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15평 한옥서 월매출 2000만 원

[상권지도⑪ ] 낙원상가 뒤쪽 주목받는 복고 상권, '익선동'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낙후된 건물들에 둘러싸인 골목길은 한 사람도 지나다니기 힘들 만큼 좁다. 늘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종로3가와 인사동 바로 옆에 자리해 있지만 특유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 덕분에 익선동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네였다. 일부러라도 피해 가야 할 것 같은 이 골목에 최근 다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것도 복잡한 골목길을 헤매고 헤매, 수고스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 종로구 도심 한가운데, 오랫동안 뒤쪽에 숨어 있던 ‘낡은 동네’ 익선동의 재발견이다.

◆재개발에 묶여 '1920년대 풍경' 그대로 유지

‘익선동이 어디야?’ 요즘 뜨는 동네로 익선동이 언급되면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익선동은 동쪽엔 종묘, 서쪽엔 인사동, 남쪽엔 청계천, 북쪽엔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지로 번성해 온 종로, 그중에서도 한복판에 자리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익선동은 지하철 1, 3, 5호선 환승역인 종로3가역의 5호선 출입구가 바로 연결돼 있어 뛰어난 교통 편의성을 자랑한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지하철역별 승하차 인원’ 자료를 보면 2015년(1~10월) 기준으로 일평균 승하차 인원은 약 5만8211명(1호선 3만5091명, 3호선 9894명, 5호선 1만 3226명)이다. 종각역과 종로3가역 일대의 구도심과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의 주요 관광지와 근접해 있어 관광객들이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익선동이 지금까지 ‘낯선 동네’로 남아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익선동은 1920년대 이후 지금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의 개발되지 못한 채 옛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다시피 했던 곳이다. 익선동은 1920년대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택단지로 개발된 한옥지구였다. 19.5㎡(15평) 안팎의 한옥 100여 채가 좁은 골목에 따닥따닥 들어앉아 있다.
[상권지도⑪ ] 낙원상가 뒤쪽 주목받는 복고 상권, '익선동'
한때는 ‘종로를 주름 잡던’ 김두한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오진암’ 등 요정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기도 하다. 2004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땅값이 폭등하는 등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건물주들의 이해관계가 뒤얽히며 지난 10년간 개발이 전혀 진척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종로 일대가 모두 빌딩 숲으로 변하며 익선동을 한옥마을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종로 일대의 유명한 먹자골목 중 하나였던 ‘피맛골’ 등이 개발 과정에서 빌딩 숲으로 변한 데 따른 아쉬움이 반영된 것이다. 익선동은 종로 돈화문로에서부터 뻗어 나온 먹자골목 피맛골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지금은 구역 해체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익선동은 한옥마을이지만 애초 ‘상업지구’로 지정돼 있다는 것도 주목을 끄는 요소다. 서촌이나 북촌과 달리 한옥을 리모델링해 상업 시설로 활용하는 데 업종에 대한 제재가 없고 규제도 상대적으로 적다. 익선동을 ‘종로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익선동은 오랜 세월 재개발 사업이 묶여 있었던 덕분에 마치 ‘옛 풍경을 박제해 놓은 듯한’ 동네가 됐다. 서울시는 북촌·서촌 등의 한옥을 수선하는 데 1억 원대의 비용을 지원해 주는 한옥 보전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익선동은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한옥 밀집 지역으로 지정받지 못한 때문이다. 이곳엔 부서진 한옥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재개발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수리에 나서는 이도 없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은 골목 위로는 집집마다 뻗어있는 전깃줄이 얽히고설켜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 버려진 골목에 '젊은 활기' 불어넣는 모험적인 창업가들

이처럼 버려진 동네나 다름없던 익선동을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끄집어낸 이들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젊은 창업가들이었다.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반까지 카페 ‘식물’, ‘익선동121’, ‘익동다방’, ‘거북이슈퍼’ 등이 이곳에 잇달아 문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이곳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카페 식물은 패션 사진작가 루이스 박이 주인이다. 세 채의 한옥을 이어 카페 겸 바로 꾸몄다. 허름한 49.6㎡(15평) 한옥 가게에서 한 달에 2000만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곳도 있다.

박 대표는 “최근 구도시가 다시 각광 받고 있어 익선동에 가게를 오픈했다”고 소개했다. 그중 대부분은 나이 든 시인이나 작가 같은 예술인 단골손님들이다. 박 대표는 “개업 당시와 비교해 손님도 늘고 매출도 약 3배 정도 불어난 것을 보면 익선동이 점차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가게가 자리한 주소를 그대로 상호명으로 사용 한 ‘익선동121’은 부추된장비빔밥 등을 팔고 있는 동네 밥집이다. 출판사를 운영중인 조동욱 사장이 ‘동네 주민과 함께하는 식당’을 모토로 문을 열었다. 익선동121 관계자는 “종로와 가깝기 때문에 북촌에 갔다가 이곳을 들르는 사람이 많다”며 “지난 7월과 비교해 불과 몇 달 사이에 손님이 30~4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인근에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외국인 손님들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대략 손님의 10%가 외국인이다. 익선동 좁은 골목 끝에 있는 익동다방은 젊은 아티스트 박지현 씨가 박한아 대표와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다. 거북이슈퍼도 이 동네의 대표적인 ‘뉴 페이스’다. 옛날 동네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슈퍼마켓을 그대로 재현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은 1920년대 이후 지금까지 거의 개발되지 못한 채 방치돼 온 곳이다. 이 때문에 도심에서는 드물게 ‘옛 동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이 많아 프랜차이즈의 진출이 쉽지 않다는 것도 젊고 감각적인 창업가들에게는 매력 포인트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낙원상가나 탑골공원 등이 근처에 있는 데다 오래된 주택이 많아 노인층 유동인구가 많다”고 소개했다.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을 타깃으로 할 수 있는 상권이라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소셜 네트웍크 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익선동이 주목받으면서 골목마다 공사 중인 곳이 늘어났다. 새 단장을 마친 뒤 카페나 주점으로 탈바꿈하게 될 곳들이다. 노기종 송정부동산 소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버려진 빈집들이 넘치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공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상권지도⑪ ] 낙원상가 뒤쪽 주목받는 복고 상권, '익선동'
젊은 창업가들이 익선동을 택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익선동은 종로 등 구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저렴하게 가게를 오픈할 수 있는 서울시내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라며 “최근에는 SNS가 잘 발달돼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로변에 가게가 자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익선동은 골목이 좁아 차량이 지나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진출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서촌이나 북촌처럼 이른 시간 안에 상업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젊은 창업가들에게는 또 하나의 매력 요소다.

물론 서서히 유명세를 타면서 이 지역의 임대료 역시 상승 중이다. 이곳에서 가게로 이용할 수 있는 한옥은 66~99㎡(20~30평)대가 많이 거래된다. 올해 초 66㎡ 기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 임대료 130만~150만 원이었지만 현재 월 임대료는 150만 원 이상으로 뛰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10%가 오른 셈이다.

아직은 한옥을 카페 등으로 개조하려는 수요가 더 많기 때문에 권리금은 없다. 보통 한옥을 수리해 카페로 사용하려면 수리비가 5000만~6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성도컨설팅 천명수 대표는 “급속한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암묵적이긴 하지만 보통 임차는 5년 계약이고 2년마다 임대료를 조정하되 상승 폭을 10%까지 제한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상권지도⑪ ] 낙원상가 뒤쪽 주목받는 복고 상권, '익선동'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강여름, 이지연 인턴기자
빅 데이터 상권 분석 SK텔레콤 지오비전ㅣ사진 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