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들의 신성장 동력 ‘세무 분야’
로펌의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되고 업무 범위도 전문화돼 가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다. 그만큼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고 있는 한편 사회 각계각층에서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 로펌 쪽에서 새 성장 동력으로 공을 들이는 분야는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세무 분야다. 정부가 세수 부족을 보전하기 위해 대기업이나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무조사 등 징세 행정을 강화하면서 조세 소송이나 조세 심판 등 관련 법률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자연스럽게 로펌의 일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등 법인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건수는 2010년 4430건, 2011년 4689건, 2012년 4549건으로 매년 4500여 건 안팎 수준이었는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5128건으로 크게 늘었다. 세무조사에 따른 부과 세액도 2012년 4조9377억여 원에서 2013년 6조6128억여 원으로 무려 34%나 증가했다. 고액 체납자에 대한 추적 조사 건수도 2012년 7565건에서 2013년 1만5638건으로 2.1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형 로펌들은 조세 전문가 확보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조세 부문은 국세청 공무원 출신 전문가 확보가 필수다. 조세 부문은 로펌의 여러 영역 중에서도 전문적인 분야다. 사실 단순한 세금 계산은 웬만큼 관련 지식이 있으면 일반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무조사 등에서는 국세청과의 ‘밀고 당기기’가 중요한 만큼 조세 공무원과의 네트워크가 필수다. ‘전관예우’가 강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세무 분야다.

30~50명 단위 팀 운영 중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5월 김은호 전 부산국세청장을 영입한데 이어 지난 8월에는 국제 조세 전문가인 박윤준 국세청 전 차장을 추가로 영입했다. 김앤장은 이들을 영입해 서영택 전 국세청장과 황재성 전 서울국세처장, 이주석 전 서울국세청장 등 기존 세무 전문가들과 함께 역량 있는 조세 고문단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율촌은 전통적으로 조세 분야에서 두드러진 로펌이다. 율촌은 지난 4월 기획재정부 세제실 재산소비세제국장 출신인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을 영입하는 등 조세팀 역량을 더 강화했다. 권 전 원장은 세제와 금융경제 정책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바른도 최근 조현관 전 서울국세청장과 윤영식 전 서울국세청 조사1과장을 잇따라 영입해 조세 자문 역량을 강화했다. 조 전 청장과 윤 전 과장은 세무조사 분야에서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다.

광장과 태평양 등 여타 법무법인들도 최근 조세 전문 변호사와 일선 세무서에서 잔뼈가 굵은 국세 행정 전문 세무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광장은 최근 3년간 20명이던 조세팀 인력을 대폭 확충해 50명으로 늘렸다. 특히 국제 조세 분야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7명의 외국 변호사를 두고 있다. 광장 관계자는 “조세 분야 자문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채용 규모를 늘리는 등 조세팀을 강화했다”며 “소송 대리 업무 외에도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세무조사 자문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8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변호사와 법무법인들이 2011년부터 할 수 없게 된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업무를 다시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로펌엔 호재다. 매년 세무조정계산서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대상자는 2013년을 기준으로 개인 사업자만 100만 명에 이르고 기업은 48만 개에 달해 관련 서비스 시장은 대략 1조 원대로 추산된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조세 분야는 단순 자문이나 소송뿐만 아니라 세무조정에서 조세 심판, 조세 소송까지 폭넓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이의신청과 심사 등 행정절차를 진행해 로펌엔 수임료 증대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세무는 결국 돈 문제다. 세무 대응뿐만 아니라 영역을 좀 더 확대해 가업 승계·상속 등을 포함해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 관리를 컨설팅해 주는 팀을 만드는 로펌도 늘어나고 있다. 기존에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 이런 서비스를 했지만 이제는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은 변호사들이 직접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은 세종이다. 세종의 자산관리팀은 2013년 정식 출범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이홍철 변호사가 팀을 이끌고 있다. 또 춘천지방법원장을 역임한 윤재윤 대표변호사도 자산관리팀의 일원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이 팀의 간사는 김현진 변호사가 맡고 있는데 그는 공인회계사로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인물이다. 이 팀에는 30여 명의 변호사·회계사·변리사·관세사·세무사 등 전문가들이 배치돼 있으며 인적 규모 면에서는 국내 최대다.

‘자산 관리’ 특화 로펌도 등장

업무 영역은 다양하다. 대자산가나 가족 기업의 상속·증여 계획 수립이나 유언장 작성 등의 업무는 물론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된 상속 재산의 일정 부분)이나 상속재산분할 등 상속 분쟁, 입양 및 파양, 기업·가업승계 자문,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성년후견제도 자문 및 소송, 세무조사 등 상속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앤장 역시 2013년 7월 상속 분야에서 상속 신탁, 지배 구조 및 가업 승계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모아 30여 명 규모의 상속·자산관리팀을 구성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김용상 변호사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한 최재혁 변호사를 필두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 조장 출신인 정병문 변호사와 기업 지배 구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현덕 변호사가 투입됐으며 회계사와 세무사까지 포진시켰다.

김앤장 상속·자산관리팀은 기업 경영권 및 가업 승계와 관련한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업을 공동으로 경영하는 부부의 이혼에 따른 1000억 원대 이혼 및 재산 분할 사건은 물론 수백억 원대 상속재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유류분 분쟁,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와 지주회사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분야를 아예 회사 차원에서 특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적극적인 곳은 충정이다. 충정은 지난 6월 ‘가문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삼성생명 패밀리오피스와 업무제휴협약(MOU)을 맺는 등 기업 경영권 및 가업 승계·관리 분야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도 하나은행과 업무 협력 관계를 맺어 관련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 가고 있다.

이 분야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가업 승계, 자산 관리 분야는 아직 우리 로펌들에는 생소한 분야로, 초기 단계 수준의 경험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정도”라며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가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로펌의 주요 먹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전 상속 플랜 등 상속에 미리 대비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주식 상속처럼 기업의 지배 구조가 바뀔 수 있는 법적 리스크가 큰 사건들이 빈번해지고 있어 관련 분야에서 로펌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