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얻는 ‘서울대 창업 기지론’…벤처경영학 연합 과정 개설 등 새로운 바람

[SPECIAL REPORT] 서울대 개혁론, ‘창업’이 중심 화두 돼야
한국 경제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창업이 활성화하고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대학이 도전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대학들은 학생 선발에서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방 경제 시대에 적합한 표준형 인재를 육성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 최고 인재의 요람인 서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울대는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는 인재 비율이 높기 때문에 ‘고시 학원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들어 왔다.

서울대와 관련해서는 학벌 서열화, 기초 학문 취약, 폐쇄성, 순혈주의 등 다양한 문제가 지난 20여 년간 제기돼 왔다. 여러 논쟁들은 서울대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고 ‘서울대 개혁론’에서 더 나아가 ‘서울대 폐지론’까지 나왔다. 최근 서울대 개혁론 중 새롭게 제기되는 제안이 ‘서울대 창업 기지론’이다. ‘서울대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이끌 기업을 설립할 창업 기지가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최고 인재들이 모인 서울대에서 대한민국 미래 국부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 3분의 1은 창조적 일을 해야”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 학장은 “제2의 삼성이 나와야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5% 이상 가능한데 서울대의 유능한 인재들이 정부와 대기업 등 이미 체계를 갖춘 곳에만 몰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울대 전체 학생 중 3분의 1은 연구 및 교육 등 학문 분야에, 다른 3분의 1은 정부와 기업에서 효율성과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남은 3분의 1은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매달려 창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모험적으로 혁신에 도전해야 하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최고 인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대기업은 국내 최고 인재들을 흡수해 왔다. 인재 유치를 위해 대기업들은 최고 대우 및 직업 안정성을 보장했고 서울대 출신들은 대기업 취업을 선호했다. 창업은 대기업 취업 등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인재들의 차선책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창업에 대한 준비와 능력이 부진한 경우가 많았고 실패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탄탄한 직업이 아닌 창업에 나서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퍼졌고, 이는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김 학장은 진단했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다. 도전적으로 창업에 나서고 완성도 높은 기업을 낳는 성과를 얻는다면 이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국가·사회적으로도 창업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제 최고 인재들에게 도전·기업가 정신과 아이디어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서울대일까. 서울대는 16개 단과대학에 83개의 학과·학부가 있고 대학원은 5계열 69개 학과·학부와 28개 협동 과정이, 박사과정으로 5계열 70개 학과·학부와 29개 협동 과정이 개설돼 있다. 학생 수는 대략 2만6000명이고 교수만 1700명에 달한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이처럼 큰 규모의 다양한 전공 과정을 지닌 종합대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서울대가 백화점식으로 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광복 직후 미군정은 미국의 교육 중심 대학을 모델로 서울대를 설계했다. 그 모델은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로 알려져 있는데, 이 대학은 석·박사보다 학사 교육에 치중하는 대학이었다. 고등교육이 부실했던 당시 서울대를 교육 중심 대학으로 설계한 것은 국가 건설을 위한 다양한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고 분석된다. 그리고 서울대가 배출한 표준형 고급 인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정부·기업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

경제와 연계성이 가장 큰 경영대학 학부 졸업생의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 2012년 2월 졸업자 총 159명 중 57.9%가 산업계로 진출했다. 산업계 진출자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제조업 등 비금융권 대기업이 29.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금융권 16.9%, 컨설팅사 4.4%로 나타났다. 그리고 의사·변호사·회계사·사법고시·행정고시 등 자격증형 전문직 진출은 29.6%, 대학원 등 학계 진출은 8.8%에 달한다.

문제는 이 중 벤처 등 창업에 나선 인재는 불과 2.5%라는 것이다. 다른 전공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가 발표한 ‘2013학년도 서울대 학부생 진로 의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000명 가운데 창업을 1순위로 희망하는 학생은 2.1%에 그쳤다.

그 배경에는 기업가 정신과 창업에 대한 교육이 거의 부재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서울대에서는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을 이단아로 취급하는 문화가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서울대 산업공학과 재학 시절 학교 내에서 ‘공부하지 않고 다른짓하는’ 이단아였다. 김 학장은 “서울대 분위기는 공부에 집중하는 모범생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서울대 경영대 출신 중에서도 자기 사업을 하는 졸업생은 많지 않고 대부분이 산업계에서도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가적으로 볼 때 서울대 인재들은 이미 잘 만들어진 조직에서 구성원으로 활약하는 것보다 연구·개발, 창업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창조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 박찬 소장(서울대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교수)은 “서울대 학생들은 저학년부터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자신의 직업 가치관을 확립하고 목표를 설정한 후 체계적으로 준비해 가는 특징이 있다”며 “이에 비춰 볼 때 혁신적 창업에 아주 적합한 인재라고 본다”고 말한다. 그는 “창업에 도전하는 서울대생들을 보면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깊이 있고 철저하게 사전 조사하고 주변 환경을 잘 활용하며 높은 성취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창업 교육 프레임 전환에 앞장설 것”
‘서울대 창업 기지론’은 서울대 내에서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서울대 내에서도 학생들의 창업 의지를 고취하고 지원하려는 바람이 일고 있다. 이는 서울대 법인화 전후로 새로운 변화다. 성낙인 서울대 신임 총장은 지난 8월 취임식에서 “서울대가 시급하게 해야 할 과제로 법인 전환 이후 학교의 좌표 확립”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최근 서울대에 신설된 기업가센터 출범식에서 성 총장은 “기업가센터는 끝없는 창의적 도전을 통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구축할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하고 대학 창업 교육의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인 출신 박용현 두산그룹 전 회장이 서울대 법인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서울대의 분위기 혁신에 일조하고 있다.

서울대에 퍼져 있는 전반적인 창업 기피 분위기를 타파하고 창업 기지로 발돋움하겠다는 뜻을 가진 교수들도 힘을 합쳤다. 그 결과 서울대는 국내 최초로 ‘벤처경영학’이란 학문을 만들고 학부 내 연합 전공을 2013년 12월 신설했다. 벤처경영학 연합 전공은 서울대 경영대학이 주도하고 인문대 철학과, 공과대 컴퓨터공학부, 농업생명과학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법과대 법학부가 참여한 과정으로 서울대 재학생이면 누구나 2학년부터 창업 과정을 복수 전공으로 들을 수 있다.

서울대 차원에서 벤처경영학을 초기에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서울대 내 창업 문화의 필요성에 공감한 각 단과대학 교수들이 힘을 합쳐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본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다. 이를 통해 뿔뿔이 분산된 창업 교육을 일원화하고 창업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서로 의지하며 창업에 성공하기까지 체계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해 40명의 벤처경영학 연합 전공 학생들은 기술 트렌드와 사업 기회 분석 과정 등 이론적 과정뿐만 아니라 실제 창업에 도전, 평가를 받는 실습 과정을 거친다. 서울대 측은 3년간 철저한 창업 교육 및 실습을 통해 미래 완성도 높은 기업가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업가 정신 교육의 핵심은 새로운 기회를 지속 발견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사회·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최근 몇 년 새 ‘기업가정신센터’를 설립하고 창업을 독려하는 등 트렌드를 형성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서울대는 창업 교육과 실습 차원에서는 벤처경영학 연합전공을,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기업가센터를 지난 10월 8일 설립했다. 서울대는 한양대·카이스트·포항공대·숙명여대·인하대와 함께 중소기업청의 재정 지원을 받아 기업가센터를 설립했다. 기업가센터는 창업 전공 연계와 함께 투자 포럼 및 학생 창업 경진 대회 개최, 해외 인턴십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의 창업 활동을 지원한다. 또한 서울대는 본격적인 창업 지원의 그 시작으로 서울대 SK경영관 58동을 증축, 학생 창업 전용 보육 시설(BI)을 2015년 개소하고 학생 창업팀에 임대하겠다는 등 전폭적인 창업 지원 드라이브에 나섰다.

최고 인재의 산실 서울대는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서울대 출신 인재들이 앞으로 대한민국 국부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창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교육 기회 제공에 나선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이제 제도적 지원을 기반으로 서울대 학생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실제 혁신적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인터뷰 │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장 겸 대학기업가센터협의회장
“도전적인 일하는 사람 인정하고 보상해야”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서울대 창업 기지론’의 선봉에 서 있다. 그는 또한 대학기업가센터 협회장을 맡으며 “우수하고 탤런트가 많은 학생들을 교육으로써 동기를 부여해 이들의 향후 진로 선택 1순위를 창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많은 산업 분야에 대기업이 이미 진출해 있고 독점적 사업을 하고 있어 창업 기회가 많이 없다고 학생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서울대 학생들에게 도전의식이 부족한 게 더 큰 문제다. 직업 안정성, 좋은 대우만을 찾고 있다. 창업이 모험심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잘 완성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면 사회적으로 그에 대한 보상과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왜 서울대생이 창업에 나서야 하는가.
“창업과 같이 창조적인 일은 유능한 인재가 해야 한다고 본다. 서울대 출신은 사회적 혜택을 받는 인재들이다. 이들은 국가관을 가져야 한다. 국가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이 바로 창업이다.”


서울대에서 본격적으로 창업 지원 바람이 불고 있다.
“벤처경영학 연합 전공 개설까지 학교와 교수들이 인정하지 않는 애로도 있었다. 이제 교육과정도 생겼고 기업가센터를 통해 지원 조직도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국가적 창업 지원은 생계형 창업에 대한 복지 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복지가 아닌 유능한 인재들의 혁신적 창업을 지원해야 구글과 같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창업을 독려하면 솔깃해 한다. 창업은 도전과 모험이고 자기희생을 통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인재는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생들이 집에 가서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창업 의지는 바로 꺾인다. 부모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공부 말고 다른 짓을 하면 불량아 취급을 한다. 이 같은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우선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도 바뀌어야 한다.”


혁신적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제언은.
“중요한 것은 창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기업가 정신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교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도전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