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013호 (2015년 05월 06일)



‘차줌마’ 놀라게 한 로봇 셰프

기사입력 2015.04.28 오후 04:31

영국의 몰리 로보틱스의 로봇 셰프.

영국의 몰리 로보틱스의 로봇 셰프.


2015년 벽두부터 한국인의 마음을 뒤흔든 인물과 단어가 있다면 단연 ‘차줌마’가 꼽힐 것이다. 이는 모두 알다시피 손꼽히는 배우이자 모델로 알려져 있던 차승원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어난 음식 솜씨를 발휘하면서 나온 말이다.

굳이 ‘차줌마’가 아니더라도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인기는 나날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수놓는 게스트 구성만 봐도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는 신세대 셰프들이 늘고 있다. 이 밖에 캠핑 문화가 급속히 인기를 끌면서 아빠가 야외에서 선보이는 수많은 신종 요리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 성취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충실한 남자를 요구하는 시대, 그 상징으로서 ‘요리하는 남자’가 대두되는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사, 인공지능 로봇 시장의 핵심
그런데 왜 하필 요리일까. 사실 가사 노동의 전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요리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요리가 아니더라도 의식주 전반에 걸쳐 집안일은 엄청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리야말로 인간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가사 노동에서 가장 민감하고 창의성을 요구하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그런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 가사 노동 영역은 많은 부분에서 기계가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 예전에 수많은 주부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던 빨래와 다림질은 이제 세탁기나 스팀다리미가 거의 해결해 주고 있다. 청소도 이제 진공청소기에서 더 나아가 로봇 청소기가 돌아다니며 상당 부분 짐을 덜어주고 있다.

반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요리는 여전히 고도의 감각과 현란한 재주를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편리한 주방 기구나 조리 기구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도구만으로 요리가 저절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사전 조리된 인스턴트식품을 대충 데워 먹는 수준을 넘어서려고 할 때 요구되는 그 인간적인 노력과 창의성에 끌리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점수를 높게 주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긴 미래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 보자. 과연 이러한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수많은 감각과 손기술을 요구하는 기예는 반짝 인기를 끌더라도 광범위한 행태의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짧은 TV 프로그램 속에서 쓱쓱 붓과 나이프를 대더니 단숨에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던 밥 로스 씨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의 ‘참 쉽죠?’란 말이 아직도 광고 카피에 나올 정도로, 어떤 이에게는 쉬운 일도 많은 사람이 막상 해 보려면 안 되는 일은 많다. 요리는 그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고 하더라도 모든 이가 20~30분 내에 술술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정된 주말에 요리에 쏟을 시간을 다른 여가 생활에 할애하고 싶은 욕구도 클 것이다.

보다 다양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지만 매번 외식하기는 싫고 집에서 뭔가 그래도 내 노력이 더해지고 크게 부담이 안 되는 시도를 해 보고 싶은 수요는 항상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수요를 사로잡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귀결점은 어디일까. 아마도 그 종착점은 우리 주방 한구석에 보조 셰프를 하나 모시는 게 될 것이다. 다만 엄청난 인건비를 들여야 하는 사람 셰프가 아니라 로봇 셰프의 형태로 말이다.

이미 가사 도우미 로봇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인공지능 탑재 로봇 시장의 핵심 영역으로 주목 받고 있다. 여유만 되면 고단하고 귀찮은 가사 노동을 떠맡기는 가정부를 쓰고 싶어 하는 수요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늘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근무시간도 한정돼 있고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인간 가정부보다야 로봇 가정부가 훨씬 편하기도 하다. 당장은 청소·빨래와 같은 허드렛일부터 그 업무를 대신하겠지만 점점 음식 준비, 조리 쪽으로도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로 얼마 전 독일 하노버의 산업박람회에서 공개된 여러 가전제품 중에도 이런 차세대 조리 도우미 로봇이 선을 보였다. 영국의 몰리 로보틱스의 새로운 시제품 로봇 셰프는 조리대 위에 붙어 있는 2개의 팔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20개의 모터, 24개의 관절, 129개의 센서가 달려 있어 조리대 주변의 음식 재료들을 집어 올려 레인지 및 그 위의 냄비·프라이팬 등에 척척 올려놓고 기본적인 조리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조리가 완료되면 이를 접시에 담아 사람이 식탁으로 가져갈 수 있게 준비해 준다. 조리가 끝나면 사용한 그릇 등을 옆 싱크대로 옮겨 설거지 준비를 마쳐 놓는 것도 하고 말이다.


로봇과 역할 나눠 음식 만들 수도
처음 보면 이 우스꽝스러운 로봇이 뭘 할 수 있을까 의심부터 가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로봇이 수행하는 작업은 명망 있는 스타 셰프들의 손놀림과 조리 순서를 그대로 학습한 것이다. 이번 시제품은 한국판으로도 만들어진 인기 프로그램 ‘마스터셰프’에서 2011년 우승한 팀 앤더슨이 참여했다고 한다. 아직은 움직임이 느리고 가능한 요리도 많지 않지만 몇 년 뒤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로 스타 셰프들의 갖가지 레시피와 손놀림을 학습한 뒤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현란한 조리 기술은 물론 재치 있는 입담과 쇼맨십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제이미 올리버 패키지가 탑재되면 수다 떠는 로봇의 조리 장면만 지켜봐도 절로 흥겨워질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각종 TV 채널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아쉬운 점은 현장의 맛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TV 화면 속에서 여러 게스트들은 셰프들이 만든 맛난 음식들을 먹으면서 놀라움과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 표정 속에서 맛을 짐작하며 침을 삼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런 프로그램이 녹화를 하면서 셰프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캡처, 학습해 방송과 함께 이를 배포한다면 어떨까. 관심 있는 시청자들은 즉시 그 내용을 우리 주방 속 로봇 셰프에 집어넣어 동시에 뚝딱뚝딱 요리를 해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게스트가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 경험도 가능해진다.

로봇 셰프가 요리를 다 해서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기우다. 이 정도가 되면 아예 요리 과정의 역할을 다양하게 쪼갤 수도 있을 것이다. 급한 평일에는 전자동 모드로 로봇 셰프가 음식을 다 준비하지만 여유 있는 주말에는 아버지가 재료 손질이나 볶음 부분을, 로봇 셰프가 나머지 튀김이나 간 맞추기, 플레이팅 등을 떠맡는 식으로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 없는 부분은 로봇에 맡겨 평균 이상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도 자신이 조리 과정에 참여했다는 뿌듯함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상상을 엮어 보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가전 회사는 로봇 셰프를 팔고 광고 모델 고용하듯 스타 셰프들과 제휴해 그들의 움직임을 학습시킨 모듈을 부가로 비싼 값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요리 채널들은 방송 광고 수입 이외에도 매 방송에서 조리하는 모션을 담은 학습 데이터와 거기에 맞게 준비된 식재료 판매 수익도 거둘 수 있다. 각종 문화센터의 쿠킹 클래스를 대신하는 수많은 자기 학습용 로봇 셰프 활용 소프트웨어도 등장할 수 있다. 아니면 유명 레스토랑들은 샘플 요리 데이터를 하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나머지는 직접 와서 먹어 보라고 마케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가까운 미래에 학습이 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연동해 기능을 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가사 도우미 로봇이 등장하면 우리의 생활 풍경도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은 분명하다. 혹자는 인간미가 줄어든다고 불평할지 모르겠지만 미래 세대는 금세 그런 환경에 적응해 또 다른 생활양식을 창조해 낼 것이고 말이다. 과연 우리는 깊은 추억이 박혀 있는 그런 가정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가치와 비즈니스를 만들어 갈 준비가 돼 있을까. 아직 미약한 시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로봇 셰프에서 그런 기회를 엿보고 부단한 준비를 해 가는 개척자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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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5-04-28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