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성균관대 교수
한미일 삼각 협력의 약한 고리 ‘한일 관계’
한미일 삼각관계는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두 개의 강력한 양자 동맹에 기초하지만 한일 간 연대는 약한 특징을 갖고 있다. 관계론에 따르면 두 개의 양자 관계로 구성된 삼자관계는 공통의 친구가 있으면 강한 유대로 발전해 궁극적으로 세 개의 강한 양자 관계로 발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악화 일로에 있는 한일 관계는 강한 연대로 발전하려는 논리를 부정한다.
과거사 갈등 못지않게 중국이라는 강력한 이웃은 한일 양국을 더 벌어지게 하고 있어 한미일 삼각 협력의 폭은 제한적이다. 올해 동아시아연구원·시카고외교협회·겐론NPO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통해 한미일 삼국의 협력을 가늠해 본다.
한미일 삼각 협력의 약한 고리 ‘한일 관계’
미국엔 우호적, 서로엔 냉랭
정부 간 관계 못지않게 한미일 삼각관계에 대한 여론도 여전히 두 개의 분리적 양자 관계가 우세함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71%, 일본인의 69%가 대미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답을 합치면 한국인의 98%, 일본인의 84%라는 압도적 다수가 미국이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한국인은 34%(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50%),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일본인은 32%(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42%)로, 미국이 매우 중요하다는 답의 절반도 안 된다(미국인은 일본에 대해 52%가, 한국에 대해 41%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고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답까지 합치면 각각 88%와 83%에 달한다).
‘세계 문제에 대해 책임감 있는 행동을 취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민의 87%와 81%는 미국이 그럴 것이라고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한국인의 48%만이, 일본인의 25%만이 상대국이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박하게 답했다.
한일 양국민은 중국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71%는 중국이 세계 문제를 책임감 있게 다룬다고 보는 반면 일본인은 1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0년 후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할 것’이라는 답변도 한국인은 80%로 일본인의 60%보다 컸다. 중국의 부상은 기회와 위협의 양면을 동시에 주고 있지만 무게중심이 한국에는 기회로, 일본에는 위협으로 보인다는 결과다. 이는 한국이 주로 경제 논리로 중국과의 관계를 대하는 데 비해 일본은 안보 논리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관계 향상에 필요한 것’을 묻자 한국인의 70%가 ‘중국과는 경제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정치·안보 관계 강화’를 답한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일본인은 일중 관계 향상을 위해 ‘글로벌 이슈 협력’ 21%, ‘경제 관계 강화’ 20%, ‘문화 및 인적 교류 강화’ 19%로 고르게 답한 가운데 ‘정치·안보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답이 22%로 가장 많았다.
일본에서도 경제적 실익을 우선하는 대중국관이 존재했지만 중국 위협론에 묻힌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일본은 안보 법제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면서 미국의 대중 억지력 신장에 기여하려고 한다.
한편 한국은 경제나 북한 문제로 중국과의 협력을 심화할 필요가 있는 만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확장하면서도 미국의 중국 억지 노력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한미일 삼각 협력을 안보 차원에서 운영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중국이 아닌 북한 문제에서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무대로 협력 시야 넓혀야
한일은 한국에서 군사정보 공유 협정 반대가 불거지자 미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을 체결해 대북 안보 협력을 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론은 미국의 일본 방위 지원에 우호적이지 않다.
미군을 파견하는데 찬성하는 비율이 북한의 남한 침공의 경우 91%로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일본 공격에는 불과 35%만이, 센카쿠열도에서의 일중 충돌에는 27%만이 찬성하고 있다. 한편 일본인의 71%는 북한이 자국 공격 시, 56%는 센카쿠열도 문제로 일중 충돌 시 미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의 남한 침공 시에도 57%가 미군 파견을 지지해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군 역할을 상대적으로 높게 보고 있다.
막상 미국인들은 자국 군대 파견 지지율이 북한의 일본 공격과 북한의 남한 침공에 각각 48%와 47%로 거의 같았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중 충돌은 33%로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사법제(유사시에 대비해 각종 법률을 미리 마련해 두는 제도) 통과 이후 일본은 자위대 활동 가능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방위상은 지난 10월 한일 국방장관 회의에서 “한국의 실효적 지배가 미치는 범위가 휴전선 이남이므로 헌법상 북한이 한국 영토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출 시 한국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실제로 북한이 일본을 공격한다면 유엔이 보장한 방위권 존중 차원에서 한국이 동의 절차를 빌미로 일본의 방위적 활동을 반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기 어려운 가상 시나리오를 가지고 헌법상 영토주권을 수호해야 할 한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이 굳이 북한 공격에 필요한 대응 규칙을 세우고자 한다면 공격 유형에 따라 한일 간 또는 한미일 삼국 간 군사 협의를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에 위협감을 느끼는 일본의 정서를 이해하고 합법적인 일본의 방위권을 존중해야 한다. 한미일 대북 공조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한일의 안보가 서로 밀접히 관련돼 있고 서로 도와야 더 안전해진다는 공감대의 확산이 필요하다.
한미일 삼각 협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밝은 분야는 민주주의, 보건, 환경, 개발·협력 등 제3국이나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이다.
세 나라가 공유하는 민주적 가치를 토대로 민주주의의 국제적 옹호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 우수한 보건 인력을 가진 삼국은 재난과 구호 활동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고 주요 탄소 배출국으로서 서로의 환경 친화 기술과 정책을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주요 원조국인 미일과 신흥 공여국인 한국은 개도국 지원을 위해 협력할 분야가 많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만 한미일 삼각 협력을 할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면 한미일 협력의 장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