⑤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수성 의지가 보인다.
삼성전자는 IFA와 별도로 진행된 언팩 행사를 통해 스마트폰 및 웨어러블 신제품을 공개했다. 현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제품은 갤럭시 노트 엣지, 몽블랑 액세서리와 갤럭시 기어 VR다. 이들 제품의 양산성이나 실적 기여도를 고려했을 때 단기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을 수성하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시도라고 판단된다. 정보기술(IT) 시장에서의 최종 승자는 소비자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꺼내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번 IFA의 시사점 중 하나는 ‘돈 되는 것은 다 한다’였다. 데이터 스토리지 업체인 킹스턴은 고용량 저장 기기 제품과 함께 음악 감상용 헤드폰을 전시했다. 또 퀄컴과 샌디스크는 반도체와 전혀 무관한 동영상 앱 기업 마지스토에 투자하기도 했다. 즉 역성장을 견딜 수 있는 해법은 일본 기업과 같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LG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처럼 원가절감을 하거나 삼성전자처럼 기존의 프리미엄 시장을 수성하기 위해 뛰거나 킹스턴처럼 돈 되는 것은 다 해 보는 만물상 전략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정리 이홍표 기자 haw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