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013호 (2015년 05월 06일)



“‘좋아요’ 누르다가 술 한잔하며 만났죠”

기사입력 2015.04.28 오후 04:31

‘정식당’ 임정식(왼쪽) 오너 셰프와 ‘월향’ 이여영 대표.

‘정식당’ 임정식(왼쪽) 오너 셰프와 ‘월향’ 이여영 대표.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선 ‘품절남·품절녀 대열에 합류’란 일상적인 표현을 훌쩍 뛰어넘는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는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모던하게 탈바꿈시킨 ‘월향’의 이여영 대표, 신랑은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 2스타를 받은 ‘정식당’ 임정식 오너 셰프다. 이 커플의 결혼은 음식 업계를 이끄는 젊은 유망주의 결합으로 ‘음식 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낼 융합 사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편에선 ‘핵심 역량의 인수·합병’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한 날 청담동 정식당에서 임·이 신혼부부를 만났다.


언론사 나와 술집 차린 ‘이 대표’
두 사람 모두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서른넷의 새댁은 찢어진 청바지에 카키색 재킷을 걸쳤고 서른일곱의 새신랑은 챙이 달린 벙거지 스타일의 갈색 모자에 흰색 가운을 입었다. 이 대표는 살짝 격식을 갖춘 모양새, 임 셰프는 격식의 파괴를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둘 다 거침없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이 사람 얼굴, 저도 보기 힘들어요.” 새댁의 말이다. 새신랑은 아무런 답 없이 가늘게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만 살짝 들어올린다.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복한 투정에 행복한 반응이다. 가정을 꾸민 부부란 느낌보다는 한참 열애 중인 커플의 모습을 닮았다. 뉴욕을 분주하게 오가는 임 셰프. 그래서 서울에 있는 동안은 ‘껌딱지’처럼 둘이 하나로 붙어 다닌다.

3월 초에는 청담동 정식당이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열 손가락 안(10위)에 꼽히는 경사까지 겹쳐 더 바빴다.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은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의 아시아 버전이다. 2013년 처음 발표돼 올해가 세 번째인데 2014년에는 정식당이 한국 식당으로는 유일하게 20위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란 수식어가 달린 뉴욕의 정식당을 제쳐 두더라도 국제적인 레스토랑 평가에서 2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 중심에 남편 임 셰프가 있다.

부인 이 대표는 서울대 바이오소재공학과를 졸업해 한 언론사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어느 날 박차고 나와 술집(?)을 차렸다. 유기농 막걸리 바 ‘월향’인데 이를 시작으로 와인 포차 ‘문샤인’ 브랜드까지 확대해 현재 모두 7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그녀는 장사 잘하는 술집 여주인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통주의 가치를 높이고 와인의 접근성을 쉽게 풀어낸 비즈니스 감각으로 업계에서 촉망받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의외로 단순 명료했다.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요. 사귀기 전부터 ‘둘이 만나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는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누르다가 술 한잔하며 만나게 됐어요.” 이 대표의 답이다.


“‘좋아요’ 누르다가 술 한잔하며 만났죠”

“저는 요리사가 아니잖아요. 주방 식구들을 다루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 사람은 파인 다이닝의 오너잖아요. 비즈니스로 사업을 넓혀 나가는 게 부담스러운 부분이잖아요. 만나서 서로 고민을 털어놓다 보니 말이 통하고 답까지 얻을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친해졌어요.” 이 대표의 말이 이어진다.

“이 사람은 제가 자기를 꾀었다고 해요. 가끔 ‘축하한다,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나서’라고 놀리면서요.” 거침없는 이 대표의 말에 여전히 행복한 긍정의 미소만 보낸다. 주방 식구들을 지휘하는 셰프의 강한 카리스마나 정식당 음식의 섬세한 디테일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다. 영락없는 ‘색시 사랑 바보 신랑’의 흐뭇한 표정이다.


해병대서 요리 배운 ‘임 셰프’
임 셰프는 군대(해병대)에서 요리에 발을 들여놓은 늦깎이 요리사다. 서해 말도에 배치 받은 그는 취사병으로 일하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외가(외할아버지 곰탕집)와 친가(친할머니 국숫집)의 음식점 DNA가 뒤늦게 발현된 것이다. 제대 후 미국의 CIA요리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9년 신사동에 정식당을 오픈하기에 앞서 근처에 ‘안주’란 곳을 열었어요. 2년 동안 4억 원 정도 까먹고 문을 닫았어요. 정식당에서 번 돈이 고스란히 안주로 들어갔죠. 일찍 폐점을 결정했다면 2억 원의 손실로 끝낼 수 있었는데….” 임 셰프는 실패의 과거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망한 것에 대한 미련보다 폐점을 빨리 결정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모양이다. 4억 원이란 큰 손실은 봤지만 얻은 게 있다고 했다. ‘맛만 있다고 식당이 되는 게 아니다. 음식점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 외식을 하는 사람은 뚜렷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에 맞는 주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식당의 주제는 정찬을 하고 싶거나 기념일에 찾고 싶은 곳입니다.” 말 수가 적은 사람인가 싶었더니 입을 여니 요점만 콕콕 짚어 잘 말한다.

두 사람이 한식과 전통주를 기본 테마로 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일반 한식은 많지만 한국에 없던 한식의 장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첫째고요, 둘째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선배들이 ‘한국엔 재료가 없다, 환경이 안 된다’는 등 불평을 많이 하는 걸 들었는데, 한국의 기존 재료로도 충분히 새로운 것, 고급스러운 것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임 셰프의 답이다.

이 대표는 기자 시절 막걸리 양조장을 취재하면서 막걸리에서 미래형 완전식품의 가능성을 봤다. 생맥주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성인용 스포츠 음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걸 나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철 좋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한식 요리에 가볍게 술 한잔할 수 있는 한국식 주점을 구상한 거죠.”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다. “사람이 제일 어렵죠. 정식당도 월향도 멤버 구성과 팀워크가 참 좋은 편인데도 사람이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잘 갖추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돌리는 거잖아요.” 두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문제의식이나 명분 없이는 장사를 하지 말란다. 음식 장사를 하는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 또는 본질 없이는 생존 자체가 힘들다는 것. 물론 대한민국에 밥집·술집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허니문은 두바이를 거쳐 아프리카 세이셸공화국·홍콩·방콕을 경유하며 열흘간 미식 투어를 했다. 둘의 일이자 취미가 먹고 마시는 것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정인 셈이다. 각국 최고의 레스토랑과 길거리 음식들을 섭렵하며 앞으로 함께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답을 얻었다. ‘한국 외식업의 미래는 해외 진출에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너무 비슷하다. 산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창의적이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땐 다른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장인’과 ‘마케터’라는 캐릭터다. 국내 외식 업계 최고의 두 캐릭터가 몸과 마음으로 뭉친 임·이 커플. 이 부부가 앞으로 국내외 외식 시장에서 풀어갈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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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5-04-28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