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불안(Status Anxiety)’에서 불안은 신분과 지위에 대한 집착 즉, 속물주의와 사랑 결핍이 가져온 것이라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주고 달래주는 데 종교와 음악이 하나의 비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힘들고 괴롭다. 그래서일까? 과거에는 생소했던 불안장애 혹은 공황장애와 같은 질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현대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혼자 마음의 병을 끙끙 앓다가 다행히 이겨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극한의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 낳곤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 안도감, 만족감, 성취감보다는 자칫 불안과 공포, 조급함에 시달릴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웰빙이 되고, 힐링이 돼줄 음악을 소개한다.

일찍이 루이 암스트롱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을 멋지게 만드는 건 음악 그 자체다”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여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테마별 음반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Theme 1 행복한 마음을 갖고 싶을 때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케니 로긴스
‘Outside: from the Redwoods’
부드럽고 맑으면서도 파워풀한 음성의 소유자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가 캘리포니아 주 산타크루즈 근교의 레드우즈 숲속으로 그의 팬 1000여 명을 초대해 가진 콘서트 실황 음반. 일체의 인공적인 사운드가 가미되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자연적인 사운드의 향연으로 초대하는 앨범이다. 관객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이어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시작되는 첫 곡 ‘Conviction of the Heart’는 마치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 노예가 되지 말자고요. 얼른 자연으로 돌아갑시다. 가서 그 품에 안겨보자고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외 로긴스 앤 메시나로 활동했던 시절의 히트곡인 ‘You Mama Don’t Dance’부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던 동명 영화 주제가 ‘Footloose’, 두비 브라더스의 멤버였던 마이클 맥도날드와의 듀엣송 ‘What A Fool Believes’ 등 총 13곡이 수록됐다.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조수미
‘조수미 101(Most Beloved Crossover & Classical Hits of Sumi Jo)’
우리의 디바 조수미의 20년 예술 세계를 집약해 놓은 여섯 장짜리 스페셜 베스트 음반. 조수미 음악의 엑기스가 여기 다 모였다. 16세기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시대를 초월해 오페라에서 뮤지컬, 팝, 재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아우른 명곡들의 향연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노래가 특별한 것은 어떤 노래를 부르든지 완벽을 추구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는 황홀한 유혹이고, 가슴 떨리는 마법이다. 언젠가 조수미는 “삭막한 세상에 따뜻한 노래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라고 했다. 그런 따뜻한 노래를 들려주고,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조수미가 있다는 것 또한 신의 축복일 것이다.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대니 라이트
‘Remembering Christmas & Just Wright for Christmas’
50장이 넘는 독집을 발표하고, 7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자랑하는, 미국음반산업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베스트셀러 아티스트인 대니 라이트(Danny Wright)가 내놓은 두 종의 크리스마스 음반. 달라스 브라스 앙상블, 텍사스 소년 합창단이 가세한 ‘Remembering Christmas’는 기품 있는 클래식 스타일이고, 반면 부드러운 피아노에 바이올린과 오보에, 호른이 가미된 ‘Just Wright for Christmas’는 뉴에이지 풍으로 꾸몄다. 크리스마스 음반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도 남을 정도로 높은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는 이 음반은 대중성도 갖추고 있어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듯싶다.


Theme 2 낭만적인 상상에 젖고 싶을 때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김대진
‘존 필드: 녹턴 전곡집(John Field: The Complete Nocturnes)’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도 그만큼 행복을 보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실 좋은 음악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벗이고 애인이고, 가족 같은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중견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연주하는 ‘존 필드: 녹턴 전곡집’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행복을 품게 하고, 그리움을 갖게 한다. 정말 이 정도로 달콤하고 우아한 음악이라면 평생 곁에 두어도 좋을 듯싶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쇼팽 ‘녹턴’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단 한번만 들어도 왜 쇼팽이 그토록 이 작품을 사랑했었는지, 그리고 이 작품을 자기화시키게 됐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존 필드에게 경배를!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미리엄 알터
‘Cross Ways’
이전에 내놓은 두 장의 음반 ‘If’와 ‘Where Is There’로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던 벨기에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미리엄 알터(Myriam Alter)의 새 음반. 전작을 능가하는 서정성과 예술성. 거기에 흡인력까지 갖추고 있다. 일찍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면도칼에도 철학은 있다”고 했는데, 미리엄 얼터의 음악에는 정말 철학이 있고, 사색이 있고, 추억이 있으며, 간직하고 싶은 정서가 있다. 특정 장르로는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 과연 8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중독성 강한 네오 탱고 넘버 ‘Dancing with Tango’를 비롯해 ‘Don’t Worry’, ‘Above All’ 등 11곡이 수록됐다.

Theme 3 위안이 필요할 때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여러 아티스트
Across the Universe OST’
미국의 평론가 로버트 힐번은 좋은 음악은 삶의 근간이 되며, 버팀목이 돼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신념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에 대해서 노래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나 존 레논의 ‘Imagine’ 같은 명곡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틀스의 음악과 비틀스라는 밴드의 성격은 우리 삶의 배경이었다”라는 토니 블레어의 언급처럼 비틀스는 196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과 스타일,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40년이 훨씬 지났지만 비틀스의 영향력은 예전 그대로다. 그 비틀스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Across the Universe’는 비틀스 음악의 성찬이 펼쳐지는 작품. 설명이 필요 없는 비틀스의 클래식 33곡이 에반 레이첼 우드, 짐 스터게스 등 주연 배우들과 조 카커, 보노 등의 음성으로 담겨 있다.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케빈 컨
Return to Love: The Very Best of Kevin Kern’
문화영은 자신의 저서 ‘여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매일을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마무리하며 생을 즐겁고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게 하십시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만물을 바라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하나도 우주와 무관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중압감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면? 이제는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보자. 그럴 때 동반자가 돼줄 음반. 우아하고 여유로운 케빈 컨(Kevin Kern)의 음악 30곡을 담았다. ‘Return to Love’, ‘Le Jandin’ 등 수록된 곡들은 눈부시기만 하다. 더 이상 아늑할 수는 없겠다.
[Big story] 삶이 괴로울 땐 음악을 듣는다
소울엔진
'사랑하려 해'
10년 만에 컴백한 3인조 팝록 밴드 소울엔진의 1.5집. 이 음반은 한마디로 소울엔진의 음악 비망록이자 청춘 비망록이다. 즉, 자신들과 동시대를 산 청춘들이 누구나 느끼고 경험했을 법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들을 때론 담담히, 때론 힘 있게, 또 때론 여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첫 트랙 ‘사랑하려 해’가 다 끝나기 전에 깊은 감성에 젖게 되고, 수록된 6곡을 다 듣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이헌석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