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다운로드받은 후 흐뭇해하면 솔직히 말해 ‘구세대’에 가깝다. 디지털 콘텐츠 하나마다 일일이 돈을 주며 ‘소장’하던 시대가 저물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원 시장은 이미 스트리밍 서비스가 전체 디지털 음원 시장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해외에서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의 대박 신화를 비롯해 애플과 구글의 음원 시장 진출 등 스트리밍 시장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대접 받은 지 이미 오래다.

평소 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는 정원우(41·가명) 씨. 그의 컴퓨터 ‘뮤직’ 폴더 안에는 클래식에서부터 팝·가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한 노래 1500여 곡의 MP3 파일이 빼곡히 담겨 있다. 좋아하는 컬렉션을 따로 뽑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그의 취미. 그런데 요즘 들어 선물 받는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반응이 확연하게 갈리는 걸 느낀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 열광적인 데 비해 20대 후배들은 마음을 담은 선물에도 어째 분위기가 시원치 않다.

음원 선물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후배들의 사정은 얼마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한 달에 4000원 정도만 내면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가 널렸기 때문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원 유통 사이트에서 월정액 요금제에 가입한 후 인터넷 접속만 하면 원하는 음악을 무제한으로 듣고 있었다. LP·카세트테이프·CD를 거쳐 MP3 파일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소장’의 개념으로만 생각했던 정 씨에겐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음악 산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시장으로 급속히 재편됐다. 정 씨처럼 소장에 가치를 두는 사람도 여전히 많지만 이들도 더 이상 CD를 찾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나 마니아 층을 제외하곤 이미 ‘음악(노래)은 (데이터)파일’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동영상·음원 수익의 새 금맥 '스트리밍'
한물간 ‘다운로드’…지난해 매출 감소

한국의 음악 시장도 소수의 아날로그적 수요를 빼고는 2000년 이후 완전한 디지털로 전환됐다. 디지털 음악 산업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의 변방이 아닌 핵심 시장이다. 2013년 기준으로 국내 디지털 음원 시장의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선데 비해 실물 음반 시장은 8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디지털 음원 시장이 실물 시장을 넘어선 것은 이미 2004년부터다.

2008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은 음원 산업에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데이터 파일이라는 형식은 유지하되 이를 즐기는 소비 행태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말 축음기의 발명 이후 약 150년간 이어졌던 ‘소장’에 대한 가치관이 사라지며 등장한 것이 바로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다.

스트리밍의 사전적 의미는 무언가가 ‘흐른다’는 뜻이다. 기술적 의미의 스트리밍은 1995년 미국의 리얼네트워크가 처음 개발에 성공한 데이터 전송 기술을 말한다. 스트리밍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노래나 영화 같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파일을 하드디스크에 ‘다운로드’ 받아야만 했다. 다운로드는 데이터 전송 시간과 하드디스크의 용량 때문에 저장 자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스트리밍은 단어 그대로 일정량의 데이터를 적절히 흘려주는 기술이다. 파일 전체가 다운로드 되지 않더라도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 수신과 동시에 소리나 영상으로 변환된다. 수십 기가에 달하는 대용량 파일도 한꺼번에 받을 필요가 없다. 적정한 전송 속도만 갖춰지면 하드디스크 용량에도 부담이 없다.
동영상·음원 수익의 새 금맥 '스트리밍'
스트리밍 기술이 등장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소장에서 ‘이용’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음악 시장의 수입은 2014년 기준으로 60억9000만 달러에 달한다. 디지털 음원 시장이 전체 음악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6%로, 실물 음반 산업과 같다.

더욱 주목할 만한 통계는 디지털 음원 시장의 소비 행태 변화다. 전체 음악 산업 수익 중 다운로드가 차지하는 비율이 52%로 여전히 제일 높지만 스트리밍도 32%에 달한다. 특히 디지털 음원 판매 추세를 보면 트렌드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월정액 스트리밍과 광고 기반(광고를 보거나 듣는 대신 음악은 공짜로 듣는 서비스) 스트리밍 판매가 전년 대비 각각 39%, 38.6% 성장한데 비해 다운로드는 마이너스 8%에 그치며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벨소리나 컬러링 같은 모바일 개인화 서비스는 마이너스 17.9%로 아예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한국은 이미 스트리밍이 전체 디지털 음원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4년 기준 91%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진화 중이다. ‘라디오’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스트리밍은 골라 듣는 ‘선곡’ 개념보다 인기 차트를 틀어놓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재생 목록(셀렉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자기 취향을 파악해 들려주는 서비스, 즉 스트리밍 라디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론칭한 음원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 ‘비트(BEAT)’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 최초의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인 비트는 운동할 때, 사랑할 때, 잠잘 때, 휴식할 때를 비롯해 1990년대 가요 등 다양한 주제와 상황에 맞는 채널이 정리돼 있어 굳이 선곡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정용화·악동뮤지션 등 인기 스타가 진행하는 DJ 채널까지 마련한 비트는 서비스 개시 후 1년 반 만에 누적 회원 수 580만 명, 월간 청취자 180만 명을 기록하며 음원 유통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스트리밍의 시장의 확대는 디지털 음원 시장의 고질병 중 하나인 불법 복제, 즉 ‘불펌’을 해결할 대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굳이 다운로드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월정액이나 광고 등 합법적인 구독 수단을 통해 음원의 사본을 청취하는 형태다. 적극적인 취사선택을 강요하는 다운로드에 비해 소비자의 접근도 쉽기 때문에 음악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 역시 스트리밍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음원은 판도라, 동영상은 넷플릭스가 주도

세계 디지털 음원 업계는 이미 스트리밍 시장을 놓고 불꽃 튀는 혈전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스트리밍 업계 1위는 단연 판도라(Pandora)다.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판도라의 누적 가입자 수는 2억 명을 넘어섰고 액티브 유저도 7300만 명에 달한다. 스포티파이(Spotify, 2008년)와 디저(Deezer, 2007년) 역시 수천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광고 기반, 즉 광고를 보거나 들으면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다.

되는 시장에 유력 주자가 달려드는 것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공룡인 애플과 구글까지 모두 스트리밍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애플은 지난 6월 30일 전 세계 100여 개국을 대상으로 ‘애플뮤직’을 내놓았다. ‘아이튠즈’를 통해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시대를 풍미한 애플이 전략의 틀을 스트리밍으로 선회했다는 것을 뜻하는 사건이다.

구글은 애플뮤직 출시 1주일 전에 기존 ‘구글 플레이 뮤직’의 무료 버전을 선보였다.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한 광고 기반 무료 서비스다. 구글은 서비스를 개시하며 “뮤지션들에게 음원 저작권료를 지급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맞수인 애플을 겨냥한 홍보 전략이다. 애플뮤직은 “무료 이용 석 달간은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인기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이를 비난하자 애초 계획을 철회하며 빈축을 샀다.

국내에선 업계 1위인 멜론을 비롯해 지니, 벅스, 엠넷, 네이버뮤직, 소리바다, 삼성전자의 밀크, 비트 등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 중 밀크와 비트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다. 미국과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밀크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는 맞지만 광고 기반인 비트와 달리 스마트폰 제조사가 자사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로 출시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이에 비해 지난해 론칭한 비트는 해외에선 일반화돼 있는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다.

다운로드에 비해 스트리밍 서비스의 장점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나는 장르는 비디오, 즉 동영상이다. 노래 한 곡당 3~5메가바이트에 불과한 음원에 비해 영화 한 편은 수 기가바이트에 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웬만큼 빠른 속도의 전송 환경이 아니라면 영화 파일 전체를 다운로드받는 것보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시장 규모도 음원 시장 못지않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마켓앤드마켓이 지난해 7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은 2014년 130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한국 돈으로 15조 원이 넘는다. 2019년에 이르면 328억 달러(약 39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 확대의 바로미터는 ‘넷플릭스’의 성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한 달에 적게는 7.99달러만 내면 TV 프로그램 등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5700만 명이 넘는 유료 회원을 확보한 상태로, 내년 6월 한국에도 상륙할 예정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OTT(Over The Top)’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미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 강자인 지상파나 케이블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OTT는 다양한 동영상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국내에선 통신 3사가 주축이 된 IP TV를 통한 주문형 비디오(VOD) 시장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통신 3사와 4개 케이블 사업자(티브로드·CJ헬로비전·씨앤앰·현대HCN)의 VOD 수입은 2011년 1920억 원에서 2013년 4084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7개사의 가입자 수는 1510만 명에서 1984만 명으로 31.3% 늘었는데, 수입은 4배 이상 증가하며 VOD 시장의 성장세를 증명했다.

N스크린의 등장은 동영상 스트리밍 산업 성장의 새로운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N스크린은 TV·스마트폰·태블릿PC·콘솔 게임기 등 연결할 수 있는 디바이스가 무한대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에릭슨컨슈머랩의 ‘2015 TV와 미디어’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는 인터넷과 연결된 모바일 기기가 보조 TV에 우선해 사용될 전망이다. 그간 TV가 저녁 시간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보는 ‘캠프파이어’ 같은 역할을 했다면 이젠 자신만의 공간에서 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미디어를 시청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도 이어졌다.

국내 N스크린 시장은 기존 IP TV 사업자가 중심이 된 모바일 IP TV 서비스와 지상파 4사(EBS 포함), 케이블 TV, 네이버·다음 등 포털이 제공하는 서비스 등이 혼재돼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스틱형 OTT도 있다. 2013년 7월 구글이 내놓은 크롬캐스트가 대표적이다. USB 메모리 형태의 칩을 TV에 꽂으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에 접속해 검색한 동영상을 TV 화면으로도 볼 수 있다. 일반 TV를 스마트 TV로 바꿔 주는 기능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구글 크롬캐스트는 지난 5월 국내에도 출시됐는데 가격은 4만9900원이다. 구글은 CJ헬로비전·SK플래닛과 제휴, 국내 OTT 서비스인 티빙과 호핀을 지원하고 있다.

인터뷰

박수만 비트패킹컴퍼니 대표
“한국은 스트리밍 선진국…글로벌 버전 출시”
동영상·음원 수익의 새 금맥 '스트리밍'
2014년 3월, 국내서도 ‘광고 기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됐다. 포문을 연 ‘비트(BEAT)’는 출시 1년 8개월 만에 누적 회원 580만 명을 돌파했고 월간 청취자는 180만 명에 이른다. 박수만 비트패킹컴퍼니 대표는 비트 애플리케이션(앱) 출시 전부터 미투데이·밴드 등 유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개발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네이버 임원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로 나섰다.

“2006년 5월 미투데이 만들었고 2008년 12월 네이버가 인수했다. 그 후로 네이버에 출근해 2013년 3월까지 다니며 밴드를 론칭했다. 비트패킹컴퍼니는 2013년 4월 창업했고 비트 서비스를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해 3월이다. 미투데이를 해보니 서비스 하나를 만들면 7~8년 정도 일하게 되더라. 마침 밴드가 캠프모바일로 분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스타트업 창업으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90학번인데, 스타트업 쪽에선 나이가 많은 축이다.”

광고 기반 스트리밍 앱은 국내 최초다.

“돈 안 내고 광고 들으며 좋은 음악 들려주는 라디오 같은 서비스. 이게 비트다. 앞으로 인류가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 디바이스가 스마트폰일 텐데, 월정액 방식만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행히 네이버에서 일했던 이름값도 있고 비즈니스 모델로 좋은 평을 들어 2014년 7월부터 이후 알토스벤처스·LB인베스트먼트·IMM인베스트먼트 등 국내외 주요 투자 기관과 YG엔터테인먼트·미스틱엔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회사까지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액 규모는 170억 원 정도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주목한 이유는.

“음악 시장은 지금보다 더 커지고 네트워크 비용은 더 낮아질 것이다. 모바일 기기를 모든 인류가 들고 다닌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모든 사람이 영화나 책을 스마트폰으로 보지는 않겠지만 음악은 가능성이 충분하다. 스트리밍과 음악의 궁합이 딱 들어맞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은 일찍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스트리밍 선진국이다. 스포티파이가 처음 서비스 출시 당시 한국 사례를 팔고 다녔을 정도다. 월정액제 규모도 600만 명을 넘어섰다. 5000만 명 중 이들을 제외한 4400만 명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고객이 될 수 있다. 광고를 기반으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택한 이유다.”

광고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

“간혹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는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멜론·지니·벅스 같은 월정액 사업자보다 두 배 비싼 단가로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있다. 매달 나가는 음원비가 13억 원 정도다. 이에 비해 광고 매출은 아직 3억 원 수준이다. 현재 상태에선 아무리 잘해도 광고비가 7억~8억 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광고 기반 스트리밍의 경우 저작권료 책정 기준이 현재 기준(스트리밍 한 곡당 12원)보다 낮아져야 한다. 광고 등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많은 만큼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도 문턱을 낮춰 줘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오는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새로운 기준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해외 진출 상황도 궁금하다.

“올 4월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싱가포르·영국·아르헨티나·남아프리카공화국 등 7개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버전을 출시했다. K팝의 인기를 발판으로 빠르게 해당국의 로컬 음악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