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의 종말, ‘빅 브러더 시대’ 온다
현대인은 지갑을 꺼낼 일이 많다. 신용카드나 사원증, 집 출입 카드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돈, 정확하게는 지폐를 사용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는 일은 드물다. 현찰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돈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효율적이면서 최악의 발명품이다. 예금도, 인터넷상의 전자화폐도, 동전과 지폐도 돈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강연에서 이 중 동전과 지폐의 종말을 예견했다. 그도 현찰과 현금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음지에 있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어 조세의 형평성이 높아진다. 우리 주위에 현금과 카드 가격 간에 차이가 있는 상점과 영화에서의 5만 원권으로 가득 찬 사과 박스도 현실에서 사라지게 된다. 불편한 점도 당연히 많다. 자본주의 시대에 현금 없이 살아본 적이 없는 인류가 현금 없는 삶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닥쳐 봐야 알 수 있다.

어쨌든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는 국가별 현금 사용에 따른 비용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0.1~1.1%, 가계 소득 대비 0.3~2.0%로 추정하고 있다.

화폐가 정말 사라지면 실물경제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수 있다. 금본위제는 폐지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금을 돈과 동일시한다. 그 누군가는 화폐의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을 금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과 같은 전자화폐의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삼성이나 애플의 진출로 경쟁이 격해지긴 하겠지만 경쟁은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변화들이 생길 전망이다.

우리 손에 쥐어지는 현금과 화폐가 없어지면 모든 돈거래는 인터넷상에서 진행된다. 자유라는 권리나 효용 뒤에 의무가 따르듯이 편이성이라는 효용 뒤에 감시라는 비용이 따른다. 현금의 종말은 본격적인 빅 브러더 시대를 의미한다. 빅 브러더의 핵심은 물론 정보기술(IT)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