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으로도 침해 불가…'내 몫' 찾기 줄소송

[상속의 기술] '딸들의 반란' 유류분이 대체 뭐길래
법조계에는 이혼보다 상속 소송이 더 살벌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상속 소송은 피를 나눈 부모형제 간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기도 한다.

이른바 가족 간 상속 전쟁에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유류분(遺留分)이다. 상속받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법정 상속인 몫으로 유보해 놓는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말한다. 유류분은 균등한 상속재산 분배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 반환 청구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4년 811건으로 5배가 넘게 늘어났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출가외인은 ‘옛말’

유류분 제도는 1977년 상속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제도인데, 장자 중심의 상속 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출가외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유산상속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딸들의 반란’이다.

2010년 벌어진 금강제화 남매의 상속 소송이 그 한 사례다. 금강제화의 창업자인 고 김동신 명예회장이 1000억원대에 이르는 재산의 대부분을 장남인 김성환 회장에게 물려주자 2남4녀 중 다섯째인 숙환 씨와 여섯째인 정환 씨 자매가 ‘유류분 중 일부인 15억원씩을 반환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사실 이 두 딸도 김 명예회장으로부터 현금 20억원, 부동산 15억원을 합쳐 각각 35억원씩 유산을 상속받았고 둘째인 장녀와 넷째인 차녀는 상속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딸이 팔을 걷어붙이고 소송에 나선 이유는 큰아들인 김 회장이 121억2100만원을 상속받은 것을 세무서의 상속세 통지문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 명예회장이 생전에 장남에게 874억1500만원, 차남에게 182억8400만원, 부인에게 39억5200만원을 각각 증여한 상황에서 두 딸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두 딸이 받아야 할 유류분은 약 75억7000만원씩이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 등이 유류분을 나눠 갖도록 돼 있다. 장남에게 상속재산의 일부를 몰아 줄 수 있지만 적어도 유류분만큼은 침해할 수 없다.

유류분 권리를 갖는 사람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아들·딸·손자·손녀)·배우자·직계존속·형제자매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분(상속인 n분의 1로 나누되 배우자에겐 50% 가산)의 2분의 1(1순위)이며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액의 3분의 1(2순위)이다. 1순위 상속인이 있으면 2순위 상속인은 유류분을 행사할 수 없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단순한 패턴을 말하자면 아들은 가업 승계라든지 그런 이유로 부모 근처에서 사는 이가 많고 딸들은 미국에 간다든지 남편을 따라 멀리 사는 이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일단 상속재산 정보가 차단돼 있고 실제 상속 과정에서도 제외될 때가 많아 딸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세법은 10년 이전에 이뤄진 사전 증여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유류분을 계산할 때는 이런 셈법이 통하지 않는다.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 게 바로 유류분 산정이다.
[상속의 기술] '딸들의 반란' 유류분이 대체 뭐길래
복잡한 셈법에 상속 갈등 늘어

2014년 8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건물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보수를 위해 인부들이 투입됐고 이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광경을 보게 된다.

사무실 붙박이장을 뜯어내다가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시가 65억 원 상당의 금괴 130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금괴에 눈이 멀어 절도했다가 추후 경찰에 이 사실이 발각돼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됐다.

이 금괴는 경기도의 한 사학재단 설립자인 박모 씨가 숨겨 놓은 것인데, 치매를 앓았던 그는 네 명의 부인과 7남1녀의 자식들에게 금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2003년 세상을 떠났다. 결국 10년이나 지나 발견된 금괴는 상속인들에게 새로운 유류분 분쟁의 불씨를 안기는 꼴이 됐다.

유류분 소송에도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다. 피상속자가 사망하기 1년 이전까지의 재산 증여와 지급분에 대해서만 유류분 소송이 가능한데, 이는 원래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이 넘어갔을 때이고 상속자 간 재산 이동에 대해서는 따로 한도 기간이 없다.

특히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는 유류분을 산정할 때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 남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유류분의 범위는 사실상 무한대다.

생전에 아버지가 아들과 딸에게 준 대학 입학 등록금, 차량 구입비, 아파트 분양 대금 등은 모두 상속인의 특별 수익이라고 부르며 생전 증여한 특별 수익 전부가 유류분 산정에서 전체 상속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우자를 먼저 보낸 자산가가 20년 전에 장남에게 아파트를 1억원에 사줬고 사망하면서 30억원의 상속재산을 남겼다고 하자. 형제가 3명이라면 상속재산은 30억원이고 유류분으로 따졌을 때 법정 상속재산의 2분의 1인 15억원을 셋으로 나눠 5억원씩 형제들이 챙길 수 있다고 계산되지만 유류분 산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장남이 10년 전에 아파트를 3억원에 팔았다고 해도 상속개시 시점에서 해당 아파트의 시가가 15억원이라고 한다면 장남은 이미 유류분을 초과해 생전 증여를 받은 꼴이 된다.

이송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원 판례를 보면 60년 전에 증여받은 부동산에 대한 유류분 반환 청구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며 “일반인들은 오래전에 증여한 것은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더욱이 매각하면 매각 대금만 유류분 산정 대상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래.’ 당연한 불호령 같지만 유류분은 유언장마저 꼬리를 내리게 할 정도로 엄격하다.

100억원대 자산가인 B 씨는 슬하에 성장한 남매를 두고 있었는데, 남편을 일찍 여의고 딸과 10년 이상 살았다. 지병이 있던 B 씨는 수년간 병치레로 고생했는데, 그때마다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딸이 기특했다. 하지만 아들은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말 뿐인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상속의 기술] '딸들의 반란' 유류분이 대체 뭐길래
유류분에 꼬리 내리는 유언장

B 씨는 병세가 악화되자 결국 딸에게 임야와 상가를 포함한 재산 대부분을 상속재산으로 남기겠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B 씨가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아들은 B 씨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상속재산에 대한 유류분을 요구하고 나서 결국 제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이처럼 B 씨의 간곡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최소 한도의 상속 지분까지 침해할 수 없게 하는 게 바로 유류분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행 유류분 제도가 지나치게 사적 재산과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직까지 법 개정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가족법학회 소속 정구태 조선대 교수는 “최근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가 더 강조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천안함 사태에서 자녀를 전혀 돌보지 않은 부모가 상속인에 대한 사망 보상금을 수령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상속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실제 가족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에서도 피상속인에 대해 부양 의무를 부담하는 상속인이 의도적으로 그 의무를 위반한 때에는 상속인의 유류분권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유류분권 상실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법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상용 부산대 법대 부교수는 ‘자녀의 유류분권과 배우자 상속분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부모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봉양한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의사가 유증으로 표현될 수 있다”며 “유증에 의해 상속에서 배제된 자녀가 유류분 권리자로서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는데, 이때 자녀에게 유류분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독일·체코 등 유류분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피상속인이 유류분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자녀가 조력을 제공하지 않고 방임한 경우’에 자녀의 유류분권을 상실시키도록 하고 있고 체코의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질병·고령이나 기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조력을 제공하지 않은 때’에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정구태 교수는 “현행 유류분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제도가 경직돼 있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유연화해 자녀에 대한 부양의 필요성이 없을 때 피상속인이 유언에 의해 자녀의 유류분을 감축시킬 수 있도록 하거나 자녀가 고의로 피상속인을 부양하지 않은 때와 같이 자녀가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 이에게는 피상속인이 자녀의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녀가 부모를 잘 봉양하지 않으면 물려받은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효도계약서’나 ‘불효자방지법’으로 불리는 입법 추진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가 오히려 상속 분쟁을 부추기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며 “예전에 상속재산 규모가 작을 땐 ‘나는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형제들이 부모 재산을 다 가져갔으니 먹고살 것만 달라’는 소송이 많았지만 지금은 ‘먹고살 만은 한데 거기에 더해 법적으로 보장된 만큼 달라’고 해 분쟁이 늘지 않을 수 없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용섭 머니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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