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 실패 파티 열어 도전 격려…"실패도 자산" DB 구축해 활용

아침에 신문을 펼쳐 들면 우울한 기사들이 많다. 이 중에서도 한국 산업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우리 주력 산업의 경쟁력 하락에 대한 걱정이 크다.

최근 한 일간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주력 산업 분야인 정보기술(IT)·철강·조선 등의 대기업 20개 중에서 13개가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고 한다. 무려 65%에 달하는 수치다.

더군다나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낸 기업도 6곳이나 된다. 이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해석된다. IMF 관리체제나 글로벌 금융 위기 시에는 이러한 업종이 위기 탈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업종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실패'를 기억하고 보상하는 기업들
◆퍼스트 무버의 필수 조건 ‘실패’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 기업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성장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시장 선두 기업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주로 활용해 왔다. 선두 기업이 새로운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으면 신속하게 이를 쫓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선두 기업을 따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역할을 중국을 위시한 후발 경쟁국들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바르셀로나 ‘MWC(Mobile World Congress) 2016’에서도 중국 기업의 약진이 뚜렷했다.

화웨이·레노버·샤오미·ZTE 등 굴지의 중국 IT 기업들이 접근성이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해 이번 전시회의 주연 역할을 했다. 화웨이는 차세대 통신 프로토콜인 5G 기술을 내놓았고 사물인터넷·드론·가상현실 등 한국이 주력하고 있는 미래 유망 분야에 대한 중국 기업의 참여도 매우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고민이 많다.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에서 벗어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존재하지만 이 중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실패다. 퍼스트 무버는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실패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실패를 용인하고 수용하는 것이 우리 기업에서 아직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구사할 때는 보고 배울 대상이 명확했다. 선도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나 퍼스트 무버의 입장이 되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세계에서 스타트업을 하기 가장 좋다는 실리콘밸리의 사업 성공률은 1%에 불과하다. 100개의 새로운 시도 중에서 99개가 실패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신제품이 시장에 론칭해 성공하는 확률도 1% 미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은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실패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문화와 이에 대응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도가 활발해지기 어렵다.

이제 한국 기업들도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패를 새로운 성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실패'를 기억하고 보상하는 기업들
◆실패가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이유

첫째, 실패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활용할 때는 이미 앞서가는 선도 기업을 따라 하기 때문에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실패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에 따라 실패가 발생하면 관련자가 책임을 져야 하고 관련 조직이 공중분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패턴은 실패가 조직 내에서 잘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때로는 실패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자신의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의도적으로 감추는 상황도 발생한다.

토머서 왓슨 IBM 전 회장은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실패의 속도를 두 배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실패가 가지고 있는 학습적 특성과 교훈적 특성을 강조한 말이다. 즉, 실패 또한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이전의 실패를 경험 삼아 새로운 시도에서 성공한다면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실패가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다면 실패는 단지 실패일 뿐이고 이는 중요한 자산의 상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실패들이 겉으로 드러나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의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영자는 일차적으로 실패의 책임보다 실패의 원인을 먼저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이 관련자의 태만이나 부주의 또는 고의에 의한 것이라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밖의 요인이라면 용인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실패의 자유’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카드에는 ‘논리적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가 존재한다. 의욕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가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에도 문책을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 간부는 쫓겨나는 것이 현대카드의 불문율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오히려 실패를 격려하고 장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참신한 시도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실패는 시도라는 전제가 있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구성원의 시도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기업들도 많다. 3M에서는 ‘실패 파티’가 있다.

이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실패한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파티를 열어 좌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또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도를 통해 연구 보고서를 작성할 때 소수 의견을 병기하도록 의무화했다.

BMW에서는 매월 ‘이달의 가장 창의적인 실수상’을 선정해 포상한다. 제약 회사인 머크는 R&D에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연구를 활성화하고 있다.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많은 깨달음과 학습이 이뤄진다.

이러한 값진 배움이 상실되지 않도록 실패한 구성원을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고 재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패를 활용하는 선결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방문객 이어지는 미시간의 ‘실패 박물관’

둘째, 실패를 기억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실패 사례를 귀중한 자산으로 활용하려면 이러한 실패 사례가 저장되고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실패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드는 것이다. 구글과 3M과 같은 혁신적 기업들은 이러한 DB를 구축해 새로운 창의적 활동에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을 추구하는 제너럴일렉트릭(GE)도 실패 정보 DB를 5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GE는 과거의 실패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관련 사례집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이 하지 않았지만 남의 실패 사례도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실패 콘퍼런스 ‘페일콘(FailCon)’이 그 좋은 예다.

앞에서 말했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 확률은 1% 미만이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실패 사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풍부하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사업가들은 이 자리에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한다.

페일콘의 모토는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자’다. CNN은 이 콘퍼런스를 ‘실패자들의 커밍아웃 파티’라고 했고 미 공영 라디오 NPR는 실리콘밸리가 사랑하는 단어인 ‘실패’에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연사들은 자랑스럽게 실패담을 내놓는다. 마이페이스 공동 창업자 크리스 드월프, 에어비앤비 창업자 조 게비아 등도 이 자리에서 자신의 실패 사례를 소개하며 환호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 주의 앤아버에는 신제품 및 브랜드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아버스트래티지그룹이 운영하는 실패 박물관이 있다. 1990년 설립됐는데, 여기에는 수십 년 동안 실패한 제품들이 약 13만 점 정도 전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펩시콜라에서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이 외면한 투명 콜라 같은 것이다.

꽤 고가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각 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나 마케팅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한다. 남들이 한 실수지만 이를 연구해 자신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실패한 사례들을 학습하고 새로운 성공을 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한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실패는 아이디어의 보물 창고

'실패'를 기억하고 보상하는 기업들
마지막으로는 과거의 실패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3M의 포스트잇 개발 사례는 과거의 실패가 활용된 좋은 사례로 회자된다. 포스트잇은 실패한 접착제 연구에서 비롯됐다. 1970년 이 회사의 연구원인 스펜서 실버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 중이었다.

그러다가 강력하기는커녕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거리지 않는 이상한 접착제를 만들게 됐다. 실패에 개방적인 3M의 문화에 따라 그는 이 실패한 발명품을 사내 기술 세미나에 보고했다. 그리고 이 사례는 3M의 DB에 저장됐다.

역시 3M의 직원으로 사무용 테이프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던 아트 플라이는 교회 성가대원이었다. 아트 플라이는 성가 합창을 하면서 여러 차례 불편을 느꼈다. 성가집에 자신이 불러야 하는 곡마다 종이를 끼워 표시해 뒀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표시한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당황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점에 불만을 느낀 아트 플라이는 이를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 DB를 열람하던 중 스펜서 실버의 실패 사례를 접하게 됐다. 순간적으로 ‘이거다’라고 느낀 아트 플라이는 스펜서 실버에게 연락을 취했다. 함께 특별한 노트를 만들어 보자고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포스트잇이다.

이렇게 실패를 활용해 자신만의 창의적 방식으로 개선해 성공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애플이다. 애플의 성공 방정식은 처음부터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먼저 시장에 내놓았지만 실패한 제품들을 애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다.

애플이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한 실패 사례들의 요인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너무 빨리 시장에 출시됐다든지, 모바일 네트워크나 위성항법장치(GPS)·와이파이 등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다든지, 고객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생태계 구축이 미비했다든지 등이다.

애플은 이러한 요인들을 분석하고 애플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접목해 대박 아이템을 개발해 낸다. 아이폰도 그렇다. 고객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니즈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휴대전화 생산 업체들이 OS와 앱을 융합하는 데 실패했다.

애플은 이를 분석해 2003년 음악 플랫폼 아이튠즈를 출시했다. 그리고 이후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iOS 기반의 앱과 콘텐츠를 개발한 후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해 대박을 쳤다.

이처럼 실패를 드러내고 저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적절하게 꺼내 활용될 때 비로소 실패는 새로운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모든 일에 실패가 없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8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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