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형제들 각각 분리 경영…유통·반도체 부품이 ‘주력’

12월 18일 제일모직의 상장으로 1년 넘게 계속된 삼성의 지배 구조 변화가 클라이맥스에 돌입했다. 삼성의 지배 구조 변화에는 경제·사회·정치적으로 다양한 역학 관계가 작용한다. 한국 최대 그룹사의 경쟁력 강화라는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3세들로의 후계 구도 안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범보광그룹 오너들’, 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외삼촌들’이 일정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삼성과 보광은 주식 지분 같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또 앞서 ‘범보광’이라고 명기한 것에서 보듯이 보광의 주력 계열사들은 모두 각각의 오너들이 ‘분리 경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과 보광의 오너들은 ‘물보다 진한 피’로 엮여 있다. 특히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아직 병석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후계자들, 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등은 어머니 홍라희 리움 관장과 더 깊고 다양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 관장의 동생들은 모두 보광그룹의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사업적으로 봐도 보광그룹의 일부 계열사는 ‘삼성의 후광’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결국 ‘삼성의 미래’를 예상해 보고자 한다면 현재 빠른 속도로 추진 중인 지배 구조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 ‘어떤 변수’가 될 수 있는 보광그룹의 구조를 한번쯤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 개편의 ‘조용한 변수’ 보광 뜯어보기
따로 또 같이 운영하는 시스템
실제로 지난 5월 10일 이 회장이 입원하자 보광그룹 계열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당시 보광그룹의 상장사는 휘닉스홀딩스(지난 11월 경영권 매각)·STS반도체·휘닉스소재·코아로직·BGF리테일 등이었다. 휘닉스홀딩스 주가는 지난 4월 말 3000원 초반에 머물렀으나 5월 21일 4600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50% 가까운 상승률이다. 또 5월 9일 종가 기준 2080원이던 STS반도체의 주당 가격은 5월 22일 장중 한때 30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휘닉스소재와 코아로직 역시 보광그룹주라는 이유로 같은 기간 급등세를 탔다.

보광그룹은 운영 시스템이 독특한 그룹사다.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주의 2세 가운데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뺀 형제 세 명이 각각의 사업을 맡아 사실상 독립 경영한다. 그룹 전체 공동 행사도 없고 조직 관계도 사실상 없다. 그룹 전체 매출액도 집계하지 않는다. 철저한 독립 경영 체제다. 보광그룹 관계자는 “2002년 지분 조정을 끝내고 업종별로 독립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광그룹은 2남 홍석조 회장이 유통을, 3남 홍석준 회장이 금융을, 4남 홍석규 회장이 레저 및 반도체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07년 검사 출신인 홍석조 회장과 삼성SDI 부사장 출신인 홍석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이런 역할 분담이 완료됐다. 장남 홍석현 회장은 일찌감치 계열 분리한 중앙일보를 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광그룹’으로 불리는 것은 오너들이 혈연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형제들이 자신의 사업 영역에서 보광이라는 이름을 지우고자 한다면 ‘친족 분리’를 해야 하는 데 이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형제 경영’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설립자인 고 홍진기 회장부터 돌아봐야 한다. 보광그룹 창업주 홍진기 회장은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였다. 그래서 삼성 소유였던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회장을 지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장과 홍 회장은 사돈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과 홍진기 회장의 맏딸 홍라희 리움 관장이 혼인한 것이다.


이병철의 사돈 홍진기가 창업주
보광그룹은 홍진기 회장이 1983년 중앙일보 회장으로 있으면서 20억 원을 투자해 설립한 TV브라운관 부품 제조사인 (주)보광을 모태로 한다. 이후에도 (주)보광은 보광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주)보광은 1989년 훼미리마트를 설립해 편의점 사업에 진출했다. 훼미리마트는 이후 보광훼미리마트로 법인이 분리된 후 2012년 BGF리테일로 이름을 바꿨다.

보광그룹이 크게 도약한 것은 1995년이다. 강원도 평창에 콘도미니엄·유스호스텔·스키장·골프장 등을 갖춘 대형 레저 단지인 휘닉스파크를 건설하며 레저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1996년에는 광고 회사인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1998년에는 상품권 회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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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보광그룹은 1999년 삼성에서 계열 분리로 독립하게 된다. 당시 중앙일보 계열 5개 회사와 보광 계열 4개 회사가 분리됐다. 보광이 보유한 삼성코닝 주식 37%를 삼성그룹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독립이 이뤄졌다. 계열 분리 후 보광그룹은 여러 전자 부품 회사를 인수하며 독자 경영에 나섰다. 2002년 11월 STS반도체통신을, 2005년 위테크와 에이원테크 등을 인수했다.

2006년에는 보광그룹과 중앙일보가 다시 분리됐다. 보광그룹 계열사 44개가 중앙일보로부터 계열 분리되면서 지금의 보광그룹 경영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중앙일보를 맡고 동생들이 보광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보광그룹은 또 한 번 덩치를 키웠다. 2007년 코아로직, 2011년 이미지센서 전문 기업 클레어픽셀 등을 계열사에 편입했다. 2012년 3월 이차전지 활물질 전문 업체 포스코ESM을 포스코와 합작으로 설립했다.

보광그룹은 여러 계열사를 가지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는 두 곳으로 보면 된다. 하나는 4남 홍석규 회장이 이끄는 STS반도체고 다른 하나는 2남 홍석조 회장이 이끄는 BGF리테일(옛 보광훼미리마트)이다.

홍석규 회장은 일찌감치 보광그룹의 ‘대표자’ 역할을 해왔다. 홍석규 회장은 1998년부터 (주)보광 대표이사 사장으로 그룹을 이끌다가 2004년 회장에 올랐다. 4형제 중 막내인 홍석규 회장은 1995년 보광 총괄전무를 맡으며 형들보다 먼저 경영 일선에 나섰다. 홍석규 회장은 보광 지분 28.75%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현재 (주)보광은 홍석조 회장, 홍석준 회장, 홍라영 리움 부관장 등 세 남매가 나머지 지분을 각각 23.75%씩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홍라영 리움 부관장은 홍진기 회장 일가의 막내딸이다.

하지만 홍석규 회장이 이끄는 보광그룹 계열사의 경영 실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2013년 말 기준 (주)보광·보광제주·휘닉스소재·휘닉스개발투자·한국문화진흥 등 계열사 대부분이 수년째 손실만 내는 중이다. 계열사 중 유일하게 휘닉스리조트만 2013년 말 순이익 7686만 원을 냈다.

그렇다 보니 지주사 (주)보광의 재무구조는 악화 일로다. 순손실 규모는 2011년 138억 원, 2012년 98억 원, 지난해 196억 원으로 증가 추세다. 손실액이 누적되자 차입금과 이자비용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주)보광은 지난해 9월 저축은행 11곳에서 금리 7.5%로 400억 원 정도를 빌렸다. 만기는 2018년 9월이다. 시중은행에서도 금리 5.2%에 850억 원을 장기 차입했다. 앞으로 4년 안에 1200억 원 정도를 갚아야 한다.

결국 보광그룹을 이끌고 있는 홍석규 회장은 최근 계열사 지분을 매각했다. 홍 회장은 지난 11월 17일 휘닉스홀딩스(옛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경영권을 약 750억 원에 YG엔터테인먼트에 넘겼다. 휘닉스홀딩스는 3년 연속 순손실 20억~30억 원을 기록한 회사다.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룹 내에서 매출이 가장 큰 STS반도체의 실적이 턴어라운드하고 있다는 점이다. STS반도체는 삼성전자로부터 분사한 반도체 후공정 업체다. 2010년 이후로 2012년까지 매년 2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내 왔다. 하지만 2013년에는 132억 원에 달하는 영업 적자를 냈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급 반도체의 패키징을 직접 하게 되면서 수주 물량이 확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됐다. 1분기 46억 원, 2분기 137억 원, 3분기 131억 원이다. 4분기도 큰 변화가 없는 영업이익 흑자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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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남 홍석조 회장이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비교적 무난한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BGF리테일은 편의점 업계 1위 CU를 운영하며 8200여 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BGF리테일은 보광그룹과 일본 훼미리마트가 합작해 설립됐다. 일본 훼미리마트가 국내 편의점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며 자금 회수를 위해 올해 5월 19일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상장 당시 홍석조 회장이 34.9%, 홍석현 회장이 9.2%, 홍라영 리움 부관장이 7.5%,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이 5%를 갖고 있었다. 홍석규 회장은 지분이 없다.


BGF리테일의 규모가 가장 커
BGF리테일의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8.0%와 19.0% 증가한 9112억 원과 440억 원을 기록했다.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 침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실적이다. 한 유통 업계 애널리스트는 “편의점업은 큰 성장성이 보이지는 않지만 1인 가구의 증가 등과 같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당분간 안정적인 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BGF리테일은 비교적 조용하게 3세 승계까지도 이뤄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완벽한 홍석조 회장 중심의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15일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아들 홍정국 상무는 이 회사 입사 1년 6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홍 상무는 올해 33세다. 홍 상무는 BGF리테일 주식 0.2%를 보유하고 있다. 또 경영 승계 작업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꼽히는 관계사 BGF캐시넷의 지분 8.56%도 소유하고 있다. BGF캐시넷은 편의점 CU의 금융 자동화 기기 설치 회사다.

특히 홍라영 부관장이 BGF리테일 지분을 대량 매각한 것도 홍석조 회장 중심 경영에 힘을 싣고 있다. 11월 25일 BGF리테일은 홍라영 부관장과 그의 남편 노철수 씨 등 특수 관계인 3명이 57만3830주(지분율 2.33%)를 시간외 매매로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홍 부관장은 26만 주를 매도해 주식이 159만8160주로 줄었고 노철수 씨는 갖고 있던 주식 12만9145주를 모두 팔아 치웠다.

이 밖에 BFG리테일 계열사인 BGF로지스팔탄 역시 보유 주식 18만4685주를 전량 매도했다. 홍 부관장 등은 이번 지분 매각분으로만 매각 차익 183억 원을 올리게 됐다.

홍라영 부관장 역시 사업체를 보유 중이다. 휘닉스벤딩서비스와 피와이언홀딩스다. 피와이언홀딩스는 홍라영 부관장 및 가족이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 수원, 기흥 공장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매출 477억 원을 올렸다. 또 휘닉스벤딩서비스는 삼성전자에서 일부 자판기 관리를 맞고 있다. 휘닉스벤딩서비스는 홍라영 부관장이 주식의 55%를, 홍석조 회장과 홍석준 회장이 각각 15%를 보유하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