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1038호 (2015년 10월 22일)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기사입력 2015.10.19 오후 04:46

독일 폭스바겐의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사건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조작 장치를 부착한 폭스바겐자동차 1100만 대에 이어 아우디 210만 대와 스코다 120만 대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8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의 존망이 위태롭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폭스바겐 사태로 혜택을 보는 기업도 있다. 예를 들면 전기자동차 업계와 이의 핵심 부품인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사람들이 전기자동차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하나의 사건이 업계의 흐름을 바꿔 놓기도 한다.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OB맥주 제친 하이트의 히든카드
오늘날 정보기술(IT)과 데이터기술(DT)은 급속히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IT와 DT로 대체되기 쉬운 사업 영역을 가진 관련 업계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금융 업계다. 요즘 TV 광고를 보면 대세 중의 하나가 지불 결제 서비스 광고다. 사업자 간에 서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천문학적 광고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이 서비스를 시행하는 회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존에 금융업을 하던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IT 기업도 있고 통신 서비스 기업도 있고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과 재작년 두 해 동안 국내에서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이 200개 이상 설립됐다. 그런데 이 역시 금융업과 무관한 업종에서 출범한 기업이 수적으로 압도적이다. 이처럼 기술의 변화는 산업 간의 경계를 파괴하고 또한 업계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하면 떠오르는 곳은 애플·구글·페이스북·아마존닷컴 등이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다른 기업들이 미국을 대표했다.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제너럴모터스(GM)·IBM과 같은 회사들이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어느 기업이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잘 대응했느냐다. 이와 같이 기업에 영향을 주고 기업의 생존도 좌우할 수 있는 세상의 흐름이나 변화를 ‘트렌드’라고 통칭한다. 트렌드는 어떤 특정 사건에 의해 생길 수 있고 기술적인 변화와 같은 큰 움직임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이 트렌드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한국의 맥주 업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늘 앞서 나가던 선두 주자가 만년 후발 주자에게 일등을 빼앗긴 사건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일본 맥주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기린맥주가 시장점유율 4위에 불과하던 아사히맥주에 일등 자리를 내줬다. 10여 년이 흘러 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만년 2등이던 하이트맥주가 선두 기업인 OB맥주를 제쳤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뒤바뀐 기업의 순위는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트렌드를 기업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들어 육류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톡 쏘는 맛의 맥주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한국은 1990년대 들어 크고 작은 환경 파괴 사건이 발생하면서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아사히맥주는 ‘슈퍼드라이’라는 공법으로, 하이트맥주는 ‘100% 천연 암반수’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트렌드의 변화를 적극 수용해 성공적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단명으로 끝난 ‘하얀 국물 라면’ 열풍
그런데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그 어느 기업이나 관심을 기울이면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은 이에 대응하고 어떤 기업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기업이 트렌드의 변화에 대응하기가 말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가 트렌드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트렌드는 여러 종류로 나뉜다. 폭스바겐의 사건처럼 특정 상황에 의해 사람들이 어떤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일부 계층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발생시키는 변화의 요인을 ‘마이크로 트렌드(micro trend)’라고 말한다. 일종의 트렌드를 만드는 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과자나 주류 등에 달달한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마이크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 트렌드 현상이 3~5년 이상 지속되면 ‘매크로 트렌드(macro trend)’라고 한다. 매크로 트렌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수준의 트렌드를 지칭한다. 이런 경향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메가 트렌드(mega trend)’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10여 년간 국내에서 아웃도어 열풍이 지속됐다. 이는 메가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나아가 자연 생태계의 변화처럼 큰 영향을 주는 변화를 ‘메타 트렌드(meta trend)’라고 지칭한다. 이렇게 트렌드를 구분하는 것은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개념적인 구분이다. 실제적으로 ‘이것은 매크로 트렌드, 저것은 메가 트렌드’라고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트렌드는 산업의 특성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다.

여하튼 트렌드는 이렇게 개념적으로 발달해 가는데, 기업이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대목은 마이크로 트렌드와 매크로 트렌드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 매크로 트렌드 이상이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런데 이슈는 마이크로 트렌드에서 매크로 트렌드로 가지 못하고 급속하게 사라질 때 많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용어상 트렌드라고 하지 않고 ‘패드(fad)’라고 한다. 몇 해 전 국내에서 하얀 국물 라면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요즘 하얀 국물 라면의 인기는 거의 사라진 듯하다. 이를 패드라고 할 수 있다.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트렌드 분석에 정답은 없다
패드를 매크로 트렌드 이상으로 인식해 크게 투자했다면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트렌드로 갈 수 있는 것을 패드로 인식해 투자를 주저한다면 기회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맥주 시장에서 톡 쏘는 맛을 원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기린맥주는 패드로 인식했다. 반면 아사히맥주는 이를 트렌드로 판단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슈퍼드라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달달한 맛 열풍에 여러 회사들이 제각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지만 트렌드 분석 차원에서 지켜볼 만한 전략적인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트렌드 분석이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이른바 ‘역트렌드(counter trend)’ 또는 ‘트렌드 패러독스(trend paradox)’ 현상이다. 이는 어떤 트렌드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거나 또는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IT·DT의 발달에 따라 세상의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것을 강조하는 슬로 라이프 트렌드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 빈티지·복고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컨버전스와 함께 디버전스도 일어난다. 이때 기업은 어느 한 방향만 정해 가기가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차별화를 하지 못해 치열한 레드오션에만 머무를 수 있고 고객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소비 형태를 일컫는 ‘조각보형 소비(patch-work consumption)’와 연관이 있다. 조각보형 소비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 소재의 천 조각들을 모아 만든 조각보처럼 소비자들의 매우 다양한 소비 형태를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면 가격·브랜드·사용 패턴 등을 기존의 습관과 상관없이 구매하고 사용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정장에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다든지, 허름한 식당에서 5000원짜리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그보다 훨씬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이러한 소비 형태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파편화된 소비 형태의 증가는 기존처럼 소비자를 성별·나이·경제력 등으로 구분해 니즈를 발견하는 방법의 효용성을 점점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라디오 사용자가 5억 명을 돌파하는 데는 약 38년이 걸렸고 TV는 13년이 소요됐다. 하지만 인터넷은 불과 4년이 걸렸고 소셜 미디어를 대표하는 페이스북은 1년, 트위터는 불과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의 동시적 확산과 함께 소셜 미디어 내에서 개성 표현 노력 등이 조각보형 소비 형태를 더욱 부채질한다. 소셜 미디어는 향후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도 매우 비중 있는 매개 수단으로 다뤄지고 있다.

트렌드 데이터 마이닝은 특히 소셜 미디어와 같은 온라인상의 방대한 텍스트를 분석해 기업의 차별화된 전략 개발에 사용하는 솔루션이다.

어느 식품회사에서 신제품 개발 차원에서 건강이라는 카테고리를 정해 수개월간의 인터넷 블로그 4500만 건의 텍스트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건강에 대한 키워드를 연령층별로 10개씩 도출했다. 이 중에서 모든 연령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건강과 관련해 꾸준하게 등장하는 키워드는 ‘감기’였다. 다시 감기와 관련한 식품을 분석하면 여러 개의 식품과 음료가 키워드로 등장하는데 이 중 ‘배즙’이 감기와 가장 깊은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이 식품회사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배즙을 활용한 건강식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립할 수 있었다.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패드나 상반되는 트렌드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노력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고려하는 것은 테일러링 모델(tailoring model) 방식이다. 이 방식은 사전에 고객의 니즈를 분석, 사업자들이 다양한 상품 옵션을 구성해 놓고 고객들이 이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애플의 앱스토어 모델을 들 수 있다. 앱스토어에는 방대한 양의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앱)이 공급돼 있다. 소비자들은 앱스토어에 올라와 있는 콘텐츠와 앱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동일한 기기라고 하더라도 이용하는 콘텐츠와 앱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고객들은 자신만의 맞춤화된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생산 업체는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수용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제조 부문을 아웃소싱하는 조립식 사업 모델이 활성화되고 있다. 즉 브랜드와 고객 관계, 연구·개발(R&D)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내재화하고 제조는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산 설비를 유지하는 부담 없이 신속하게 시장에 반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중국 스마트폰 생산 업체인 샤오미의 성공 배경도 마찬가지다. 제조나 생산에 역점을 두기보다 ‘미펀’과 같은 열광적인 고객 집단과 ‘쿠완방’, ‘수이쇼파이’와 같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로부터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주 단위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이 밖에 아예 트렌드의 변화를 둔감하게 인식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물론 자신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전제돼야 한다. 이를테면 기업 트렌드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고유한 전통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 약국에서 시작된 화장품 업체 키엘(Kiehl)은 링거 병과 같은 화장품 용기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트렌드를 만드는 트렌드 세터가 되는 방법도 있다.

당장은 인기를 얻지 못해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믿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또한 후발 주자가 되는 방법도 있다. 시장이 성숙되기 전에 무리하게 진입하기보다 선발 주자의 상황을 분석하고 시장이 무르익었을 때 공격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기업의 전략을 개발할 때 트렌드를 분석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고 일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과 세상이 흐르는 방향과 같다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개인들의 행동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도 보다 다양한 기법들이 요구된다. 최근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곳이 많은 것과 플레이스에서의 스트리트 와칭(street watching) 방식의 증가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하지만 트렌드를 아무리 잘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경쟁자가 더 대응을 잘한다면 그 의미는 반감된다. 이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달달한 과자’, 트렌드일까 패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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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5-10-23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