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업 경영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세계경제의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내년에도 지속되면서 국내 경제도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성장 저하로 국내 성장률을 담보할 수 없는 가운데 내수의 버팀목 역할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편 소득 침체와 부동산 시장에 엮여 있는 과도한 가계 부채의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내외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기도 어렵다.

그룹 총수 복귀…투자 활성화 기대감
2015년 국내 제조업 경기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소비 심리 둔화와 중국 경기 회복 지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 결과 제조업 부문의 재고가 쌓이면서 경기순환 국면을 보여 주는 제조업 재고 출하 순환도가 2014년과 마찬가지로 둔화와 하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제조업 경기 부진 양상이 이어졌다. 2016년에도 국내 제조업 회복세는 미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 연구위원은 “2016년에도 국내 제조업은 여전히 높은 내수·외수 경기 불확실성으로 또 한 차례 어려운 한 해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회사의 지원으로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일명 ‘좀비 기업’은 2016년에도 화두가 될 전망이다. 과거에도 좀비 기업은 있었지만 최근 조선 업종 대기업의 부실화 문제, 한계 기업의 갑작스러운 증가 현상과 함께 구조조정 바람이 몰려 왔다. 한국은행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잠재 좀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자보상배율 3년 연속 100% 미만 한계 기업이 2014년 말 기준 무려 3295개(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15.2%)다. 김진우 IBK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좀비 기업의 시장 퇴출뿐만 아니라 경영 개선도 적극 유도하며 당근과 채찍을 같이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도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우량 기업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은 세계경제 불안 속에서도 확대가 예상된다. 해외 직접 투자를 통한 글로벌 시장 활동이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내 투자와 고용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기업은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으로 계속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해외 직접 투자는 2000년 초반까지 50억 달러 내외에 머무르다가 2006년 100억 달러에 이어 2007년 200억 달러를 돌파하는 신기록을 기록했다”며 “해외 직접 투자는 매년 200억 달러를 초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은 국내 기업의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자원 가격 약세로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조조정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2016년 재계 판도의 관전 포인트는 총수 복귀 대기업의 투자 활성화 기대감이다. 이윤구 연합인포맥스 산업증권부 기자는 “이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경제인 사면이 이뤄지며 최태원 SK 회장 등이 경영에 복귀해 대기업들의 투자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SK그룹은 향후 5년간 총 46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총수 부재를 아직 겪고 있는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이 복귀하면 과감한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업 지배 구조 관점에서는 재벌 기업들의 경영권과 소유권 상속이 과제로 남아 있다. 2015년 기업 지배 구조의 최대 화두였던 삼성과 롯데는 한국 사회에 기업 지배 구조나 기업 지배 구조 개선 펀드와 같은 단어들을 상기시켰다.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는 “롯데의 형제간 분쟁은 상속과 가업 승계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한국에서 유언장을 쓰고 죽는 사람이 단 1%도 되지 않아 롯데의 문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아직 현대차·한화·현대중공업·현대·효성 등 많은 그룹에서 지배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남아 있다.

‘경영권 남용 통제’ 논란 불거질 듯
2015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연구·개발(R&D) 투자 전망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R&D 투자 증가율이 떨어져 왔던 기업체의 R&D 투자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은 2011년 16.7%에서 2014년(잠정) 5.6%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2015년(계획) 6.8%를 기록할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은 7.2%, 중소기업은 6.6% 수준, 중견기업은 4.9% 수준으로 R&D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조사됐다. 배용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은 내수 및 수출 부진, 국외 경제의 불안 요인 등으로 기업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R&D 투자의 절대 규모 자체는 늘겠지만 그 증가율은 과거의 실적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2016년 기업 정책은 2015년에 이어 다이내믹한 논쟁을 지속할 전망이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2015년 기업 정책의 흐름을 ‘기업 경영권 남용의 통제’와 ‘기업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정책’의 혼재로 요약했다. 2016년에는 2015년에 제시된 이러한 정책들을 총체적으로 보며 양자를 어떻게 조화해 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016년에는 제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경영권 남용 통제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김정열 DW컨설팅 대표이사는 “한국 기업의 기본적인 구조조정과 성장을 위한 과감한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요청되고 있다”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적절한 인수·합병(M&A)의 활용”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좀비 기업’의 구조조정에는 ‘골든타임’이 있다며 이를 놓치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경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차이나 리스크의 대비책으로 중국 기업의 M&A와 지분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벤처기업은 불확실성에 빠진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분류되는 영역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는 “창업 벤처와 사내 벤처가 함께 활성화돼야 창조경제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벤처의 혁신을 대기업의 효율과 결합하는 전략으로 ‘창업 활성화’와 ‘사내 벤처 활성화’를 꼽고 이를 개방 플랫폼으로 대기업의 효율과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특허 전쟁의 불꽃은 ‘바이오 의약품’으로 전망된다. 김성기 특허법인 광장리앤고 대표변리사는 “21세기를 장식할 바이오 기술 개발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특허 전쟁의 무게가 의약 산업, 특히 바이오 의약품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 각국 바이오 의약품 기업들의 특허 관리 모델을 연구해 이제 막 열리고 있는 세계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한국의 영역을 만들고 굳혀 나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경영권 상속 ‘미완’…지배 구조 개편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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