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중심으로 사업 재편, 한화S&C 수혜로 ‘일거양득’

삼성과 한화, 한화와 삼성 간 2조원규모의‘빅딜’이 이뤄졌다. 재계 및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들 그룹사의 과감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두 그룹은 이딜을 통해‘명분과 실리’는 물론‘지배 구조와 후계 구도’까지 안정화하는 성과를 냈다. 왜 그럴까. 이번 빅딜의 배경과 이를 통해 노리고 있는 양 그룹의 성장 전략을 2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 첫회는 빅딜을 통해 제조업 중심 기업으로‘규모의 경제’를 완성한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이 11월 26일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의 매각·인수를 통해 사업 부문 ‘빅딜’을 단행했다. 한화그룹이 매입한 삼성의 4개 계열사는 석유화학 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산 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다. 계약 규모는 시장가격으로 1조9000억 원대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향후 경영 성과에 따라 가격이 조정될 수 있어 전체 빅딜 규모는 2조 원 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핵심은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두 곳이다. 한화그룹의 인수 주체는 (주)한화와 한화케미칼·한화에너지다.

먼저 (주)한화는 삼성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테크윈 지분 전량(32.4%)을 인수한다. 현재 삼성테크윈의 대주주는 지분 25.46%를 보유한 삼성전자다. 이 밖에 삼성물산이 4.28%, 삼성증권 1.95%, 삼성생명 0.60%, 삼성SDI가 0.12% 등을 가지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은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가 지분 57.6%를 인수한다. 삼성종합화학은 비상장사다. 삼성 계열사들 및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 주주는 삼성물산으로 지분율 37.28%다. 이 밖에 삼성테크윈이 22.73%, 삼성SDI가 13.09%, 삼성전기 9.04%, 삼성전자 5.29%, 삼성정밀화학 3.06%, 제일기획이 0.2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또 이건희 회장이 0.29%, 이부진 사장이 4.9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는 삼성물산의 지분 18.5%를 제외한 나머지 18.78%를 사들인다. 또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중 삼성테크윈을 사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는 지분(22.73%)과 자사주(2.78%)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부를 매입함으로써 경영권(총 81%)을 확보한다.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과 종합화학 인수를 통해 자회사 2곳의 경영권도 넘겨받는다. 삼성테크윈은 삼성탈레스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 삼성종합화학은 삼성토탈의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또한 삼성테크윈이 보유하고 있는 KAI 지분 10%도 한화그룹이 넘겨받는다.


한진그룹 제치고 재계 9위로
한화그룹은 이 딜을 통해 ‘그룹 외형 확대’와 함께 ‘극적인 사업 구조 재편’을 해냈다. 한화는 재계 10위(자산 기준)에서 9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자산 규모 37조 원인 한화그룹은 자산 가치가 13조 원에 달하는 4개사를 한꺼번에 인수함에 따라 한진그룹(39조 원)을 넘어선 50조 원의 자산 규모를 이뤘다. 또 제조·금융이라는 ‘투톱 시스템’이던 한화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제조업이 핵심이 되고 금융이 이를 뒷받침하는 ‘원톱 시스템’으로 환골탈태하며 ‘선택과 집중’을 강화했다.

이번 딜의 시작은 한화 측의 제안이 먼저였다는 게 ‘정설’이다. 한화 측에서 방산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에 테크윈 인수를 제안했고 삼성이 여기에 화학 부문을 더해 ‘패키지 딜’을 다시 제안했다는 스토리다. 한화와 삼성 모두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는 ‘팩트’에 가깝다.
[SPECIAL REPORT] 한화의 M&A 본능…화학·방산 강자로 ‘빅 점프’
그러면 왜 한화그룹은 이 딜을 제안했을까. 한화그룹은 수년 전부터 제조업 중심의 사업 재편을 추진해 왔다. 한화는 2012년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통해 2020년까지 주요 사업 부문에서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2년 신년사를 통해 “각 계열사는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기업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해 나가길 바란다”며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냉철한 잣대로 평가하고 원점에서부터 사업 구조를 합리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한화그룹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되게 두 가지를 추진해 왔다. 하나는 태양광 및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투자다. 또 다른 하나는 비주력 사업에 대한 과감한 정리다.

이미 한화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양광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한화케미칼이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면 한화솔라원이 셀·모듈·웨이퍼 등을 제조하고 한화큐셀은 여기에 발전설비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일본·미국 등지에서 태양광발전 사업까지 겸하고 있다.

화학 부문에 대한 투자는 한화케미칼이 지난 8월 13일 KPX화인케미칼의 지분 51%를 420억 원에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KPX화인케미칼은 가구·자동차·페인트·신발 등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 원료와 폴리염화비닐(플라스틱) 원료인 염소를 생산한다. 이 인수로 한화케미칼은 확실한 국내 최대의 염소 생산 기업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한화는 세계 최대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3월 12일 한화케미칼이 다우케미컬의 기초화학사업부 매각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기초화학사업부 중 염소 부문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우케미컬의 기초화학 부문 규모는 5조 원에 달한다.

반면 비주력 사업은 빠르게 정리 중이다. 한화는 지난 6월 제약사인 드림파마를 미국계 제약사인 알보젠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1945억 원 수준이다. 또 이에 앞서 한화L&C(현 한화첨단소재) 건자재사업부는 모건스탠리PE에 1413억 원에 매각했다. 이와 함께 한화그룹은 편의점 업체 씨스페이스(장부가 17억 원)와 포장지 제조회사인 한화폴리드리머(장부가 372억 원)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즉 한화가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4개 계열사를 인수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년 전부터 추진하던 ‘제조 중심의 그룹사 완성’이라는 장기적 플랜 아래 있는 것이다.


방산, 안정적 현금 창출…신용 개선 효과도
그럼 빅딜의 시초가 됐던 방산 사업의 확대는 한화에 어떤 의미일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화의 모태 사업이 ‘방위산업’이라는 점이다. 이를 대변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예는 1992년 ‘한국화약’이 ‘한화’로 이름을 바꿨다는 사실이다.

모태 사업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방위산업이 매우 안정적인 사업이라는 점이다. 현재 한화그룹의 주력사는 크게 세 개 회사다. 방위산업을 영위하는 사업 회사이자 그룹 지주회사인 (주)한화, 기초화학 제품 및 태양광 원료를 제조하는 석유화학 회사 한화케미칼, 보험회사인 한화생명이다.

앞서 이야기한 제조업 중심의 그룹사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주)한화와 한화케미칼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주)한화와 한화케미칼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다. 2013년 말 기준 한화그룹은 총 38조5000억 원 매출에 95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 중 한화생명은 순이익 3551억 원을 기록했다. 아직도 순이익의 3분의 1 이상이 생명에서 나온다. 반면 (주)한화는 2247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특히 한화케미칼은 오히려 795억 원의 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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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케미칼은 사실 그룹 차원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전형적인 경기 산업이라는 점에서다. 현재 유가 하락, 세계 경기 침체 등으로 화학 산업이 전반적인 침체에 빠져 있다. 물론 금융 위기 전인 2006~2007년에서 보듯 경기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화학 사업은 엄청난 실적 상승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분명 올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미래의 일일 뿐 그전까지는 꾹 참으며 ‘버티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목한 게 (주)한화의 성장이다. (주)한화의 주력 사업인 방위산업은 독특한 사업이다. 전형적인 B2G(Business to Government) 사업이다. 정부를 대상으로 하기에 각종 ‘보안 사항’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첫 진입은 어렵지만 한 번 거래를 트면 꾸준히 이어 갈 수 있다. 2014년 한국의 방위력 개선비는 연구·개발비를 포함해 12조8000억 원이었다. 매년 이 정도의 ‘업계 매출’은 계속 나온다는 뜻이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방위산업은 매출 안정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용 등급 등 재무적 차원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 회사의 영속성을 정부가 보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각종 채권 발행 등 향후 자금 확충 시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즉 (주)한화가 삼성의 방산 부문을 인수하게 되면 매출 확대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의 신용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현재 (주)한화는 자회사 한화건설에 대한 리스크가 약간 있다. 또 한화케미칼도 경기 악화가 지속되면 불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화는 계열사의 사업 악화로 발생할 수 있는 신용 경색 등을 (주)한화의 방산 확대로 무난히 넘어설 수 있게 됐다.

사업적 측면에서도 (주)한화는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스텔스 전투기 F-35 등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방산 업체다. 국내 방산 업계 4위권이던 한화는 이번 발표로 지난해 기준 매출액 2조6000억 원 규모의 국내 1위이자 세계 선두권 방위산업체가 됐다.

방산 업계 관계자들은 각 사업의 결합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를 지목한다. 한화는 다연장 로켓포인 ‘천무’로 대표되는 유도 무기와 탄약 전문 업체였다. 삼성테크윈은 국산 명품 무기 K-9 자주포로 대표되는 육상 무기의 선두 주자다. 또한 FA-50 엔진을 제작하며 쌓은 항공 산업의 노하우도 있다. 삼성탈레스는 레이더와 해양 시스템을 집중 연구해 온 방산 업체다. 이 모든 회사가 결합하면서 한화는 육해공에서 거의 모든 무기 체계를 다루게 됐다. 특히 삼성테크윈이 가지고 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매출 1조3450억 원)의 지분 10%까지 얻게 됐다. 완성 항공기는 방위산업의 ‘총아’다.


화학 사업, ‘규모의 경제’ 확보
그러면 애초에 방산 중심의 딜에서 화학 부문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딜’로 확대된 계기는 뭘까. 한화의 입장에서만 보면 방산만 인수하게 되면 삼성테크윈이 가진 삼성종합화학 지분이 ‘계륵’이 된다. 경영권을 가질 수도 없는 경쟁 화학 회사의 지분을 ‘쓸데없이’ 많이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한화는 이 부문의 처리를 삼성에 요청할 테고 당연히 삼성도 이를 고민할 필요가 생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화는 다우케미컬의 사업 부문 인수를 타진할 정도로 화학업 확대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화학은 전형적인 ‘경기 산업’이기도 하지만 ‘장치산업’이기도 하다. 장치산업의 특징은 ‘규모의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화학 제품의 가격은 어느 회사든 엇비슷하게 받는다.

반면 이미 들어선 설비는 꾸준히 운용해야 한다. 한 번 장치를 멈추면 다시 돌리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출처만 확실하다면 회사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화그룹(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품에 안으면 화학 부문의 매출 규모는 단번에 18조 원으로 점프한다. 삼성종합화학은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고순도테레프탈산(PTA)을 생산하는 업체다. 지난해 2조364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토탈은 2003년 삼성종합화학과 프랑스의 토탈그룹이 50 대 50의 비율로 합작해 설립된 회사다. 국내에서 넷째로 큰 100만 톤 규모의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이 밖에 PE, PP 등의 합성수지와 항공유·휘발유·액화석유가스(LPG) 등의 석유제품을 생산한다. 삼성토탈은 지난해 7조8691억 원의 매출과 영업이익 5496억 원을 기록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 인수로)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 규모가 세계 9위 수준인 291만 톤으로 증대돼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며 “또 나프타 대량 구매를 통한 원가 경쟁력 제고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 측면에서도 한화그룹은 기존 에틸렌 일변도의 제품군에서 탈피, 폴리프로필렌·파라자일렌·스티렌모노머뿐만 아니라 경유·항공유 등 에너지 제품 등으로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매출이 18조 원으로 늘어나면 국내 최대 수준의 화학 기업이 된다. LG화학(2013년 매출 21조 원)이 글로벌 화학 기업 중 5위권이므로 단번에 한화도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것이다.

특히 삼성토탈이 하는 경유·항공유 등 정유 사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유 사업은 진입이 힘들다. 삼성토탈도 기존 정유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의 견제로 석유협회(주유소 운영 기업의 협회)에 가입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이미 한화는 외환위기 전에 정유 사업을 했다. 한화는 삼성토탈을 사들임으로써 15년 만에 정유 사업에 다시 진입하게 됐다. 기존 정유사들도 이를 견제할 논리가 빈약해진다는 의미다.

이번 딜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가장 큰 것은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걸림돌’이 없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은 주요 사업 영역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다. 삼성과 한화는 그동안 드러난 협력 관계는 없지만 갈등도 전혀 없었다. 양측 계열사 간의 거래는 삼성테크윈과 (주)한화가 무기류 부품을 상호 공급하는 연 300억 원 수준의 거래가 전부였다. 누가 성장하더라도 상대방의 파이는 건드리지 않는 좋은 딜이다.


‘김승연 회장의 경영 복귀’ 임박했나
물론 한화는 앞서 말한 ‘명분(제조업 기반의 그룹사)’과 ‘실리(안정적 방산 확대 및 화학 부문 규모의 경제 확보)’를 얻었다. 여기 한 가지 더해 ‘지배 구조의 강화’라는 보이지 않는 과실까지 얻었다. 한화는 이 딜을 통해 김승연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한 대의 확보는 물론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 중심의 후계 구도까지 강화한 것이다.

충청도 기반의 한화는 언뜻 보면 ‘의리 있고 투박해 보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화는 수많은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한 ‘실리적이고 스마트한 기업’이다. 사실 현재 (주)한화를 제외한 모든 회사들이 모두 M&A를 통해 한화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이는 모두 김승연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번 ‘빅딜’ 이전 김 회장이 추진한 가장 유명한 딜은 ‘한화케미칼 인수’다. 1981년 다우케미컬은 제2차 오일쇼크로 세계 석유화학 경기가 위축되자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컬의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한화그룹은 한국플라스틱공업을 인수해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고 있던 터라 한양화학 인수가 필요했지만 석유화학 경기의 불황으로 인수를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김승연 회장이 나섰다. 석유화학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던 김 회장은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컬을 동시에 인수하는 선택을 했다. 이후 이 회사들은 1980년 당시 7300억 원에 불과하던 한화그룹의 매출을 4년 새 2조1500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화생명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당시 누적 손실 2조3000만 원에 달하던 한화생명은 6년 만인 2008년에 이를 완전 해소하고 한화그룹의 ‘캐시카우’가 됐다. 이 밖에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리조트(1985년)·한화타임월드(2000년)·한화63시티(2002년)·한화손해보험(2008년)·한화큐셀(2012년) 등도 모두 김승연 회장이 M&A를 통해 손에 넣은 회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화가 그룹의 미래를 걸고 한 2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딜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승부사’ 김승연 회장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한화 내에서 ‘좌금춘수·우김연배’로 불리는 김 회장의 최측근들이 그룹 내 핵심 보직으로 돌아왔다. 금춘수 전 한화차이나 사장은 지난 11월 11일 그룹 경영기획실장에 임명됐다. 또 그에 앞선 9월에는 그룹 비상경영위원회를 이끌던 김연배 부회장이 한화생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김 회장의 경영 복귀에 더 힘이 실리는 것은 11월 25일 법원으로부터 받은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이행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 3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형을 확정 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지난 6월 중순부터 서울 시내 한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해 3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모두 이행했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이 이뤄진다면 대표이사로 전격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번 딜의 주역은 아무래도 현재 그룹 리더인 김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일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과 김 실장이 하버드대 동문이자 평소 막역한 관계였다는 사실에서다. 눈여겨볼 사실은 삼성의 4개 회사 인수는 김 실장을 비롯한 2세들의 경영 승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한경비즈니스 978호 스폐셜 리포트 ‘두 마리 토끼 잡기’참조).

한화그룹에서 제조업 부문의 성장은 한화S&C라는 비상장사의 성장과 직결된다. 이 회사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실장이 지분 50%를, 두 동생인 동원·동선 형제가 나머지 50%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특히 한화S&C는 삼성종합화학 인수에 참가할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이 회사는 현재 한화에너지 외에도 한컴·휴먼파워의 최대 주주이며 (주)한화·한화손해보험·한화큐셀코리아의 주요 주주다. 삼성종합화학 인수를 마치면 한화에너지의 기업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는 (주)한화의 기업 가치가 커져도 한화S&C의 가치는 불어난다. 삼성과 한화, 한화와 삼성이 이룬 빅딜이 보이는 것 이상의 위력을 지닌 이유다.



한화그룹, ‘실탄 마련’ 어떻게
핵심 계열사 매년 3000억 수익… 비주력사 매각 가능성도
이번 딜에서 관심을 모으는 포인트는 최대 2조 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을 한화그룹이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한화그룹 측은 이에 대해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안에 인수 가격을 정산한 후 거래를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인수 대금 분납으로 재무적 부담도 줄였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대금 지급은 (주)한화·한화케미칼·한화에너지 3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기반으로 삼성테크윈 인수금은 (주)한화가 2년에 걸쳐 나눠 내고 삼성종합화학 인수금은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가 공동으로 3년에 걸쳐 나눠 지불한다.

현재 (주)한화·한화케미칼·한화에너지 등 3개 회사가 보유한 현금 총계는 3000억 원에 이르고 매년 3사가 창출하는 이익은 2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주)한화·한화케미칼이 매년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 1000억 원을 더하면 실탄은 크게 부족한 편이 아니라고 한화그룹 측은 설명했다.

한화그룹은 인수에 필요한 현금이 부족할 때는 보유 자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현재 업계에서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회사는 한화생명·한화투자증권·한화호텔앤리조트·한화갤러리아 등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한화생명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한화생명은 현재 한화그룹의 이익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물론 지분 일부 매각 및 교환 등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 계열사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은 현재 강력한 구조조정 중에 있다. 즉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기 위한 작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수 후보군으로는 KB금융지주나 새마을금고 등이 거론된다. 물론 한화생명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이는 말 그대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고 관측된다.

한화호텔앤리조트나 한화갤러리아는 제조나 금융 등 타 사업과의 시너지가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울 플라자호텔 등을 가지고 있는 한화호텔앤리조트의 가치는 8000억 원 수준까지 평가되고 있다. 갤러리아 역시 ‘청담·압구정 명품족의 본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잠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