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거세지는 인재 확보 전쟁, 외국계 로펌도 곧 가세할 듯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시장 완전 개방 눈앞…‘경쟁력 강화’ 올인
2017년 이뤄질 법률 시장 완전 개방은 로펌 업계의 최대 화두다. 외국계 대형 로펌들이 국내 법률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론’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가장 단적인 예로 한국의 법률 서비스 분야 수지가 2006년 이후 한 차례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한국은행이 최근 집계한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법률 서비스 분야 적자는 7500여억 원에 달했다. 한국 기업이 외국계 로펌의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고 지불한 금액은 1조5800여억 원에 달하는 반면 토종 로펌이 외국 기업을 대리해 벌어들인 돈은 8300여억 원에 그쳤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의 적자 폭이다.

적자의 원인은 간단하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는 현지의 외국계 로펌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 로펌이 해당 지역의 법률에 더 해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코오롱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듀폰과의 소송에서 미국계 로펌인 폴 헤이스팅스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 로펌은 미국 반도체 업체인 선에디슨의 나스닥 주식 상장과 관련한 삼성전자와 삼성정밀화학의 사모 펀드 투자 자문도 맡고 있다.

문제는 2017년 국내 법률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2017년 이후에는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를 고용해 직접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돼 외국 기업이 국내 대형 로펌을 찾지 않더라도 직접 사건을 수임해 소송을 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로펌의 주요 수요자인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국내는 국내 로펌, 해외는 해외 로펌’과 같은 식으로 사건을 맡기지 않고 국내서도 해외 로펌에 일괄적으로 사건을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M&A 거래액 상위 10곳 중 6곳이 외국계
물론 지난 수십 년간 국내에서 네트워크를 쌓아 온 토종 로펌들이 쉽사리 안방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의 개방형 경제에서는 결국 외국계 로펌들의 자금력에 국내시장에서도 서서히 밀리는 모양새가 나타날 수 있다. 한 대형 로펌의 관계자는 “법률 시장의 특성상 진출이 쉽지 않다고 해도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의 유능한 변호사를 대거 영입하는 외국 로펌이 생기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도 토종 로펌을 찾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미 한국에 사무소를 개설한 외국계 로펌은 총 20개(미국계 16곳, 영국계 4곳)로 늘어났다. 이들은 벌써 조용히 국내시장을 잠식 중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M&A 시장은 로펌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들이 움직이는 시장이다. 외국계 로펌들은 지난 1분기 국내 M&A 시장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블룸버그가 최근 낸 ‘대한민국 M&A 시장 리뷰’에 따르면 지난 1~3월 국내 M&A 법률 자문 시장에서 거래 총액 상위 10곳 중 6곳을 외국계 로펌이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외국계 로펌이 상위 10곳 중 3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10위 안에 포진한 외국계 로펌이 2배 늘어난 것이다.

결국 토종 로펌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방법이다. 하나는 해외 진출, 또 다른 하나는 국내시장의 지배력 강화다. 김범수 세종 변호사가 최근 한국법률가대회에서 공개한 국내 로펌의 해외 진출 현황에 따르면 국내 로펌들은 총 13개 국가, 18개 도시에 해외 사무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해 있는 중국 베이징에 법무법인 광장과 태평양·세종·율촌·정세·제이피 등 7개의 국내 로펌이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베트남 호찌민에도 법무법인 율촌과 지평·로고스·에이펙스·제이피 등 5개 로펌이 현지 사무소를 개설한 상태다. 베트남 하노이에도 법무법인 율촌과 지평·로고스·제이피가 진출했다. 중국 상하이에 법무법인 태평양과 세종·지평이 진출했고 캄보디아 프놈펜에 법무법인 지평과 로고스·에이펙스가 진출한 상태다.


해외 진출은 아직 중국과 베트남 중심
하지만 법률 시장 개방의 상대국인 유럽연합(EU)과 미국에 진출한 로펌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럽에 속하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에 법무법인 화우와 대륙아주가 진출한 정도다. 즉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선진 시장에서 글로벌 로펌들과 경쟁하기는 힘에 부친다는 뜻이다. 김 변호사는 “지금 당장 우리 로펌들이 시장 확보 등 아무런 준비도 없이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동남아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나 중동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두바이 등을 거점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경쟁력을 쌓은 후 유럽과 미국으로의 진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로펌들은 국내 법률 시장에서의 시장 지배력 확보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로펌 간의 인재 확보 경쟁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이유다. 각 로펌들은 판검사 출신 등 전관(前官) 변호사와 사법연수원·로스쿨 출신 우수 신입 변호사는 물론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를 영입하는 데 로펌의 사운을 걸고 있다. 스타급 전문 변호사의 유무는 사건 수임과 해결에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률신문이 변호사 수 기준 상위 15개 로펌 소속 변호사 2803명의 이직 상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313명(11.2%)의 변호사가 다른 로펌에서 영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로펌 소속 변호사 10명 중 1명 이상이 다른 로펌에서 이적한 셈이다.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시장 완전 개방 눈앞…‘경쟁력 강화’ 올인
지난 10월에도 김앤장·광장·태평양 등 초대형 로펌들이 스타 변호사들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광장의 주완 변호사가 같은 팀 정상태·심요섭 변호사와 함께 김앤장으로 옮겼다. 노동법 분야의 스타인 주 변호사가 김앤장으로 옮겨가자 김앤장에서는 이욱래·박영훈 변호사가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지난 5월에는 국내 통합도산법의 권위자인 임치용 변호사가 태평양에서 김앤장으로 옮겼다. 광장도 스타 변호사 영입에 적극적이다. 광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팀장급 미국 변호사 5~6명을 영입해 조세팀, 국제중재팀, 해외 인수·합병(M&A)팀, 노동팀 등에 배치했다. 김앤장에서는 심재진·조현우·김태형 미국 변호사 등을 데려왔다. 심 변호사는 국제 조세 분야 전문가이고 조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10년 이상 노동팀장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미국 및 영국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M&A 분야 전문가다. 영입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파트너급 변호사들의 팀 단위 영입은 이미 영·미 글로벌 로펌 사이에서는 빈번한 일이어서 국내 법률 시장이 최종 개방되는 2~3년 후부터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지금까지는 대형 로펌 간에 스타 변호사 쟁탈전이었지만 법률 시장이 개방되면 이 전쟁에 외국 로펌까지 가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대형 로펌, ‘틈새시장’ 공략 나서
로펌들의 시장 지배력 확보 방안은 단지 ‘인재 확보’가 다가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에 있는 대형 로펌들이 지방 사건 원정 수임에 나서며 시장 키우기에 나서는 중이다. 또 집단소송이나 이혼 사건 등 종래 대형 로펌이 부담스러워 했던 사건도 맡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9월 1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광장·세종·율촌 등 주요 대형 로펌 8곳의 지방 본안 사건 수임 건수는 2009년 2586건에서 2013년 3100건(19.9% 증가)으로 최근 5년간 크게 늘었다. 형사사건은 같은 기간 696건에서 1018건(46.3% 증가)으로 증가 폭이 더 컸다. 행정사건은 158건에서 227건(43.7% 증가)으로 늘었다. 지방 민사사건은 2009년 1643건에서 2013년 1771건으로 7.8% 느는 데 그쳤지만 사건은 ‘고액화’됐다. 소액 사건(소가 2000만 원 이하)은 같은 기간 105건에서 90건(14.3% 하락)으로 줄어든 반면 고액 사건(10억 원 초과)은 137건에서 209건(52.6% 증가)으로 크게 늘었다.

또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대형 로펌은 기업을 대리한다’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이달 초 카드 3사 정보 유출 피해자 1985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에 KB국민·농협·롯데카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소가는 피해자 1인당 10만~70만 원 수준이었다. 바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착륙 사고와 관련해서도 원고 25명을 모집했으며 곧 미국 법원에 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동인은 화물차 가격 담합 사건과 관련, 화물차 운전사들을 대리해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