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013호 (2015년 05월 06일)

기금 규모 ‘눈덩이’…낡은 운용 체계 ‘한계’

국민연금이 올해 500조 원을 돌파한다. 1988년 출범 이후 국민 불신으로 가입자 확보에 애를 쓰던 과거를 뒤로하고 가입자 2000만 명 이상의 ‘국민 노후 자금’으로 자리 잡았다. 공적연금의 후발 주자로 출발해 28년 만에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올라섰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괜찮은 걸까. 화려한 외형에 웃을 수만은 없다는 결론이다. 앞서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연금제도 개편으로 현재 구조에 안착한 국민연금은 이제 기금 운용 부문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세대 간 ‘부양’을 통해 유지된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인구구조가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흐르고 있다. 연금 수령 인구가 늘어나고 평균수명 증가로 지급 기간이 늘어나는 반면 아래쪽에서 돈을 내는 인구는 줄어들면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난다. 연금 체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금 규모 ‘눈덩이’…낡은 운용 체계 ‘한계’

17년 전 지배 구조 그대로
사실상 미래는 이미 예견돼 있다. 국민연금 장기 재정 추계에 따르면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2043년을 정점으로 기금은 성장을 멈추고 계속 쪼그라들어 2060년엔 완전히 고갈된다. 이 수치는 낙관적인 가정 하에 계산된 것으로, 기금 고갈 시기가 10년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금 고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더 내고 덜 받는’, 즉 보험료를 높이고 수령액은 낮추는 구조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2007년 저항을 뚫고 보험료를 조정한 바 있고 2028년이면 소득대체율(생애 전 기간 평균 소득과 대비한 연금 수령액 비중)이 40%까지 떨어진다. ‘용돈 연금’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수술대 위에 올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2018년 장기 재정 추계 때까지는 손댈 수 없다. 지금 시급한 연금 개혁은 제도가 아닌 ‘운용’의 영역, 즉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지배 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진다.

국민연금은 크게 제도와 운용의 두 축으로 운영된다. 기금 운용을 잘해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만으로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기금 수익률을 1% 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고갈을 9년 연장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이다. 국민연금 규모의 위상은 세계 3위이지만 투자수익률로 보면 주요 연·기금 중 최하위권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수익률은 5.25%다. 장기 재정 추계 기대 수익률인 6.26%에도 1% 포인트 이상 부족하다. 캐나다국민연금(CPP)과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같은 기간 각각 16.5%, 14.5%의 수익률을 올렸다. 현재 기금 운용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도에 비해 운용은 그간 ‘성역’처럼 여겨진 게 사실이다. 특히 운용 부문의 지배 구조는 1998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한 번도 개혁하지 못했다. 기금 규모는 1998년 5300억 원에서 10년 사이 4배 이상 급등해 지난해 말 470조 원에 육박했지만 지배 구조는 17년 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지배 구조가 안정적이면 오래돼도 상관없다. 문제는 현 체계가 다소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운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먼저 500조 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집단인 ‘기금운용본부’가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공단 내에 한 부문으로 존재한다. 5500여 명의 국민연금공단에 비하면 200여 명의 작은 규모다. 실제로 운용하는 운용역은 160명으로 모두 계약직이다. 보수 체계 등에서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기금 규모가 작을 때는 인력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1인당 굴리는 돈이 약 2조~3조 원에 달한다. 웬만한 개별 중형 자산 운용사나 자문사와 같은 수준이다. 공단 내 한 부문으로 머무르기엔 너무 비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늘어나는 해외투자에 대응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그러나 인사나 예산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 격인 기금운용본부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기금운용본부장은 500조 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최고책임자이지만 연금공단 내 여러 이사 중 한 명일 뿐이다. 국민연금법 31조에 따라 기금운용본부장이 갖는 역할과 책임이 있지만 전권이 없는 본부장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이사장 경력이 금융 혹은 복지 분야로 갈리는데, 금융인 출신이 오면 본부장 역할은 더욱 축소된다”며 “보건복지부의 눈치도 많이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 홀대로 이직 잦아
그나마 현재 있는 운용역들도 이직이 잦다. 그중 가장 자주 바뀌는 자리가 기금운용본부장이다. 2년 임기에 1년씩 연장이 가능한 직책인데,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임을 통해 3년을 채운 사람이 없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연임도 어렵고 잘못 투자하면 비난만 받기 때문에 적절히 성과를 내 이직하는 데 관심을 가질 뿐 적극적인 운용에 나서지 않는다”며 “전문가를 소홀히 대해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공적연금의 ‘풍부한 유동성’과 ‘장기 투자’의 장기를 살려야 하지만 장기 투자를 하기에는 인력 면에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캐나다는 국민연금과 규모가 비슷한데 운용역은 1000명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며 “미국의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는 341명, 네덜란드 ABP는 별도 운영사인 APG를 통해 560명으로 운영하며 해외 뉴욕 지사에만 100명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연금은 런던과 뉴욕에 각각 4명, 5명의 인력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연락 사무소’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신 교수는 “그 결과가 바로 수익률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성 측면에서 더 우려되는 부분은 최상위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공단과 별개 조직으로, 기금 운용에 관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기구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고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4명의 위촉직 의원을 비롯해 총 20명이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각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성’을 강조한 구성이다. 대표성에 치중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또한 정부의 영향력을 받을 수 있는 구성으로, 정치적 입김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기금 규모 ‘눈덩이’…낡은 운용 체계 ‘한계’

실제 회의에선 어떨까.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자칫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처지인 위원들이 나올 수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기금운용위원회 한 관계자는 “자산 운용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아 한 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용어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상태에서 설명을 몇 번 듣는다고 해서 다 알 수는 없다”며 “다른 안건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 많은데, 위원들도 뭔가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정도로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박 2일간 릴레이 회의를 여는 캘퍼스와 달리 1년에 4~5번 열리는 회의는 단 2시간 만에 끝나고 회의 전 모임은 회의 내용을 조율하기 위한 ‘사전 설명회’ 정도에 그친다. 회의가 수동적인 수준에서 안건을 심의하는 정도로 끝이 나다 보니 주요 의사 결정을 주도하거나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지적이 계속되자 기금운용위원회는 하위 조직으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실무평가위원회’를 뒀다. 그러나 이 또한 장관급 대신 차관급으로 대체할 뿐 거의 비슷한 인적 구성으로 운영된다. 전문성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로 실무평가위원회에서 검토된 안건을 기금운용위원회로 올리지만 똑같은 과정이 재현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회의에서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못한다. 일례로 해외투자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산투자 효과와 같이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 한쪽에서 강한 주장을 펴면 토론 없이 그릇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게다가 회의 참석에 아무런 제재가 없다 보니 이마저도 결석하는 위원이 많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는 정부 부처 관계자 3명과 노동계 위원 3명을 비롯해 6명이 결석했다.

현 지배 구조를 간략히 정리하면, 실무는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하고 인사 등 권한은 기금운용본부장이 아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있는데,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수장은 복지부 장관이다.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음표가 생긴다.


적립기에 해당…적극적 자산 운용 필요
물론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을 수익률과 전문성 차원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의 5% 수준이 해외에 비해 낮을 뿐 지나치게 낮아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배 구조 이슈가 중요한 것은 수익률보다 국제 금융시장 환경과 급증하는 국민연금 기금 규모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박상수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 기금이 100조 원이 넘을 때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직무유기일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무를 수 없고 해외에 본격적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20년 전 만들어진 틀에서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데서 개편의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성장 곡선에서 지금은 기금이 급격히 커지는 적립기에 해당한다. 운용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전제로 할 때 지금부터 2043년까지는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산 배분은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소진기의 전략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원종규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30년 정도 생명을 가지고 장기 투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며 다른 펀드가 하지 못하는 기획 투자, 즉 대체 투자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 유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과 지배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격변기의 국민연금은 그에 맞는 새 틀을 짜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덜 지우기 위한 현 세대의 피할 수 없는 ‘책무’이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이미 ‘갑 중의 갑’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7%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더 커질 전망이다. 이해관계 집단이나 정치적 영향력에서 독립성을 가진 구조로의 개편 의견도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국내 시장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투자 다변화와 해외투자 확대는 필요한 과정이다.

기금 운용을 둘러싸고 시각에 따라 각계각층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기금 운용의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올해 500조 원을 시작으로 매년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나갈 국민연금 기금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개편 논의가 보험료 조정, 즉 일반 국민의 월급통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제도 개혁이 아니라는 점에서 연금 개혁이 얼마나 이슈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국민 호소문’까지 등장한 공무원 연금 개혁에 묻힐 우려도 있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큰 손’이 돼 버린 국민연금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할지 모르는 상황을 ‘눈 뜬 장님’처럼 쳐다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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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5-04-28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